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형제의 길 - 흔들림 없이 끝까지 함께 걸어간 동화의 길
손관승 지음 / 바다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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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베를린 특파원 출신의 저자 손관승은 콘텐츠 기업 IMBC 대표이사를 역임하다 퇴직 후, 번 아웃 증후군을 겪던 중 여행길을 따라 문학을 찾는 방법으로 그의 고통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괴테와 함께 한 이탈리아 여행>이 그 첫번째 책이었는데요. 이번엔 <그림 형제의 길>을 통해 문학 여행을 합니다. 


독일에는 그림 형제와 동화를 따라가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고 가볍게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메르헨 길'이 조성되어 있는데요. 하나우에서 브레멘을 잇는 무려 600 Km에 달하는 길이라고 합니다. 이 길은 60여 개의 도시와 8개의 국립공원을 통과하게 되어 있다고 하네요. 그야말로 스토리를 위한 스토리 텔링 로드가 아닌가 합니다.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이 '메르헨 길'을 따라 진행되는 여행기 비슷한 것인가 했습니다. 저자가 도시와 마을을 이동하며 다정한 사람들도 만나고 친절한 사람들도 만나지만 소중한 카메라를 소매치기당하는 에피소드 같은 것들도 있었거든요. 슈타이나우 시청 앞 광장 분수에 있는 개구리 왕자 조각상 이야기를 하면서 개구리 왕자, 그리고 개구리에 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식으로 진행되는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카메라를 소매치기당하다니. 기록을 위해 촬영하던 사진들이 모두 사라져버렸으니 이 일을 어쩝니까.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괜찮아. 그림동화의 주인공들은 모두 역경을 이겨냈는걸." 그리고 계속 메르헨 길을 걸어갑니다. 그런 그를 따라 여행을 하다 보면 메르헨의 세계를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요. 각 장소에 얽힌 이야기나 동화를 말하다 보니 저자가 신이 난 모양입니다. 어느새 여행기는 간데 없고 그림 형제의 일대기가 펼쳐지거든요. 잠시 이야기하며 장소에 따라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전하려나 했는데, 그냥 그림 형제의 이야기로 바뀌어버렸어요. 마치 그림 형제의 간추린 위인전을 보는 듯했습니다. 


리뷰를 하기 전에 잠시 이것저것 조사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림 형제의 동화집에 실려있던 원작에 대해 모르는 분들이 의외로 많더라는 것인데요. 사실 초판에 실려있던 이야기들은 당시의 사회상에 비추어보아도 너무 잔인하거나 원색적이라는 이유로 2판에서 조금 손보았습니다. 재판할 때마다 조금씩 수정을 해 나갔기에 200년이나 지난 지금은 좀 달라져도 괜찮지 않나 싶겠지만, 구전동화는 시대에 따라 달라지더라도 엄연히 작가가 있는 글의 원작을 변형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는 어릴 때 원작에 가까운 글로 읽었기에 어른이 된 지금 이렇게 이야기할수 있는 것이겠죠. 원작에 대해 모르는 사람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림 형제가 개구리 왕자의 원작자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는데요. '개구리 왕자'는 그림 동화의 초판에서부터 꾸준히 그림 동화집의 첫 번째 이야기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그림 형제는 형인 야코프 그림과 빌헬름 그림을 말하는데, 야코프 그림은 학문이나 출판 기획 프로젝트를 맡았었고 빌헬름 그림은 문학에 재능이 있었고 문장력도 뛰어났습니다. 형이 자료를 조사하고 출판에 힘쓰고 동생은 글을 썼지요. 그림 형제는 평생을 거의 함께 살았는데요. 그들이 사정상 잠시 떨어져 있을 때 주고받은 서신을 보면 얼마나 그 우애가 깊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10대 초반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모님 마저 돌아가시자 그들의 어머니와 형제들은 가난 속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몇 년 후 어머니마저 돌아가시자 가난, 가난, 그리고 더욱 가난... 하지만 그들은 꿈을 잃지 않습니다. 꾸준한 가난과 병약했던 빌헬름의 질병과 싸우면서도 끝까지 노력했지요. 그들은 자신들 앞에 닥친 가난뿐만 아니라 독일 국민들 모두에게 꿈을 줄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그것이 바로 메르헨이었던 것입니다. 그림형제가 생각했던 동화란 '민족적인 뿌리의 가장 순수한 정신적 근원'이었습니다. 동화에는 낯선 첨가물이 없이 민족의 독자적인 문학적 통찰력과 성향이 드러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자신들이 수집한 이야기를 학술적 원천으로 삼아 그대로 이해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자신들의 의지대로 가감하거나 치장하지 않고서 말이지요. 


무척 대단한 인물들입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들의 꿈을 잃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기까지 하다니요. 그들은 독일인의 민족의식 고취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린이에게 꿈과 상상의 세계를 주었습니다. 위인전 같은 이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다시 메르헨 길에 대한 여행기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독일에 가게 된다면 이 길을 꼭 걸어보고 싶습니다. 600Km니까.. 설마 모두 걸어서 이동하는 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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