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찾아서 - 다음 생에 다시 만나고 싶은 이상 백석 윤동주에서 김기림 김수영 기형도까지
민윤기 지음 / 스타북스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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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을 찾아서

 

  한 때 모 커뮤니티에서 우연히 <국문학 꽃미남>이라는 제목의 사진을 보았다. 거기엔 뛰어난 글솜씨와 더불어 훈훈한 외모를 가진 작가 세분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 중에 한 분이 바로 시인 백석이다. 웨이브진 물결 머리를 휘날리며 걸을 때는 광화문이 마치 파리의 몽파르나스 언덕처럼 환해진다고 증언했던 김기림의 말이 있었을 정도라니. 게다가 키도 185센티에 달하는 지금 기준에서도 꽤나 큰 훈남 스멜을 자아낸 인물이었던 것이다. (참고로 영화 모던보이에서에 박해일이 이 백석의 스타일을 참조했다고 한다.) 신경림 시인은 대학시절 청계천 고서점에서 백석이 스물다섯에 지은 19361월 시집 <사슴>을 발견하곤 환희를 느꼈다고 했다. 그 책은 100부밖에 발간되지 않은 한정판이었었다. 윤동주는 끝내 백석의 시집을 구하지 못해 손수 필사본을 만들어 밑줄까지 그어가며 탐독했다고 한다. 난 공유를 닮은 백석을 참 좋아했다. 인물뿐만 아니라 그의 시까지.(물론 인물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다음 생에 다시 만나고 싶은 시인을 찾아서>를 꼭 읽고 싶었던 것도 스무 명이 넘는 시인들 가운데 백석이 첫 번째로 실려 있던 이유가 크다. 저널리스트인 저자 민윤기님은 6년 동안 시인들의 생애 흔적을 찾는 취재를 거듭하며 이 책을 만들었다고 이야기했다. 모든 시인들의 전 생애를 다루지는 않았지만 후배시인의 입장에서 시인들에게 다가가는 글을 독자로서 함께 읽을 수 있어서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난 백석의 젊은 시절의 모습과 행보가 드라마 같다고 느꼈다. 백석이 신문물의 상징인 대형 기선(요즘의 크루즈)을 타고 따뜻한 남국의 바다를 눈에 담으며 여행했을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그가 남긴 <시기(가키사키)의 바다>를 읽으면. 책에는 백석이 출석한 고색창연한 교회의 사진도 실렸다. 아오야마대학 안에 있는 교회인데 그는 이곳에서 영어 학습 활동을 했단다. 백석이 마음 깊이 사랑했던 은 그녀의 고향 통영에 내려가 쓴 작품 <통영>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랑하는 이가 있는 곳을 그리는 사내의 절절한 마음이랄까. 첫사랑 란의 단아한 모습을 사진으로 보니 그녀가 부러워졌다. 하지만 그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나란히 실린 또 한명의 여성은 자야(본명 김영한)였다. 란이 신문사 동료와 결혼하자 실의에 빠진 백석이 신문사를 그만두고 경성을 떠나 함경북도 영생학교 교사로 취직했는데, 그것에서 김진향이라는 기명의 여성을 만나게 된 것이다. 바로 자야. 백석이 지어준 아호다. 이 뜻은 서역 전쟁터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애절한 여인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백석이 평생 자신만을 바라보며 사랑해주길 바라는 진심이 느껴졌다. 그녀를 향한 마음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도 나타난다. 부모의 반대로 둘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백석을 너무 사랑하여, 함께 만주로 떠나자는 그의 말을 뿌리치고 젊고 창창한 그의 앞길을 막을까 염려되어 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야. 너무 안타까웠다. 백석이 고향 정주로 돌아가 작품 활동을 하면서 그곳에서 6,25를 맞았는데, 이 책에서 난 백석의 1980년대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차라리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 젊은 미남 시인은 어디 가고 삶에 지친 이 늙은이는 누구인가순수 서정시인이었던 백석이, 노골적으로 북한 체제를 찬양해야했던 현실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겠다. 84세의 일기로 슬픈 세월의 시인으로, 억압받는 공포 속의 시인으로 살다간 백석은 생을 마감한다.

 

  작가의 생애를 통해 그 작품의 분위기나 배경을 알 수 있어 좋았고 백석뿐만 아니라 윤동주, 박목월, 천상병, 기형도 등 내가 좋아하는 시인들의 모습을 교과서 밖에서 이렇게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저자가 취재한 장소도 꼭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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