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
아사다 지로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는 메이지 유신 이후, 서기 1800년대 후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선택했던 건 단순히 제목에 '뒷마무리'라는 단어가 들어간다는 것과 올해 첫 번째로 구매했던 책이었기 때문이었는데요. 여섯 개의 단편으로 되어 있는 이 책은 마무리와 어울릴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시대의 흐름이라거나 세상의 변화에 따른 사람들의 모습을 돌이켜 생각해보기엔 충분했습니다. 

10여 년 전 지인이 청첩장 인쇄를 마치고 예비 시어머니께 야단을 맞았습니다. 이유인즉슨, 결혼식 날짜를 양력으로만 표기했지 음력을 병기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는데요. 친구인 저희들은 요새 날짜 고지하면서 음력을 쓰는 데가 어디 있냐며 친구의 편을 들어주었지요.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해를 못 했습니다. 몇 년 전까지 쓰던 음력 생일도 불편해서 양력으로 챙기는 판에 음력이라니. 그런데 <고로지 할아버지의 뒷마무리>를 읽다가 갑자기 이해가 되는 겁니다. 그레고리력을 쓰는 세상에 태어나 살아온 우리는 양력이 당연하지만, 과도기에 살아온 친구 시어머니 세대에는 음력이 여러모로 편리했던 겁니다. 자세한 이유는 모르겠지만요. 

일본의 경우 메이지 유신 이후, 우리나라는 개화기 이후겠지만 - 부끄럽게도 역사를 잘 몰라 정확히 서술할 수는 없지만 - 여러 가지 서양문물이 들어왔고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 위로부터의 개혁은 국가의 변화와 상관없이 백성들에게는 보통 일이 아니었을 거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책력이 바뀐다는 건 달을 중심으로 한 세상에서 태양을 중심으로 한 세상으로 바뀐다는 건데, 말 그대로 천지가 뒤집히는 일이었겠죠. 실은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신기하다! 어떻게 서양에서도 일주일을 쓰고, 우리도 일주일을 사용하는 걸까?라는 어이없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과거에 우리의 개념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오행인 목화토금수에 일, 월을 더해서 일주일이 7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목화토금수의 오행의 순서가 바뀌어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이라니. 좋지가 않아요. 제가 마음에 들든지 말든지 어쨌든 월 화 수 목 금 토 일의 세상에서 살고 늘 월요병에 시달립니다. 
여유 있게 살아왔던 시간도 요일과, 월과 연도가 바뀌며 뭔가 당겨지는 기분이었을 텐데, 초 단위의 시계라니! 그렇게 가쁘게 살아가야만 하는 건지.

책을 읽는 포인트가 어긋났는데요. 저는 이런 세상의 변화에 따라가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무척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 책에는 사무라이였던 사람들이 나옵니다. 사무라이 정신으로 다져졌던 사람들이 이제는 무가의 사람이라는 걸 자랑스러워할 수 없는 세상에 살게 되었고, 칼을 차고 다니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 세상에서 떠돌이, 하인, 상인이 되고, 무가의 아녀자들이 작부 일을 해야 하는, 그런 세상에서 겪는 일들이 잔잔하게 펼쳐집니다. 어떤 자는 과거를 소중히 여기되 현재에 적응하고, 어떤 자는 과거에 묶여 나아가지 못 합니다. 어떤 자는 현재를 여기서 종결하려 합니다. 각자 새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은 다르지만, 그들의 방식이 모두 이해가 되어 어느 것이 옳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심각하게 읽으라고 쓴 소설일까 싶을 정도로 잔잔하면서 유쾌합니다. 약간의 블랙 코미디 요소도 있고요. 그런데도 읽을수록 이상하게 마음이 아픕니다. 

세상이 바뀐다고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다시 시작되는, 리셋되는 게 아닙니다. 그런 건 없어요. 변화는 흐름이더군요. 흘러가는 거였어요. 그건 몰랐던 사실이 아니었을겁니다. 그런데 마치 처음 알게 된 사람 같은 기분이에요. 세상의 변혁에 적응을 해야 하는데 따라가기는 버겁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든 살아가는 무가 사람들을 보며 과연 그게 남의 일일까, 소설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현재의 우리를 닮아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볍게 웃고 넘어가지 못하나 봅니다. 

이 책을 읽고 마무리를 했을까요? '고로지 할아버지'처럼은 안되겠습니다. 사람은 각자의 마무리 방식이 따로 있는 법이니까요. 저는 아직입니다. 마무리할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진행 중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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