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런던의 조선 사람 엿보기 - 1904년 러일전쟁 종군기, 제2판
잭 런던 지음, 윤미기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먼저 이 책을 읽으려면 불쾌할 각오를 하고 읽는 것이 좋습니다. 초판 역자 서문에 분명히 경고(?) 문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뭐 옛날이니까 다소 그런 시선으로 볼 수도 있겠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책 읽기를 시작했는데요. 생각한 것보다 불쾌감이 심합니다.



역자가 그러했듯이 이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은 어쩌면 큰 실망감이나 모멸감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일본군을 따라서 러일전쟁을 취재한 종군기자로서 바라본 조선, 조선인은 이제 곧 제국주의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는 허약한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p.23


 일전에 읽은 <야성이 부르는 소리>의 저자 잭 런던의 조선 방문기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호기심도 일어, 그의 문장이라면 당시의 조선 모습을 서양인의 시선으로 잘 서술해놓았으려니 했는데요. 조선을 까도 너무 깝니다. - 이런 교양 없는 표현이라니.



조선인들은 이미 그들을 점령해 지금은 주인의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그들의 상전인 '왜놈'들의 몸집을 훨씬 능가하는 근육이 발달한 건장한 민족이다. 그러나 조선인들에게는 기개가 없다. 일본인을 훌륭한 군인으로 만들어주는 그러한 맹렬함이 조선인에게는 없다.

-p.61


한마디로 말해서 백인 여행자가 조선에 체류할 때 겪는 일들은 조선에 도착한 처음 몇 주 동안 기분 좋은 것과는 영 거리가 멀다. 만약 그가 예민한 사람이라면 두 가지 강한 욕구 사이에서 씨름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나는 조선인들을 죽이고 싶은 욕구이고 또 하나는 자살하고 싶은 욕구이다. 개인적으로 나라면 첫 번째를 선택했을 것이다. 지금은 면역이 되어서 여행을 계속하기에 충분한 이성이 생겼다.

-p.67


이 외에도 조선인과 조선을 비하하는 말들이 어찌나 많은지 일일이 열거하다간 책의 많은 부분을 옮기게 생겼으니 그만하려 합니다. 잭 런던이 본 조선은 그러하였으며 아무리 일본군을 따라 조선에 들어온 종군 기자였다지만 일본군에 대한 호감이 엄청납니다. 그러니 게으르고 비위생적인 데다가 탐관오리가 득시글대는 조선은 일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일본군에 대한 호감이 조금씩 낮아지는 것 같기도 했지만요.


어쨌든 이런 이야기들이 종군기자 잭 런던의 글을 통해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생각하니 분하기 짝이 없습니다. 서양인의 눈으로 본 조선이 그러하다는 것 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일본에 비해 어쩌고저쩌고... 운운하는 것은 일본의 식민지배가 조선을 위해 행해진 것이며 무척 고마운 일이고 당연한 일이라는 게 그의 시선이었다니. 일본인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사를 작성했다는 것 자체가 끔찍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는 편중된 시선으로 바라보며 일본군의 착취나 수탈, 도둑질도 정당하다 생각했습니다.



조선인은 또 다른 불만을 토로한다. 병사들이 닭과 달걀을 훔쳐 간다는 것이다. 가난한 조선 백성의 형편에서 그것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다른 식으로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병사들이 있는가? 전쟁이 존재해온 이후로 병사들은 닭장을 점령하고 닭과 달걀은 병사들의 공공연한 먹을거리처럼 간주되어오지 않았던가? 인간이 전쟁을 일으킬 만큼 비 이성적인 한 병사들의 위장과 사고방식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p.75



그러니 자기 눈으로 보기에 미개해 보이는 조선인의 집에 들어가서 말에게 먹일 보리를 내놓으라고 큰소리를 떵떵 쳤겠죠. 가난에, 수탈에 시달리고 러일전쟁에 몸 둘 곳 없는, 자신들 끼니도 걱정해야 하는 조선인의 집에 들어가서 말먹이를 내놓으라는 게 말이나 됩니까. 달라고 할 땐 안 주더니 돈을 내니 너도나도 주더라며 비아냥거리던데,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그런 행동이 용납되었던 걸까요? 아니라는 걸 압니다. 그런데 어째서 조선에서만 그랬을까요? 그런 점에서 서양인이 - 잭 런던 혼자만의 시선이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조선인들을 어떻게 보았는가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실은, 조선에 관한 묘사보다는 러일전쟁에 관한 종군 기자로서의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일본군의 허가가 떨어지지 않아 최전방으로 가지 못하고 조선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작성한 조선 기사에, 조선인의 후손인 제가 화가 날 수 밖에요. 그 당시를 살아보지 않아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알 수 없습니다만. 앞서 이야기 한 것처럼 속이 상했습니다. 

더불어, 혹여 우리가 다른 나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잭 런던이 조선을 보는 시선으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어쩌면 무의식중에, 혹은 의식하면서 그런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21세기 임에도 불구하고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