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넌 고마운 사람
배지영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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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넌 고마운 사람  

 

  내가 처음 라디오에 사연을 보냈던 기억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그때 제일 좋아하던 배우가 라디오 진행을 하고 있었고 난 신청곡과 간단한 사연을 보낸 뒤 내 사연이 읽힐까 녹음준비를 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DJ의 목소리를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그 라디오 프로그램은 기독교방송이라 CCM을 틀어주었는데 난 그때 아마 소리엘의 곡을 신청했던 것 같다. 내 사연이 나오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녹음버튼을 누르고 공테이프에다 신청곡을 녹음하던 때가 새삼 그립다. 그 배우는 지금 일일드라마에서 본부장 역을 하며 브라운관에 종종 얼굴을 비추고 있다. 왜 갑자기 라디오 이야기를 꺼내냐 하면... 오늘 읽은 서평도서 <이미 넌 고마운 사람>의 저자가 그때 내가 좋아했던 배우가 진행했던 <꿈과 음악 사이에>의 라디오작가였기 때문이다. 그 당시 작가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라디오를 들으며 십대와 이십대를 보낸 (물론 현재 삼십대인 지금도 종종 아기를 재우고 옆에서 이어폰을 꽂고 라디오를 듣곤 한다.) 세대로써 감수성의 2할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음악과 사연, 그리고 디제이의 멘트에 빚지지 않았을까?’ 라는 저자의 의견에 200%로 동감하는 바이다.

 

  이제는 전업소설가가 된 배지영님의 에세이 <이미 넌 고마운 사람>을 읽으며,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피식 웃음 지을 수 있어서 반갑다. 라디오 작가로 오랜 시간 직접 사연을 고르고 전하고 나누는 일을 해온 배지영 소설가는 그 수많은 사연들 속에서 우리가 삶에서 지나치고 있는 따뜻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이 다정한 사연들이 이 한 권의 책에 소복하게 담겨있다. DJ의 목소리를 담아 감미로운 인사를 듣고, 우리네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서로 위로하는 수많은 청취자들이 이 책에 살아있음을 느낀다.

 

  요즘 펭수가 대세라 펭귄이라는 동물에 덩달아 관심이 많아졌다. 이미 뽀로로라는 귀여운 펭귄을 알았지만 거침없는 펭수가 어른이들의 마음까지 흔들어놓았다는 건 여지없는 사실이었다. 이 책에 쓰인 <펭귄의 사랑>이라는 제목의 글을 읽었다. ‘인조라고도 불리는 펭귄은 인간처럼 걸어 다닌다고 해 붙여진 이름인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이 멀찌감치 보여도 그렇게 반가워한다고 한다. 두 다리로 걷는 것만으로 동족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렇게 반가움 하나로도 금세 사랑에 빠졌던 나의 한때같기도 하다는 문장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대책 없고 마냥 좋았던 그때. ‘펭귄의 사랑을 하던 그 시절의 뒤뚱거렸던 서투름이 그리운 건 나만이 아닐 것 같다.

 

  <슬픔을 마주한다는 건> 에서는 지상 천국 같은 타히티 섬에서도 슬픔이라는 단어가 없어 표현할 수 없고 나눌 수 없기에 타히티 원주민들의 자살률이 매우 높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슬픔을 마음속에 담아두려고만 하지 말자고 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무력감일지라도. 그래서 라디오엔 익명으로 그렇게 많은 사연들이 도착하여 울고 웃으며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것 같다. 서로 모르지만 고마운 당신들이 있어 우리는 그렇게 치유될 수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니 다시 라디오가 주는 감성에 빠져들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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