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전쟁 환상문학전집 37
조 홀드먼 지음, 김상훈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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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베트남 전이 시작되었습니다. 베트남의 통일 과정에서 미국이 개입하고 참전하여 장장 15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던 전쟁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분들 중에서도 베트남전에 참전하면 동생의 병역을 빼준다거나 돈을 많이 준다거나 하는 말에 전쟁터에 뛰어든 분도 있었는데요. 그 일들이 실현이 되었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 역시 어릴 적, 어른의 무용담으로 들었던 이야기라서요. 우리나라는 미국 다음으로 많은 병력을 파병한 나라입니다. 그 와중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겠지요. 제 정신으로 행할 수 없는 일들도 많았을 겁니다. 지원해서 갔다 하더라도 정확히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알고서 갔을는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예민한 부분이라 전쟁을 겪어보지도 않은 주제에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 어렵네요.


스티븐 킹의 <롱 워크>에서는 소년들이 영문도 모른 채 걷습니다. 낙오되거나 걸음을 멈추면 죽는다는 규칙이 있지요. 왜 걷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완주하고 나면 큰 보상이 따른다는 말만 믿고 걷습니다.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습니다. 걷기 위한 자로 뽑혔으니 죽어가면서도 끝없이 걸어야만 했을 뿐. 어디 그들만 그렇겠습니까. 이번 전투에서 승리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 영웅이 되어 있거나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가 참전했던 군인들은 상대방을 죽여야 한다니까 총을 들고 적을 죽이고, 제정신으로 싸우기 어려워 마약의 도움을 받기도 했었죠. 훈련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날아든 포탄에 목숨을 잃기도 하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고 있던 친구가 형체도 알아볼 수 없는 시체가 되어 있기도 하고... 무서워서 그만두고 싶어도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지요. 겨우 살아남아 돌아간 고국은 상상과는 달리 나를 그렇게 환영해주지 않았고, 그래도 스스로 영웅이라 생각하며 이겨나가려 했지만, 전쟁 후에 남은 건 고장 난 몸뚱이, 고엽제 후유증, 마약의 유혹... 달라져버린 물가, 고향의 그들과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같은 곳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베트남전 이야기입니다.


SF의 고전, 조 홀드먼의 <영원한 전쟁>에서 똑같은 걸 보았습니다. 베트남전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물리학과 천문학을 전공한 조홀드먼은 졸업 후 베트남전에 징집되어 전투에 투입되지만 심각한 부상으로 명예 제대를 한 후 소설가의 길을 걷습니다. <영원한 전쟁>은 그의 물리 천문학 지식에다 베트남 참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광대한 우주에서의 전쟁을 보여줍니다. 

1997년 스타쉽 트루퍼스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거, 스타 크래프트를 영화화한 건가 보다.'하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영원한 전쟁>을 읽으면서 또 그런 실수를 했지 뭡니까. 자꾸만 스타쉽 트루퍼스 영화가 생각이 나서 '스타쉽 트루퍼스가 이 책 보고 쓴시나리오인가 보다.'라고 말이에요. 로버트 하인라인의 <스타쉽 트루퍼스>가 먼저입니다. 조 홀드먼이 그 책의 영향을 받았지요. 어딘가 모르게 연상되는 장면들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주인공들의 외모를 영화 스타쉽 트루퍼스의 등장인물들로 상상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좀 더 실감 났죠.


<영원한 전쟁>은 베트남전이 끝난지 20여 년 후의 근미래에서 시작됩니다. 지금 기준으로는 과거지만, 소설이 1970년대에 나왔으니 당시로 따지면 근미래죠. 1960년대에 달 구경을 했을 뿐인데 1990년대의 지구인들은 미래로 진출합니다. 우주 식민지 건설을 위해서였는데요. 지능이 있는 생명체가 지구인만 있는 건 아니니까, 당연히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특별 부대를 조직하는데, 아이큐 150 이상의 남녀 50명씩을 훈련시켜 군인으로 만듭니다. 싸우는 거 보면 아이큐랑 크게 상관있는 거 같지도 않았지만, 주인공인 만델라는 물리학, 천문학 지식을 원활하게 사용하는 걸 보면 고 지능의 군인이 필요했던 게 맞긴 한가 봅니다. 그들은 엘리트 징병 법에따라 뭐 거부할 자유 같은 건 없고 무조건 입대해서 훈련을 받고 군인이 됩니다. 제가 보기엔 머리 좋은 오합지졸이었는데, 높은 분들에게는 무슨 뜻이 있었나 봅니다. 훈련 중에 병사들이 픽픽 죽어나가는데, 살아남은 군인들을 정예병으로 하여 무시무시한, 지구인들이 토오란이라고 부르는 외계 생명체가 있는 한 행성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그들을 강인하게 만들기 위해 조작된 기억을 심어 적대심을 키워줍니다. 흥분상태의 병사들은 그 좋은 머리를 제대로 써볼 겨를 없이 본능만으로 마구잡이 총질을 하다 죽어갑니다. 정말 집에 가고 싶겠지요. 


SF 영화나 소설을 많이 읽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우주선에서의 시간과 지구에서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갑니다. '워프'라고 부르고 싶지만 책에서는 '콜렙서 점프'를 해서 공간을 뛰어넘습니다. 여기에서 시간차가 나기 시작하는데요. 자세히 들어가면... 제가 곤란해지므로 그냥 그렇구나 하며 읽으면 됩니다. 아무튼, 우주선 내에서 시간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지구로 돌아와보니 어머니가 여든이 넘어 있었습니다. 내가 알던 세상이 아닌, 21세기의 차가운 세상이. 주인공 만델라는 전쟁을 치르고 귀환을 했음에도 결국 적응하지 못해 다시 우주로 날아갑니다. 그것이 앞으로 몇 백년의 여정이 될지도 모르고요. 그리고 마침내 귀환했을 때, 그가 마주한 세상은 상상조차 하지 못 했던 뜻밖의 것이었습니다. 


이번 황금가지의 <영원한 전쟁>은 서문도 있고, 작가의 말도 있고, 마지막에 해설도 있는데요. 특히 해설. 왜 이리 긴 거야!라고 투덜거렸지만, 제가 막상 리뷰를 쓰려고 하니 말이 길어지네요. 이 책이 좀 그렇습니다. 우주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실은 지구와 다를 바가 없어요.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도 알 수 없고, 무엇을 위해 싸우는 건지도 알 수 없습니다. 심지어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거든요. 비극이죠. 그렇지만 해피엔딩입니다. (무슨 소리냐!) 

보통 자기 계발서를 읽을 때 플래그를 덕지덕지 붙이게 되는데요. 이 책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플래그가 엄청나게 붙었습니다. 읽다 보면 내가 우주에 있는 건지 지독한 현실에 있는 건지 알 수 없거든요. 주인공의 독백도 제대로 와 닿고 그의 사랑도, 전우애도 와 닿습니다. 사실 전투 장면이랑 우주 물리학 이야기할 때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상상하는 거죠. 제가 AU를 알겠습니까, 상대성 원리를 이해하겠습니까, 중력 가속도 같은 건 잊어버린지 오래죠. 작가가 정말 뿌듯해하는 부분이라는데,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를 우주에서 적용해 중력 가속도가 어쩌고저쩌고 함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는 장면이 있어요. 전, 뭔지 몰랐습니다. 아, 만델라가 말한 걸 좀 응용했고, 그래서 이 여자가 살았구나... 다행이다. 흑. 이런 기분이었으니까요.

만약에 물리, 천문학 지식이 풍부한 분이 읽으신다면, 전쟁에 대해 많은 걸 아는 분이 읽으신다면, 모든 부분에서 흠뻑 취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좀 질투가 났습니다 . 지식이 없는 제가 읽어도 이렇게 재미있는데 그런 분은 얼마나 재미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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