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의 뒤 풍경
케이트 앳킨슨 지음, 이정미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저희 아이가 사랑의 빵 동전 모으기를 한다는 말에 집안의 동전을 모아서 건네셨습니다. 집에 돌아와 할머니의 동전 주머니를 끄르던 아이는 1967년에 발행된 10원짜리 주화를 발견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저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온 이 동전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거쳐 우리에게 왔을까요.


 

처음엔 지금과는 다른 대접을 받으며 행복했겠죠. 60년대 10원짜리의 가치는 지금보다 훨씬 높아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요. 1963년엔 라면 한 봉지가 10원이었거든요. 이 돈을 건네받으며 라면 한 봉지를 내어준 구멍가게 아주머니가 가난한 살림에도 아이에게 고기 비슷한 걸 먹여보려고 아이 손에 도로 10원을 쥐여주며 나가서 번데기를 사 먹으라고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는 기쁜 얼굴로 번데기 장수에게 그 돈을 주고 간식을 먹었겠지요. 저보다 연상인 이 동전은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서 저를 만났습니다. 어쩌면 우린 구면인지도 몰라요. 생명이 없는 것이지만 어쩐지 반가운걸요. 이 동전은 저를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요. 물건이 무언가를 기억한다거나 뜻을 품는다는 개념은 일본의 정서 같기도 한데, 꼭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물관의 뒤 풍경>에 등장하는 행운의 부적 '토끼발'은 정말이지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합니다. 프레더릭이 놓은 덫에 걸린 토끼를 요리하기 전, 레이철은 부적으로 삼기 위해 다리를 잘라둡니다. 토끼발은 기원전부터 행운을 가져다주는 부적이었으니까요. 여전히 부적으로서, 행운의 상징으로서 팔리고 있다니 신기하죠? 아무튼 레이철은 자신이 장만한 토끼발이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후대에까지 - 비록 의붓자식의 후대이지만 - 이어질 거라는 건 상상도 못했을겁니다.  이 토끼발은 레이철의 손을 떠나 넬 - 잭 - 프랭크 - 클리퍼드 - 그리고 번티에게까지 이동하는데요. 번티의 딸 퍼트리샤가 정원에 묻어줄 때까지 주인을 수호합니다. 단지 주인을 떠나 다른 이에게로 갈 때면 본래 주인의 모든 운을 빼앗아버려 세상과 작별 인사를 하게 만들었지만요.


토끼발 이야기를 먼저 하긴 했지만, 이 책은 '토끼발'이나 '부적'이야기가 아닙니다. 물론 '박물관' 큐레이터의 속사정 같은 이야기도 아니고요. 이야기는 한 아이, '루비'의 출생, 아니 생성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어, 내가 생긴다!'라는 말로 이야기를 여는 루비는 1인칭 시점으로 이야기를 하는데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1인칭 전지적 시점입니다. 신도 아닌데요. 하지만 사실입니다. 루비는 남들이 모르는 것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자기 언니 질리언이 1959년에 어떻게 죽는지까지 알고 있습니다. '생긴'날에요. 우리에게 벌써 그 이야기를 해주거든요. 루비는 모르는 것이 없는 아이입니다.증조모대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다 알고 있습니다. 엄마나 할머니조차 모르는 세세한 부분들까지도요.


"영원히 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퍼트리샤. 모든 건 다 어딘가에 있어. 핀 하나하나까지도 다."

"핀?"

"내 말 믿어도 좋아, 퍼트리샤. 난 세상의 끝까지 갔다 왔거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아." 갑자기 바람이 쌀쌀해지자, 우리는 코트 깃을 세우고 서로 팔짱을 끼면서 고이 잠들어 있는 망자들 사이로 조심스레 발길을 옮긴다.

-p.534


그러나 다른 이들은 모두 알고 있는 중요한 사실 하나만은 모르고 있습니다. 몇 번이고 그녀의 엄마가 복선을 던져주었었는데도 말이죠. 그녀는 전혀 알지 못 했습니다.


"우린 왜 여태까지 이 얘길 한 번도 안 한 거야?" 나는 번티의 침묵이 두려웠다. 그 침묵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몰랐으니까. 마침내 번티가 초조하게 마른침을 삼키고는 말했다. "네가 잊어버렸어."

"내가 잊어버렸었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 내가 잊어버렸었다는 게?"

-p.462


루비는 작품 전체를 아우를만큼의 커다란 미스터리를 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안고 있었던 것뿐만 아니라 4대에 걸친 여러 가지 미스터리들이 나타났다 해결되고 사라집니다. 아마 다른 이들은 죽을 때까지도 진실을 몰랐을 겁니다. 저도 루비가 알려주기 전까지는 몰랐거든요.


이 작품은 독자의 각기 다른 상상이 끼어들 여지가 없을 정도로 세밀한 묘사를 하고 있습니다.


나의 첫날! 뮤지엄 가든의 모든 나무에 새잎이 돋기 시작하고, 번티의 머리 위 높은 하늘은 완연한 파란색을 띤다. 만일 어머니가 손을 뻗는다면(물론 안 그러겠지만) 하늘을 만질 수도 있을 텐데. 아기 양처럼 보송보송한 하얀 구름들이 서로 포개져 있다. 우리는 콰트로첸토의 천국 속에 있다. 새들이 짹짹거리며 쏜살같이 내려와 우리 머리 위에서 정신없이 춤을 춘다. 천사의 축소판인 조류 가브리엘들이 수태고지를 하려고 작은 날개 근육을 파닥이며 전속력으로 나의 도래를 외치러 왔도다! 할렐루야!

-p.25


초반에는 이런 문학적이고 세세한 묘사를 따라가지 못해 진도가 나가지 않아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수많은 등장인물들. 맨 뒤에 친절하게도 그려준 가계도를 메모 노트에 옮겨 그리고 부연 설명을 첨가해나가면서 읽어야만 했습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 비록 '주'의 형태로 따로 처리했다지만 - 루비의 서술은 한 걸음을 떼어놓을 때마다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찬 듯 저를 느리게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고 오름을 오르듯 천천히 꾸준히 걸을 수밖에 없었지만 150페이지쯤에서 그 정상에 도달, 드디어 모든 풍경이 눈앞에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구름과 안개에 가려진 부분은 제외하고요. 그것들은 페이지를 거듭하며 서서히 걷혀나갑니다. 책의 제목은 <박물관의 뒤 풍경>이지만 저에겐 <오름 위 풍경>이었습니다.

 인생의 부분만 보았을 때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보았을 때는 놀랍도록 미스터리 한 부분들이 숨어있고,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이 다 진실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지요. 책에 나오는 어머니들과 아이들은 서로에게 불친절합니다. 어쩌면 저럴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요. 그것이 사랑의 한 형태라고 보아도 좋을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하지만 결국 그 판단 자체를 할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책에 달린 주석이 꽤 많습니다. 읽지 않아도 무방합니다. 본문 중에 아니라 권말에 실려있어 독서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주석을 뒤적이고 있는 저를 발견할 때면 자신의 비상식에 슬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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