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언더그라운드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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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가련한 젊은 샐러리맨이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했던 이중의 심각한 폭력에 대해, 아무 관계도 없는 사람이 '이건 이상한 세계에서 온 것' '저건 정상적인 세계에서 온 것'이라고 이론적으로 구분하여 설명한들 당사자에게 그것이 무슨 설득력을 가질 수 있을까 하고, 그들에게는 그 두 종류의 폭력을 여기와 저기로 구별하여 생각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보이는 겉모습이야 다를지언정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둘은 같은 지하의 뿌리에서 뻗어나온 동질적인 것 같아 보인다. -.쪽

이윽고 나는 모든 판단을 정지하고 말았다. 무엇이 올바르고 무엇이 틀린 것인지, 무엇이 정상이고 무엇이 광기인지, 누구에게 책임이 있고 누구에게 책임이 없는지, 그것은 이 취재에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적어도 최종 판단을 내리는 것은 내가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어깨에서 힘을 빼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나는 거기에 있는 말의 집적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나름대로 몸을 가루로 만들며 '또 하나의 이야기'를 자아내는 거미가 되었다. 어두컴컴한 천장 한구석에 있는 이름 없는 거미 말이다. -.쪽

지하철 사린사건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피해자분들의 마음으로 보면, 이 책을 쓰고 있는 나는 '안전지대'에서 온 인간이며, 언제든 그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 인간이다. 그런 사람에게 '우리가 맛본 괴로움을 정말로 알 수 있을 리 없다'라고 말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 말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알 수 있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멈추고 상호 커뮤니케이션을 끊어버린다면, 우리는 그 이상 어디로도 나아갈 수 없을 것이다. 그 뒤에 남는 건 하나의 도그마밖에 없다.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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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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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팬도 뭣도 아니고, 읽어본 책은 오로지 상실의 시대밖에 없는 내가 이 책을 고르게 된 건 순전히 서울역의 storyway 편의점에서 기차 타기 5분 전에 고를 수 있었던 책 중에서는 그나마 읽을만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제목이 풍기는 부정적인 이미지 - 그러니까, 책으로 묶어서 내기에 좀 부족한 내용인데 작가의 유명세에 기대어 그럭저럭 팔릴 것을 기대하고 만들어낸 듯한? - 때문에 굳이 적극적으로 사서 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런 기대치를 낮춘 자세로 읽어서 그런지, - 물론 짧은 수상소감들이나 나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지인들에 대한 인물평 같은 '잡문'이라는 제목에 꼭 들어맞는 글들도 있고, 재즈에 관한 글들도 도통 무슨 얘기인지 무식해서 알아먹을 수가 없었지만 - 몇몇 글들은 꽤나 만족스러운 독서 경험으로 남았다. 서문에서 '설날 복주머니' - 그러니까 안에 들어있는 것이 뭔지 모르고 샀는데 그 중에 마음에 드는 것도 있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는 - 를 열어보는 느낌으로 책을 읽었으면 좋겠고, 그렇게 해서 자신 안에 있는 '잡다한 심경'의 전체상 같은 것을 조금이라도 느껴준다면 기쁘겠다고 쓰고 있던데, 그런 느낌이 딱 맞는 것 같다.  

 

역시나 상실의 시대밖에 읽지 않은 내가 '과연 그렇군' 하는 느낌을 가질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하루키 자신은 - 막상 소설이 아닌 - "언더그라운드"라는 책을 쓴 이전과 쓴 이후의 세계관이나 소설을 쓰는 자세가 어느 정도 달라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소설가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좀더 느끼게 되었다고 하면 정확한 설명이려나. "언더그라운드"의 책띠에도 하루키 문학의 일대 터닝 포인트이고, 1Q84를 쓰도록 한 계기가 되었다는 식으로 소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잡문집에도 "언더그라운드"를 주제로 한 세 편의 글이 실려 있고, 다른 글들에서도 간간히 언급이 된다. 마침 그 주에 나온 한겨레21에서는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의 피해자들의 현재의 삶을 추적한 르포 특집을 실었는데, 그 기사에서 인터뷰의 방식과 피해자들을 대하는 기본적인 관점은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에 빚지고 있다고 쓰여 있기에(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31489.html), 결국 연쇄적으로 "언더그라운드", 그리고 "언더그라운드 2"라는 제목이 달린 "약속된 장소에서"까지 읽게 되었다.

 

그 외에도 상실의 시대의 원제인 'Norwegian Wood'가 사실은 하루키가 번역한 바대로의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라 '노르웨이산 가구'라는 주장에 대한 논평이라던지, 바흐의 인벤션을 쳤을 때의 신체와 정신의 불균형이 치유되는 느낌이라던지, 영문 소설 번역을 '취미'삼아 계속 하고 있는 이유라던지 하는 것들도 인상깊게 읽은 부분이기는 한데, 다른 사람들과 가장 공유하고 싶고, 이 책에서의 비중도 가장 높은 글이라고 생각되는 건 아무래도 예루살렘상 수상소감문으로 쓴 '벽과 알'이라는 글이다. 전체를 다 옮기기에는 여러 가지 부담이 있어서, (영어로 쓴) 원문 링크를 걸어 놓는다. 

 

 http://www.salon.com/2009/02/20/haruki_muraka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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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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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들 사이에서 월척을 건져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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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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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틈틈이 화차를 다시 읽고 일요일 밤 열시 반에 영화를 봤다. 거의 4년만에 다시 읽는 것이라 대략적인 줄거리만 간신히 기억나는 수준이었는데, 미미 여사님의 소설이 늘 그렇듯 결말이 어떤 것일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줄거리를 안다 해도 소설을 읽는 맛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물에 대한 묘사, 디테일한 표현들을 음미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그 중에서 몇 개만 꼽아보자면,

 

- 사토루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또다시 다리를 대롱대롱 흔들었다. '언짢음'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슬리퍼를 그렇게 해서라도 벗어던지려는 듯이.

- 스테이플러로 연달아 서류를 찍다가 심이 바닥나면 그냥 헛돌기만 한다. 혼마의 머릿속은 지금 딱 그런 상태였다.

- 구라타가 말했다. 미세하게나마 목소리 톤이 기묘해졌다. 마치 그 이야기를 하려면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전혀 조율되지 않은 건반을 끄집어내야 한다는 것처럼.

 

뭐 이런 표현들. 그치만 역시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사회에 던지고 싶은 분명한 메시지가 있는데, 그걸 소설이라는 형식에 담게 되었을 때 묘하게 안 어울리거나 겉도는 어색함 같은 게 전혀 없도록 만드는 솜씨인 것 같다. 남편은 뭐 이런 통속소설(자기도 재밌게 읽었으면서)을 두 번씩이나 읽고 있냐며 핀잔을 주는데 나는 고전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고 시대성이 보편성에 조응해서 다수의 독자에게 호응을 얻는 작품인 거 아닌가 싶고, 그런 책들을 반복해서 읽는 기쁨을 계속해서 누리고 싶다.

 

소설이 아주 천천히 스케치를 그려나가면서 그림을 완성시켜 보이는 와중에, 주인공 교코는 철저히 외부로부터 얻어진 정보로부터 재구성되어서, 어느 정도 모호함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로 끝까지 남는 것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차경선(김민희)을 처음부터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고 원작에서 중요시되었던 사회적 메시지보다는 약혼남과의 관계나 새로운 신분을 얻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경선의 내면적인 괴로움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소설에서는 약혼남이 처음에 혼마 형사에게 숙제만 던져주고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것에 반해 영화에서는 약혼남이 형사와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차경선의 과거를 탐문, 추적하면서 경선과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사랑의 감정으로 애를 태운다. 이런 부분에서는 조금 한국적인 정서가 개입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소설보다 영화에서 시점을 다각화하고 인물 사이의 감정선을 채워 넣은 것이 원작에 대한 창조적 변형일 수는 있겠는데, 솔직히 난 이선균의 발음 때문에 몰입이 잘 안 됐다 ;; 뭐 하지만 미미 여사님 본인은 아주 감명 깊게 영화를 보셨다고 하니까..(http://blog.aladin.co.kr/tbox/5492005)(미미 여사님에게 이선균의 발음은 중요한 포인트가 되지 않으셨을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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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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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어도 역시 최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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