미식견문록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세계음식기행 지식여행자 6
요네하라 마리 지음, 이현진 옮김 / 마음산책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요네하라 마리, 다소 생소한 일본 여인의 이름인데, 찾아보니 참 대단한 일면을 가지고 있는 여자였다. 최근 짬짬히 한국일보에 기고되고 있는 고종석의 기획연재 '여자들'에 소개된 그녀의 약력을 보면, 일본공산당 간부였던 아버지를 따라 체코의 소련 공산당이 운영하는 국제학교를 다녔으며, 그 당시의 경험과 학습, 그리고 교육으로 일본 정재계 및 각종 문화행사의 러시아 통역의 '지존'으로 올라선 여자. 일본제일의 동시통역사였지만, '말'이 아닌 '글'에 대한 갈증으로 책을 쓰기 시작했고, 뛰어난 문체, 를 자랑하는 문장가는 아니었지만, 자신이 경험한 서로다른 문화의 불꽃같은 접촉을 중심으로 그녀만의 독특한 이야기를 풀어낸 여자. 그녀는 2006년 51세 난소암 투병끝에 독신으로 인생을 마감했다.

우리나라에 그녀의 책이 번역되어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그녀가 죽은지 몇달 후 2006년부터였으며,'프라하의 소녀시대', '마녀의 한다스', '대단한 책','미녀냐 추녀냐,' '인간 수컷은 필요없어' 등이 연이어 출판되었다. 소개를 읽어보니 각각의 책 모두, 당장 달려가서 뽑아들고 읽어보고싶게 만드는 책이다. 전업작가가 아닌 사람의 글이 주는 산뜻함이 요즘은 많이 끌린다. 나는 작가니까, 혹은 당신은 작가니까, 라는 양자간의 줄다리기 같은 강박이 독서의 과정을 얼만큼 장악하고 있는지도 새삼 깨달게 된 탓도 있을 것이고, 갈수록 실감하는 건데 '책'이란 것은 정말 한 우물만 파야 나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목매달아도 좋을' 한 우물을 위해서는 별별 우물의 물들을 다 길어보고 또 들이켜봐야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같다..  

물론 전업작가들이 쓴 픽션도 물론 그들의 다양한 경험과 사고들과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이긴 하지만, 예컨데 전업작가들의 경우는 그 때문에라도 그들의 일상을 '픽션'처럼 윤색하고 편집할 수 있다는 '혐의'가 있기 때문에, 그런 '불편한' 일상을 살아야하는 작가의 글을 읽는다고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도대체 독서에 집중이 안되기 시작하고, 여러모로 위로받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한 독서, 인데 오히려 '딱한 사람' 사정을 들어줘야하는 난처한 입장이 되버린 것만 같아 불편하기 이를데 없더란 말이다. 아무튼 그런 등등의 이유로, 흔히 말하듯 '투잡'으로 글을 쓰는 사람의 책이 점점 더 끌린다는 이야기.

각설하고, 표지를 넘기자마자 첫장을 통해, 사람을 고향과 이어주는 끈에는 여러가지가 있을수 있지만, 그중 가장 질긴 끈은  ' 위胃'에 닿아있는 그것, 밧줄이요 억센 동아줄이라고 할수 있는 바로 그것임을 선언하면서 시작되는 이 책 속에는, 그녀가 경험한 세계각국의 미각적 '편견' 에 대한 소개를 '빙자'하여 먹는 이야기만 무려 37편이 나온다. 그 이야기들의 전개는 마치 해설자의 표현처럼, 엄마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처럼 편안하고, 우스우며, 즐겁고, 그리 과하다 싶지는 않은 각국의 문화적, 역사적 배경들이 적절하게 그녀가 '탐구'한만큼만 소개가 되고 있으니, 이 책을 구입할 때 함께 구입한 살림지식총서의 '왜 그 음식은 먹지 않을까' 를 펼쳐봤을 때 나를 조금 '경기'하게 만들었던 장황한 지식들의 소개, 와는 참으로 다른 책이라는 것..

지금은 그것이 없이는 어떤 요리도 불가능할 것 같은 감자, 옥수수, 토마토, 와 같은 서양요리의 재료들이 감내해야했던 보급 초창기의 각국의 지독한 미각적 보수주의, 멸종하고 있는 철갑상어와 그에 따른 캐비어 생산량에 대한 대책으로 철갑상어를 제왕절개를 하고 몇번이나 다시 캐비어를 꺼낼 수 있는 시도가 실제로 일본에서 있었다는 이야기,  우리가 알고 있는 전채, 수프, 메인요리, 치즈, 디저트 순의 프랑스식 서비스법이, 사실은 프랑스가 아니라 러시아가 그 원조라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이야기, 프랑스는 원래 한상에 다 차려놓고 먹었던 문화였다는 사실과 같은 그야말로 '사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알게 된 이야기는 물론이고,

나로 하여금 맞다맞어..그런 동화가 있었어 나도 읽었어, 감탄하게 만들었던 '꼬마 깜둥이 삼보'란 동화책에 등장하였던 호랑이 이야기, 삼보를 잡으려고 삼보가 올라간 나무 밑둥에서 빙글빙글 돌던 호랑이들이 그만 엉겨붙어서 버터, 가 되어버렸고 그 버터로, 삼보 엄마가 핫케이크를 구워주었다는 이야기 때문에 동물원에 가서 호랑이를 보면 핫케이크 생각만 난다는 고백과, 얼마나 맛있으면 매 페이지마다 저렇게 꼴깍꼴깍 마실까, 싶었다는 알프스 하이디에 등장하는 염소젖을 맛본 후의 실망과 같은 어린시절 동화책에서 본 음식들, 재료들에 대한 환상과 추억, 그리고 평가도 유쾌하다. 또 하루 여섯끼를 먹는 '대식가'임을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적나라하게 고백한 고베에서의 음식기행 이야기는, 원래는 고베에 남아있는 서양건축물 기행을 떠난 것인데, 어쩌다보니 맛집만 찾아다니면서 먹다가 배가 불러 소화시키느라 건축물 기행을 슬쩍 해버리고 말게 되었다고 스스로도 겸연쩍어할 정도였지만, 나로선 그 여행이 어찌나 부럽던지.

이 책에서도 여러번 인용이 되었고, 현재 전세계 각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들로부터 '우리를 죽이는거냐' 라는 원성을 무지하게 사고 있다는, 이 책의 해설자이기도 한 '쇼지 사다오' 의 '베어먹기 시리즈', 앞서 말한 고향과 위장을 잇는 그 동아줄을 사정없이 끌어당기게 한다는 그 시리즈가 주간 아사히, 에 연재중이라는데, 그걸 어떻게든 꼭 구해서 읽어보고 싶다는 궁리 중이며, 번역이론에서 오랜 논쟁의 쟁점이라고 할 수 있는, 출발언어, 와 도착언어, 의 관점을 다룬, 그러니까 직역된 언어는 출발언어에 가까워 일종의 '정숙한 추녀'이고 의역된 언어는 도착언어에 보다 가까워 '부정한 미녀'라는 견해에서 전개된다는 요네하라 마리, 의 '미녀냐 추녀냐'가 조만간 독서목록에 추가될 듯하다.. 

(2009.8.20. http://hazimede.egloos.com/193644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