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경, 담배의 모든 것 - 18세기 조선의 흡연 문화사 18세기 지식 총서
이옥 지음, 안대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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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주도 면세점이란 것이 사실 편의점 수준의 것이라, 돌아가는 날 탑승시간을 기다리면서 산 것이라곤 당연히 오로지 '담배'뿐. 카멜, 이나 호프, 가 없었던 탓에 다비도프 스페셜 한정판이라고, 보기에도 혹, 하게 깔끔한 패키지가 돋보였던, 무려 4만원 가까이 하는 그것 한보루, 와 대충 필만한 것들 세보루를 사재꼈다. 집에 돌아와 짐풀어놓자마자 '시끽'을 해본 결과, 담배도 비싼 것이 맛있구나, 를 명징하게 깨달음.. 도대체 이 부드럽고, 담백한, 타르 6mg이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담배를 피는 사람이면 가끔 가지게 되는 잡다한 담배에 대한 궁금증,, 그러나 현재가 아닌 무려 18세기 조선의 한 선비가 떠올린 담배에 대한 궁금증과 그에 응답하는 연구의 결과물이 한권의 책으로 나와있었다.

18세기 후반, 그리고 19세기 전반에 걸쳐 문필활동을 한 '이옥'은 성균관 유생시절 정조, 로부터 불경스럽고 괴이한 문체를 고치라는 명령을 받은 이후 관계로의 진출이 막혀 남은 한평생을 소품문 창작에 전념하는 가운데 발랄하고 흥미로운 작품을 남기면서 보냈다. 특히, 당시 사대부가 저서의 주제로 삼기에는 꺼려지던 '담배' 를 과감히 다룬  연경(煙經)은 그 중 독특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기록할 만한 가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이라면 기록한다, 는 이 책의 서문에 언급된 그의 저술의 정신을 보더라도, 연경, 이 한낱 붓장난, 이 아니라 일상의 사소한 것이라도 저술의 대상으로서의 의미성을 부여하려했던 그의 '작품' 중의 하나임을 알 수 있다.
직역하면 '담배의 경전' 이라고 할 수 있는 연경, 은 서문과 4권의 구성을 가지고 있다. 첫권은 담배씨를 거두는 것에서부터 시작, 담배를 경작하는 방법과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둘째권은 담배의 원산지, 전래, 성질과 맛 및 담배를 태우는 방법, 셋째권은 담배를 피우는데 사용되는 각종 용구에 대한 설명, 그리고 마지막 네째권은 흡연의 멋과 효용, 품위와 문화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특히 첫째권과 둘째권, 세째권을 아우르는 담배의 생산과 향유에 대한 구체적 실상에 대한 기록은 현재까지 남아있는 자료가 대부분 문학작품에 치중해있는 현실에서 볼 때 무척 소중한 자료임에 분명하다. 개인적으로는 네째권의 내용들, 즉 흡연의 문화적 측면을 문학적으로, 아름답게 적어내린 그 내용들이 참 좋았으며, 조선 후기의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던 정경이 머릿 속에 그려지는 듯한 뛰어난 수사가 놀라울 정도이다.

또, 특별히 번역자 안대회 교수가 따로 '2부 담배, 그 애증의 기록' 이라는 목차로 함께 묶어낸 당시 담배를 애호하는 옹호론자들의 자료와 흡연의 페혜를 고발하고 금연을 외친 금연론자들의 자료는 지금과 정말 하등 다를바없이 '팽팽한' 그 논쟁의 치열함을 엿볼수 있게 해준다. 맛깔나는 부록들은 또 하나 이어져, 우연히 법당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 제지당한 이옥이 승려를 능수능란하게 설득하여 입을 다물게 한다는 이 책과 같은 제목의 '연경', 담배를 남령, 이란 이름의 장군으로 묘사하여 의인화시킨 가전체 소설 '남령의 한평생', 이번엔 담배가 비구니, 로 의인화된 '담파고의 일생', 이 함께 실려있으며, 당시 애연가의 담배에 대한 애틋한 심리를 공감하게 해주고 있다.

17세기와 18세기, 생활 주변의 사소한 사물을 다룬 저술이 많이 등장하였지만 유독, 담배에 대한 저술이 없는 것을 판단, 애연가로서 이 사실에 자극을 받아 담배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연구저술을 펼친 이옥, 그리고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년동안 우리 민족의 기호품의 제왕 자리를 차지해온 담배를 학계는 너무 소홀이 취급한 것이 아닐까, 한국의 흡연문화사, 를 다른 본격적인 저술을 이제라도 시작해야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번역을 시작한 안대회 교수. 두 사람 모두, 요즘 내가 늘 한권씩 책을 읽어치울 때마다 드는 생각인, '이런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책을 쓸 생각을 했을까' 의 범주에 넉넉하게 들어가고도 남는 사람들이다..

'발상의 전환' 이라는 해묵은 이야기를 다시 꺼내기보다는, '발상' 이란 것, 자체에 대한 생각을 다시금 한번쯤 해봐야 될 일 같다.. 내 머리 혹은 내 몸 어딘가를 관통하면서 뚫고나오는 발상, 의 과정은 어쩌면 이제 오래된 우물 속 같아서, 그저 뿌연 어떤 것이 되버린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그래서 길어올려지는 생각이란 것들도 그렇게 뿌옇고 흐리멍텅한 것이 점점 되버리고 마는 것이 아닌지 싶고 말이다.. 오래된 우물 속 같은 '깊이'는 참 갖고싶은 그것이나, 우물 속 오래 고여버린 뿌연 물은 참, 별루이지 않은가, 라는 생각.. (2009.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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