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꾸눈 소녀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8
마야 유타카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마야 유타카의 메르카토르 시리즈는 딱 떨어지는 맛이 있습니다. 이 탐정은 헛다리를 짚을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사건이 벌어짐과 동시에 모든 것을 파악하는 무척 뛰어난 탐정이거든요. 그렇지만 잘난 척도 보통이 아니어서 범인이 아니더라도 저 녀석을 죽이고 싶을 것만 같았습니다. 읽는 내내 얄미워 미치겠는데 희한한 매력이 있어서 자꾸만 읽게 되는 메르카토르 시리즈. 그 시리즈의 작가 마야 유타카의 소설 <애꾸눈 소녀>를 읽었습니다. 


이 소설은 메르카토르 시리즈와 분위기가 전혀 다릅니다. 메르카토르 시리즈가 현대적인 배경에 20세기 초반의 분위기를 가진 탐정이 등장하는 느낌이라면, <애꾸눈 소녀>는 1부가 1985년, 2부가 2003년에 진행됨에도 자꾸만 에도나 메이지쯤으로 연상됩니다. 탐정의 의상이 고전적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피해자가 무녀-라기보다는 신 그 자체-의 후계자라는 것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전통적인 한 종교를 믿으며 광신하고 맹신하고 타인의 말에 휘둘려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일을 자백하기도 하는 묘한 분위기 때문인 지도 모르죠. 


마야 유타카의 소설 <붉은 까마귀>에서도 폐쇄적인 마을이 등장합니다만, <애꾸눈 소녀>는 몇 안되는 등장인물들만 보아도 무척 사상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제약이 있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이 마을에는 전설이 있는데요. 옛날 온천에서 태어난 여자아이가 홍수를 일으키는 용을 봉인하였으나 불완전하여 4년마다 홍수가 일어났습니다. 봉래의 거문고를 가지고 온 남자와 온천의 여자가 결혼하는데요.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봉래의 거문고를 연주하여 용을 퇴치합니다. 용의 머리는 떨어지고, 거문고도 쪼개졌지만 이 아이 스가루는 신인 어머니의 힘과 사람인 아버지의 힘을 반씩 물려받은 존재로서 이 마을의 신과 같은 자가 되고 대대로 딸에게 그 힘이 이어져 이 마을을 지켜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스가루의 후계자 하루나가 살해당합니다. 마침 죽을 자리를 찾아 마을에 머물던 외지인 시즈마가 의심받지만 애꾸눈 소녀 탐정 미카게의 도움으로 금방 용의선상에서 풀려납니다. 미카게는 2대째로 그녀의 어머니가 애꾸눈 소녀 탐정으로 유명했던 터라 아직 애송이지만 경찰이 협조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참 내내 마음에 걸리던 게, 엄마, 그러니까 1대 미카게가 애꾸눈 탐정이었다는 건 이상하지 않았는데, 2대째도 애꾸눈이라니.. 집안 내력에 한쪽 시력 저하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일본 만화나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체의 일부가 불편한 여자아이에 대한 환상(도대체 그게 뭐냐고요.) 때문에 이런 설정을 잡았나 하는 것이었지만 나중에 알게 되겠지.. 하며 그냥 읽었습니다. 어쨌거나 미카게가 정말 애송이인 것이, 계속 헛다리를 짚는 바람에 사망자가 하나씩 늘어납니다. 추리를 제대로 할 것이지... 하는 원망을 받기도 하는데요. 헛다리를 짚어가며 사건을 해결해가는 노리즈키 린타로와는달리, 미카게도 김전일처럼 죽을 대로 죽은 후에 남은 사람 중 범인을 찾을 셈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좀 답답해요. 메르카토르는 너무 잘나서 짜증 났는데, 미카게는 너무 못 해서 짜증 납니다. 그런 주제에 자존심은 센가 봐요. 아직 18세라 그런가 사춘기의 반항심 때문일까요. 추리도 지지부진하지 사건의 짜임새도 허술하지... 그런데 범인이 누군지 잘 모르겠지... 그러니 책을 읽으며 얼마나 답답했겠습니까. 지루했어요. 내가 이걸 읽어야 하나. 그런데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 앞의 지루함과 허술함이 모두 복선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오. 그런 일이었어! 끝까지 읽길 잘했습니다. 반전의 상쾌함. 


초중반의 다소 늘어지는 전개를 견딜 수 있다면, 끝까지 읽어봐도 좋을 책이었습니다. - 1부가 끝날 때까지는 자신과의 싸움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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