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트 케어
하마나카 아키 지음, 권일영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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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p.26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그것이 정말 두렵습니다. 며칠 심하게 앓고 났더니 더 그렇습니다. 지금은 젊으니 금세 회복도 가능하고, 열심히 노력하면 더욱 좋아지고 전보다 더 건강해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지만, 끊임없이 쇠락해나가기만 하는 시절이 올 테지요. 그래도 바른 정신을 가지고 있어서 나를 돌보아 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도 표현할 수 있으며, 미안한 마음도 가질 수 있다면 그나마 나을 텐데, 만일 치매라도 겹쳐 모두를 더욱 힘들게 하는 그런 시간이 온다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죽음을 선택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마저 내 의지대로 가능할까요.


<로스트 케어>는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만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은 사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점점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고 늘어가는 노인들을 부양해야 하는 젊은이들의 수는 적습니다. 건강하게 오래 살면 바랄게 없지만 예전보다 오래 사는 탓인지 병에 걸릴 확률은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픈 채로 오래 살게 된다는 건데, 무엇을 위한 장수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옛말에 긴 병에 효자 없다 했습니다. 직접 누군가를 힘겹게 간호해 본 적은 없었지만, 몸이 아플 때마다 어린 딸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받고선 제대로 된 식사도 못 챙겨줄 때면 마음이 아팠습니다. 토마토 주스 한 병을 24시간에 나누어 조금씩 마시는 도중에도 아이가 컵라면을 먹는 모습을 보면 슬펐습니다. 미안했고요. 아이가 조금 더 자라 중학생이 되었지만, 여전히 엄마를 돕고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 지금은 평소에 먹지 못하던 라면이라 신나하며 먹지만요 - 모습은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곧 일어설 수 있으니까 나으면 잘 해주자는 마음을 먹을 수 있었지만, 어쩐지 몇 십 년 후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 같아 속상해졌습니다. 


<로스트 케어>에는 이런 아픈 사람, 노인의 마음은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자식의 마음은 알 수 있었습니다. 노인성 질환에 인지증(치매)까지 겹쳐 시달려야 하는 매일매일. 끝이 보이지 않는 고통.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금전적인 문제까지. 하루하루가 생지옥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대상이 부모이기에 죽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불경한 일이 되어버리고 그런 생각을 한 자신을 저주하고, 세상을 저주합니다.  돈이라도 있었으면 고급 실버타운에 입주라도 할 텐데. 그럴 돈은 없고 사회봉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없는 사이에 은발 머리의 천사가 집으로 찾아와 부모를 데리고 갔습니다. 상실감과 해방감이 동시에 찾아오고, 지쳤던 마음은 점점 회복이 되어갑니다. 

40명이 넘는 노인을 저세상으로 보냄으로써 노인들의 자식을 케어했던 '그'는 그런 작업을 '로스트 케어'라고 불렀습니다. 죄책감 같은 건 없습니다.  할 일을 했을 뿐이니까요. 그 작업은 어쩌면 성스러운 것에 가까웠을지도 모릅니다. 


이제 구사카베 요의 <A 케어>를 읽었을 때와 같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자식인 나는 '그'가 옳다고 할 수 없습니다.

노인인 나는 '그'를 맞이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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