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혹은 시작
우타노 쇼고 지음, 양억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예를 들어 러시아의 원자력 발전소가 폭파하든,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동북지장의 핵연료 시설에서 방사선이 누출되든, 그것이 직접 우리 집을 오염시키지 않는 한 나는 평화롭게 살 것이다. 

나의 솔직한 기분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웃에서 누가 유괴를 당하든 총을 맞아 심장이 터지든 내 알 바 아니다. 물론 유족의 처지를 생각하면 가슴 아프지만, 그건 그냥 표면적으로 마음이 그렇다뿐이고 마음 깊은 곳에는 슬픔도 없다. 오히려 내 가족에게 아무 일이 없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앞선다. 

-p.67


사이타마현 한 마을에서 초등학생이 살해됩니다. 그것도 어느 정도의 간격을 두고 연쇄적으로.

아이를 유괴하고나서 아이의 아버지 혹은 어머니의 메일 계정으로 한 통의 협박장이 도착하는데, 이 협박장은 유괴된 아이의 휴대폰으로 발송된 것입니다. 범인은 단 한통의 협박장만 보낸 후 휴대폰에서 배터리를 분리해서 위치가 추적되지 않게 합니다. 협박장은 상당히 기묘한 것이 아이의 유괴 몸값치고는 크지 않은 액수를 요구합니다. 마치 그 집의 사정을 알고 있다는 듯, 부모가 저축성 예금을 담보로 대출할 수 있을 정도의 범위인 60~200만엔 정도만 요구합니다. 참 기묘하지요. 그리고 협박장에서 늘 그렇듯이 경찰에게 알리지 말라고 합니다. 하지만, 부모들은 경찰에 알리고, 몸값을 지불하지만 아이는 살해당합니다. 사실은 협박장을 보내기도 전에 이미 살해 했습니다. 살해 도구는 소형 권총. 적합하게 설계되어 있어, 총을 쏜 뒤의 반동이 강하지 않아 힘이 좋지 않은 사람도 이용 할 수 있는 도구였습니다. 

첫 번째 희생자 에바타 신고 의 이웃인 '나'는 아들 유스케와 친했던 신고의 유괴 살해로 약간 안됐다는 생각은 했지만 사실 내 일 처럼 마음이 아프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결국은 남의 일이니까요. 내 일처럼 여길 수는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내 가족, 내 자신이 중요하니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만 않으면 되잖아요. '나'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아들 방에서 어른의 명함을 발견합니다. 처음엔 초등학교 6학년 아이다운 호기심으로 어디서 주워왔으려니... 하고 넘어갔는데요. 며칠 후 그 명함 주인의 아들이 연쇄 살인의 희생자가 됩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상해서 아들의 방을 몰래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이제까지 연쇄 살해당한 아이들의 부모 명함을 발견합니다. 처음엔 우연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우연이 겹치다니. 조마조마해집니다. 그리고 결국. 서랍의 비밀층에서 권총과 실탄까지 발견하고맙니다. 

 


충격을 받은 아버지는 좀 더 조사를 하는데, 조사를 하면 할 수록 아들이 그 범죄에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은 깊어만 갔고, 유괴범이 시키는 대로 멋모르고 아이들을 불러내는 역할 정도만을 했을거라는 상상이 결국은 아들이 범인이며, 직접 살해했다는 결론에 이릅니다. 


결국 '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합니다. 다음에 하자고 결심한 순간 그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온가족이 처참하게 살해된 현장이었습니다. 그것도 자기가 준비했던 흉기로. 정말 놀랐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망상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여기 있는 나와 지금 여기 있는 아빠는 현실의 나와 아빠가 아니라는거야. 현실의 아빠가 보는 환상 속에 존재할 따름이야."

-p. 355


이 아버지는 아들이 범인임을 확신하고선 어떻게 말할까, 아들에게 자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하나... 알린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정말 이 아이는 어째서 이런 일은 저질렀을까하며 밤새 잠 못 이루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은 정말 사람을 들었다놨다 합니다. 어쩜 이럴 수가. 두근두근 했다가 한시름 놓기도 하고, 다시 좌절했다가 다시 두근두근하게 하고. 읽는 내내 심한 파도 위에 떠 있는 배안에 있는 기분을 느끼게 했습니다. 

추리 소설 작가가 사건을 하나 만들어 내고선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향을 고민할 때 이렇겠구나. 이렇게 풀어도 저렇게 풀어도 어떻게든 사건은 흘러가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단 한갈래의 방향만이 우리에게 있을 뿐입니다. 어떤 방법이 최선인지 알 수 없으니 자신의 선택을 믿고 따라가야합니다. 


유스케는 어째서 살인을 저질렀을까요? 

그리고 아버지는 어쩌자고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렸을까요.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그리고 과연 그 선택에 대한 결과물을 모두 감당 할 수 있을까요?


세계의 시작은 카오스였다고 한다. 카오는 혼돈과는 다르다. 애당초 거대한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고 '공'은 텅 빈 무엇이 아니라 모든 가능성을 내재한 무의 상태를 말한다. 그렇다. 오늘처럼 아주 새파란 하늘 같은 것이다. 

-p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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