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과 영혼의 경계 - 히가시노 게이고 - 히가시노 게이고 다운 미스터리

사명과 영혼의 경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송태욱 옮김 / 현대문학 / 2013년 7월

다작을 하는 작가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은 서로 다른 스타일의 미스터리를 보여주곤 합니다. 공학도적인 모습이 많이 드러나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무척 인간적인 부분을 다루는 소설이 있는데요. 이번의 <사명과 영혼의 경계>는 그 두가지 면이 다 보이는 소설이었습니다. 현대문학 출판사에서는 책을 홍보할 때 의학 서스펜스라는 서술을 붙였었는데, 별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의학 서스펜스나 미스터리라고 하면 독자로서는 로빈 쿡의 소설 같은 것을 연상하고 말잖아요. 수술 장면에서 무척 긴박한 상황이 벌어져 상당한 스릴감을 줍니다만 의학 서스펜스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초반에 의학 서스펜스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해서인지, 이 소설은 의료 사고나 그에 관련된 미스터리로 이루어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굵은 줄기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과거에 있었던, 수술 후 환자가 사망했던 사건은 있었지만 그것이 모티브가 되거나 주요 사건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부분은 일상 미스터리처럼, 가슴에 맺혔던 것에 대해 진실과 마주하며 찬찬히 풀어나가야 하는 쪽이었습니다. 

중학생 때 동맥류 수술 중 문제가 생겨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죽음을 완전히 납득하지 못 했던 유키는 열심히 공부해 심혈관계 의사가 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병원에서 수련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담당 선생님은 아버지의 수술을 집도했던니시노조 선생입니다. 자신도 의사이므로 수술 중의 변수에 의해 환자의 용태가 급변하여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니시노조 선생님과 어머니가 사귀는 데다가 최근에 재혼까지 결심했기에 혹시 아버지의 죽음에 니시노조 선생이 어떤 형태로든 간여되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병원에 협박 문서가 도착합니다. 병원에서 있었던 의료과실을 공표하지 않으면 병원에 해코지를 하겠다는 협박에 경찰도 출동하고 병원을 조사하기에 이릅니다. 

범인을 찾아내야 하는 미스터리와는 달리 독자는 범인을 알고 있습니다. 이 병원 간호사 노조미와 사귀고 있는 조지라는 남잔데요. 실은 이 남자, 애초부터 목적이 있어 그녀에게 접근했던 겁니다. 그 남자에게는 명탐정 코난에서의 범인이나 김전일에서의 범인이 가지고 있을만한 사연이 있었는데요. 참 안타깝습니다.

이상하게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등장인물 노조미 때문에 책을 읽다가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 눈물이 노조미 때문인지, 조지 때문인지. 아니면 이 소설 속에서 자신의 사명을 위해 개인의 감정은 잠시 접어두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 때문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감동인지 슬픔인지 안타까움인지조차 가를 수 없었습니다.

<사명과 영혼의 경계>라는 소설은 정말 히가시노 게이고 다웠습니다. 미스터리 끝에 아련하게 주는 그 무엇이 있었거든요. 덕분에비 오는 오늘 함께 푸욱 가라앉아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