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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끝
미나토 가나에 지음, 민경욱 옮김 / ㈜소미미디어 / 2022년 7월
평점 :
바다 위에서 일출을 보며 열다섯의 나는 자신과 태양이 하나의 바다로 이어져 있는 것 같아, 이대로 수평선까지 한없이 나아가면 태양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잠겼다.
작품에 대해
여기 결말이 없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각자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만의 결말을 만들어 나간다.
이 작품은 「하늘 저편」이라는 소설 속 소설을 중심으로 구성된 연작소설이다. 첫 장에 「하늘 저편」이 제시되고, 각 장의 화자들이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이 소설을 건네받아 읽고 자신만의 결말을 내리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 사실을 모르고 「하늘 저편」에 몰입해서 신나게 읽다가, '이 이야기에 결말은 없다.'는 문장을 보고 '엥? 정말 이게 끝이야?'하며 작가를 원망할 뻔했다.
『이야기의 끝』은 『고백』으로 유명한 미나토 가나에 작가의 신작이다. 『고백』이 워낙 문제적이고 충격적이며 뛰어난 작품이기도 했고, 그가 발표하는 작품이 대부분 비슷한 결을 가진 작품이라 이번 작품을 받았을 때 놀랐다. 분명히 등장인물 한 명쯤 죽어나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복수극도', '추격전도', '인간의 악의도 없는' 미나토 가나에라니. 동시에 궁금했다.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만한 소재를 전부 뺀 작가가 과연 어떤 작품을 보여줄지.
항로를 나타내는 하얀 물줄기는 짙었다가 멀어져가면서 넓고 얕게 흩어져 푸른 바다의 한 부분이 된다. 그렇게 인생에서 기른 경험과 추억도 마지막에는 사라지는 것이라고 눈앞의 풍경이 알려주었다.
미나토 가나에는 일본 추리소설 작가 중 내가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야기의 전개와 구성 면에서도 그렇지만, 기본적인 문체와 작품의 깊이에 있어서도 그동안 접했던 일본 추리소설 중 가장 준수한 작품을 보여주었다. 그런 작가의 능력이 이 소설에서도 빛을 발했다.
이 책의 단편 하나하나의 구조는 동일하다. '주인공이 누군가에게서 소설을 양도받는다→그 소설을 읽는다→자기 나름의 결말을 만든다'이다. 동일한 구조는 앞으로의 전개를 예상 가능하게 만들고, 결국 재미를 떨어뜨린다. 그러나 이 소설은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 책은 '하나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각 장의 주인공들은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해 볼 것 같은, 평범하지만 가볍지는 않은 사연을 안고 있다. 그리고 그 삶의 면면을 깊이 있는 시선으로 그려내었다. 책을 읽으며 소설을 읽는 것이 아니라 실제 인물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이야기에 빠져들었고, 화자들에게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화자는 성별, 나이 등에서 매우 다양한데, 그런 인물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담아낸 작가의 역량에 감탄했다.
또한, 그동안의 작품에서 보여준 훌륭한 구성과 치밀한 복선이 이 책에서도 빛을 발한다. 잔잔하고 감동적인 이야기에 젖어 있다가 폭죽이 터지는 반전에 깜짝깜짝 놀라는 경험도 해볼 수 있다.
삶은 곧 고민이라고 할 만큼 살아 있는 한 근심은 끊이지 않는다. 늘 어깨 위에 무언가 얹혀 있는 기분이고, 가끔 그것이 너무 무겁게 느껴져 주저앉을 때도 있다. 나는 종종 내가 영원히 일어날 수 없을까 봐 두려워하곤 했다. 해피엔딩은 동화 속 이야기이고 소설과 삶은 전혀 다른 문제이며, 내가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내 삶을 사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고, 내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지는 나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 알았다. 우리에게는 충분히 그럴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도. 우리의 마지막은 아직 모른다.
갑판 끝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면 배가 힘차게 파도를 가르며 나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대로 곧장 수평선을 보면 마치 자신이 파도를 헤치며 돌진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 보지 못한 목적지, 미래를 향해.
책에 대해
먼저 디자인이 참 예뻤다고 말하고 싶다. 작중 중요한 오브제인 '은방울꽃'을 중심으로 하고, 꼭 서표를 연상시키는 타이틀도 그러했다. 한눈에 보았을 때 예쁘고 낭만적인 느낌을 주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마음에 드는 것은 띠지였다. '미나토 가나에'라는 이름 아래 제목이 전혀 음산하지 않았는데도 벌써 이번에는 얼마나 죽을지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때 띠지를 보고, 예상을 뒤엎는 문구에 '응?!'하며 단박에 호기심이 생겼다.
뒤표지도 잘 구성되었다고 생각하지만 두 번째 흰색 문구가 조금 아쉽다. 띠지와 뒤표지 첫 문장에 걸쳐 '순한 맛'임을 강조했으니, 나라면 두 번째 문구는 책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문장을 사용했을 것 같다.
내지 편집에 있어서는 각 장의 타이틀을 원고지 형태로 설정한 부분이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자주 보이던 오타가 없어서 만족스러웠다. 좋은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