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소설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김소연 옮김 / 손안의책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이런 기괴한 일이라니, 정말 싫습니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끔찍한 일들이 나에게만 보이는, 나에게만 들리는, 나에게만 느껴지는 것이라니. 

조현병 환자의 기분이 이런 걸까요? 

공포로부터 겨우 빠져나왔나 싶었는데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고 마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싫은 소설>책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이 책은 '싫은 아이','싫은 노인','싫은 문','싫은 조상','싫은 여자친구','싫은 집', 그리고 마지막의 '싫은 소설'로 이루어진 연작 단편입니다. 각 단편의 주인공은 서로 다른 사람으로 각자의 괴이한 일들을 겪습니다. '싫은 아이'의 화자 다카베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내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기분 나쁘게 생긴 아이가 집에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정체가 뭘까요? 아이에게 시달리는 새에 아내와 다카베는 두려움에 떨다가 긍정의 힘을 발휘, 정황을 극복합니다만, 이내 무너지고 맙니다. 


  어째서 논리가 통하지 않나!

  하아, 하아, 하아.

  나는 - 힘이 빠져서 그 녀석 위에 무너졌다.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근육이 이완되어 있다. 나는 더 이상 중력을 거스를 수가 없다. 내 본체는 내 피부에서 흘러나가 배 밑에 있는 싫은 아이를 주르륵 빠져나가서 바닥에 스며들고 말았다.

  싫은 아이는 그런 나를 밀어내고 타박타박 어디론가 가 버렸다.

  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딱 한마디,

  "싫어......"

라고 말했다.

-p.66


몇 번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시 읽고 또다시 읽어도 도대체 어떻게 되었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각 단편들에 내내 등장하는 후카타니의 말에 의하면 폐인이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정신을 놓고 폐인이 되어버리는 장면을 저렇게 표현한 것이로군요. 당사자의 느낌이란 저런 것일까요. 


'싫은 노인' 편은 끔찍합니다. 사방에서 분뇨와 노인 냄새가 뒤섞인 불쾌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습니다. 후카타니의 직장 동료 구보타의 아내 기미에가 화자로 등장해 함께 사는 노인의 변태적인 행위에 시달리는 이야기를 합니다. 남편이 출근 한 사이 집요하게 그녀를 괴롭히는 노인. 치매인가 싶었지만 멀쩡한 정신으로 그런 행동을 하다니. 정말 싫습니다. 싫어요. 


'싫은 문'에서는 후카타니의 동창이자 이번 이야기의 화자인 기자키의 절망과 그에게 나타난 기묘한 구원의 문이 등장합니다. 어떻게 되었다는 이야기일까요? 남의 운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하면 풍요로워진다는 꿀같은 말에 넘어간 그는.


'싫은 조상' 편에서는 후카타니의 동료 가와이가 화자입니다. 무개념 부하의 불단을 억지로 떠맡은 가와이는 불단이 집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좋지 않은데 설상가상으로 그곳에서 기분 나쁜 냄새까지 납니다. 도대체 이 안엔 뭐가 들어있는 거야! 우연히 열린 문을 통해 그가 본 것은... 묘사만으로도 그 기분나쁨이 확실히 전해져왔습니다.


'싫은 여자친구'는 후카타니의 후배 고리야마가 화자로, 새로 사귄 여자친구 때문에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여자친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화자가 싫다고 하는 일만 골라서 합니다. 심술쟁이라서 그러는 정도의 귀여운 짓이 아닙니다. 싫다고 말했던 것들에 둘러싸여버린 고리야마. 결국 여자친구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하고 맙니다. 네가 싫다고. 그러니 이제 집에 오지 말아달라고. 그날부터 여자친구는 그의 집에서 살기 시작했습니다.


'싫은 집'에서는 후카타니의 예전 상사 도노무라가 아내와 사별 한 후 집에서 기묘한 고통을 겪습니다. 한 번 겪었던 고통을 반복해서 겪게 되는 건데요.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문을 나서려다 옷장에 새끼발가락을 찧은 이후 자꾸만 반복해서 옷장에 발가락을 찧습니다. 심지어 옷장을 없앤 후에도 말이에요. 같은 위치에서 발가락을 다칩니다. 이런 사소한 고통, 불쾌한 감각들은 그것들이 없는데도 계속됩니다. 그 집안에만 들어서면.


'싫은 소설'에서는 드디어 매 단편에 등장했던 후카타니가 화자로 등장합니다. 지인들에게 계속되는 이상한 일들. 심지어 그들 중 한 명은 죽고 말았습니다. 어쩐지 자기 차례가 아닐까 불안할 만도 하죠. 후카타니는 우연히 들른 고서점에서 무척 낡아 보이는 신간<싫은 소설>을 발견합니다. 심지어 서점 주인이 쓴 책이라는 데요. 정말 싫은 상사 기타니와 함께 출장을 가다가 읽기 시작한 이 책에는 지금까지 제가 읽던 내용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자신이 주인공인 책이라니. 기분 나쁜 농담이나 스토커의 책은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했지만 후카타니가 알게 된 사실은 타임리프에 걸리고 말았다는 끔찍한 사실이었습니다. 최악의 상사의 옆자리에서 타임리프라니. 말도 안 돼!



아아, 싫어, 싫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싫은 것 투성인지.

논리로 생각하려 하지 말고 장면만을 떠올려야 합니다. 논리로 생각하려 하면 납득할 수 없어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하니까요.



이 책을 잠이 오지 않는 열대야에 읽을 기묘한 책으로 추천합니다.

어쩌면 더 잠이 안 올지도 모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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