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
이사카 고타로 지음, 최고은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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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온 뒤 하늘이 맑게 개었지만 여전히 밤. 
하늘을 올려다보니 작은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습니다. 슈퍼문의 기운에 지지 않고 빛나는 별들이 참 대견한데요. 아직 덜 마른 돌바닥도 빛을 받아 빛납니다. 달빛을 받아 빛나는 것인지, 가로등 불빛을 받아 빛나는 건지 잘 알 수 없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습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나흐트무지크가 연인의 세레나데가 되어주거든요. 연애 세포가 증발해버렸어도 괜찮습니다. 현악기의 선율은 다른 세포를 그 녀석인 척해 줄 수 있을 것만 같으니까요. 작은 밤의 음악,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와 함께 그런 세상을 구경해보지 않으실래요?

이사카 고타로가 연애소설을 썼다고 하니 좀 걱정되었습니다. 네, 제가 바로 연애 세포가 증발해버린 그 사람이거든요. 남의 사랑을 코웃음 치거나, 좋~을때라며 비아냥거리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로맨스 소설이나 연애소설 같은 건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을 애타게 기다려왔는데 연애소설이라니! 청천벽력이죠. 하지만, 이사카 고타로니까...뭔가 다른 연애소설을 보여줄 거라고 믿고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행이에요. 이 책에는 애절한 사랑도 오글거림도 없었어요. 몇 페이지 읽기도 전에 눈치챘답니다. 이 책은, 책 자체가 사랑스럽다는 걸요. 이사카 고타로의 <가솔린 생활>이라는 소설과 비슷한 분위기가 느껴졌습니다. <가솔린 생활>과는 전혀 다른 흐름인데도, 생각하고 말하는 자동차 같은 건 나오지 않는데도. 무엇 때문인지 그런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냥 이사카 고타로의 책이기 때문일까요?

이 글을 쓰면서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를 듣고 있습니다. 부디 음악이 끝나기 전에 글을 다 쓸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요. 괜찮아요. 혹시 음악이 끝나면 잠시 사이토 가즈요시의 음악을 찾아 듣고 오지요 뭐. '베리 베리 스트롱 아이네 클라이네'를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로 돌아와 끝내죠. 왜냐하면 이 소설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무지크>도 '아이네 클라이네'로 시작해서 '나흐트 무지크'로 끝나니까요. 소설은 연작 단편으로 되어 있는데요. 첫 번째 이야기 '아이네 클라이네'는 사이토 가즈요시라는 가수가 연애를 테마로 한 노래의 작사를 부탁했더니, '가사는 쓸 수 없지만 소설은 쓸 수 있다'며 쓴 소설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단편 '라이트 헤비'는 2007년 발매된 사이토 가즈요시의 앨범 '베리 베리 스트롱 아이네 클라이네'의 초회 한정판 부록으로 수록된 소설이라고 하니 이 소설에서 음악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일이군요. 지금 '베리 베리 스트롱 아이네 클라이네'를 듣고 있는데요. 어머나, 모차르트의 분위기와 전혀 달라요. 흥겹군요. 가사는 전혀 못 알아듣지만요. 여담이지만, 명탐정 코난 극장판 17기 절해의 탐정 오프닝을 부른 가수랍니다. 이 가수의 노래를 들어보니 이사카 고타로가 어떤 느낌으로 글을 썼는지 조금 더 알게 되었어요. 경쾌하고 흔들림 없는 템포로 한 발 한 발 전진하는 그런 기분이 드는데요. 라이트 헤비에 등장하는 사이토 아무개 씨가 이 가수 본인이 맞는 것 같아요. 지하철역 바로 옆 골목에 탁자 하나를 놓고 음악을 들려주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 등장하는데요. '지금 어떤 기분이다', '이런저런 상황이다'라는 말을 하면 기가 막히게 선곡해서 컴퓨터에 저장된 음악을 들려줍니다. 그 음악을 듣고 나면 치유가 된다죠? 가사를 못 알아듣는 저도 기분이 좋아지고 있는데, 실제로 제대로 선곡해서 기분에 맞춰 연주해주거나 들려준다면 확실히 좋아지겠네요.

'아이네 클라이네' 에는 백업 데이터를 선배와 함께 날려먹고 업무에 시달리는 사토가 등장하는데요. 운명의 여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길에서 지갑이라거나 손수건을 주워 주고, 그 인연으로 만남을 지속하여 사랑으로 발전할 수 있는 그런 사이 있잖아요. 그때 주워 준 사람이 당신이라 다행이었어...라며, '라이트 헤비'에는 마나부의 누나 소개로 인연을 이어가는 미나코가 등장합니다. 이 둘은 그 인연을 전화 통화로만 이어가고 있는데요. 무려 1년이나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나부는 이번에 일본 헤비급 선수가 세계 챔피언이 되면 그녀에게 고백하겠다고 합니다. 미나코는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맡기는 사람은 싫다고 하는데요. 그들은 어떻게 될까요? '도쿠멘타'에는 사토와 함께 백업 데이터를 날려버린 그 선배, 후지마가 5년에 한 번 운전면허 갱신 날마다 마주치는 여인과의 인연을 이야기합니다. 둘이 뭐 잘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고요. 각자 잘 되어야 행복한 거 아닐까요? 후지마의 아내는 가출했고, 그녀의 남편은 가출했었으니까요. 5년에 한 번 마주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인연도 참 좋은 것 같습니다. '룩스라이크'는... 이런 이런, 두 쌍의 이야기가 교차되어 나오기 때문에 자세히 이야기 해선 안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일 재미있었어요. "이 분이 어느 댁 따님인 줄 알고 이러시는 겁니까?" 라니. 진짜로 그런 말을 사용하는 사람을 한 번쯤 보고 싶어요. '메이크업'에서는 그래요. 연애 이야기가 주는 아니지만, 이런 식의 연애라니. 복수 아닌 복수가 되어 기쁘더군요. 드디어 모두를 안아줄 '나흐트무지크'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도 사이토 가즈요시의 음악에서 모차르트로 돌아왔고요. 마지막 장 '나흐트무지크'에서는 앞서의 모든 인연들이 교차되며 20여 년의 시간 동안 어떻게 흘러갔는지 보여줍니다. 연애라는 게 술술 잘 풀리기만 하는 게 아니니까 모두가 잘 되었다고 말하지는 않을게요. 하지만, 20년간 함께한 사람들, 그 사이에 만난 사람들 모두가 나흐트무지크를 타고 저마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게 어찌나 유쾌하고 사랑스럽던지. 

연애 소설이라뇨. 아니에요. 치유물이에요. 마음이 좋아지는 걸요. 
잔잔하게 행복해집니다. 재미있고, 사랑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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