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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24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2월
평점 :
주말에 틈틈이 화차를 다시 읽고 일요일 밤 열시 반에 영화를 봤다. 거의 4년만에 다시 읽는 것이라 대략적인 줄거리만 간신히 기억나는 수준이었는데, 미미 여사님의 소설이 늘 그렇듯 결말이 어떤 것일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다보니, 줄거리를 안다 해도 소설을 읽는 맛이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물에 대한 묘사, 디테일한 표현들을 음미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그 중에서 몇 개만 꼽아보자면,
- 사토루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리고 또다시 다리를 대롱대롱 흔들었다. '언짢음'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슬리퍼를 그렇게 해서라도 벗어던지려는 듯이.
- 스테이플러로 연달아 서류를 찍다가 심이 바닥나면 그냥 헛돌기만 한다. 혼마의 머릿속은 지금 딱 그런 상태였다.
- 구라타가 말했다. 미세하게나마 목소리 톤이 기묘해졌다. 마치 그 이야기를 하려면 일상적으로 쓰지 않는, 전혀 조율되지 않은 건반을 끄집어내야 한다는 것처럼.
뭐 이런 표현들. 그치만 역시 그보다 더 좋은 것은 사회에 던지고 싶은 분명한 메시지가 있는데, 그걸 소설이라는 형식에 담게 되었을 때 묘하게 안 어울리거나 겉도는 어색함 같은 게 전혀 없도록 만드는 솜씨인 것 같다. 남편은 뭐 이런 통속소설(자기도 재밌게 읽었으면서)을 두 번씩이나 읽고 있냐며 핀잔을 주는데 나는 고전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고 시대성이 보편성에 조응해서 다수의 독자에게 호응을 얻는 작품인 거 아닌가 싶고, 그런 책들을 반복해서 읽는 기쁨을 계속해서 누리고 싶다.
소설이 아주 천천히 스케치를 그려나가면서 그림을 완성시켜 보이는 와중에, 주인공 교코는 철저히 외부로부터 얻어진 정보로부터 재구성되어서, 어느 정도 모호함을 간직하고 있는 인물로 끝까지 남는 것과는 달리 영화에서는 차경선(김민희)을 처음부터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고 원작에서 중요시되었던 사회적 메시지보다는 약혼남과의 관계나 새로운 신분을 얻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는 경선의 내면적인 괴로움에 초점을 맞춘다. 특히 소설에서는 약혼남이 처음에 혼마 형사에게 숙제만 던져주고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 것에 반해 영화에서는 약혼남이 형사와 거의 동일한 비중으로 차경선의 과거를 탐문, 추적하면서 경선과의 끈을 놓지 않고, 계속 사랑의 감정으로 애를 태운다. 이런 부분에서는 조금 한국적인 정서가 개입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소설보다 영화에서 시점을 다각화하고 인물 사이의 감정선을 채워 넣은 것이 원작에 대한 창조적 변형일 수는 있겠는데, 솔직히 난 이선균의 발음 때문에 몰입이 잘 안 됐다 ;; 뭐 하지만 미미 여사님 본인은 아주 감명 깊게 영화를 보셨다고 하니까..(http://blog.aladin.co.kr/tbox/5492005)(미미 여사님에게 이선균의 발음은 중요한 포인트가 되지 않으셨을테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