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교
박범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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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하며 소설 읽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게 잘 안 되었다.  

일부러 거리두기를 하며 읽기를, 몰입을 안 하고 읽기를 작가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세 사람(이적요, 서지우, 한은교)의 행동이 모두 다 납득되지 않았지만 그 중에서도 은교의 행동은 몰입을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였다.  

은교의 말과 행동들은, 남자들의 판타지(저 소녀가 나에게 이러저러하게 해 주면 얼마나 짜릿할까~! 하는)를 그대로 구현한 것에 불과하지 않는가라는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17세의 소녀가 자신의 몸을 탐욕스럽게 바라보는 아저씨와 할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매일이다시피 찾아가고, 세차하다가 물장난으로 흠뻑 젖거나, 비를 홀딱 맞은 자태(!)로 다가간다든지, 달라붙는 민소매에 반바지 차림을 즐겨 입고, 자고 가겠다고 재워달라 하고, 결국은 할아버지 침대로 파고들어 잠들고, 할아버지 손을 잡고 감자탕집으로 이끈다든지, 서지우와의 성관계를 즐기는 것처럼 묘사되는 것 등등..  

게다가 두 남자 모두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는 듯이 눈물을 흘리는 열아홉살 소녀의  모습이 나로서는 정말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은교의 말과 행동은 전혀 살아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없었다. 다만 성적인 "대상"으로서 정확하게 제작되었을 뿐이라는 느낌만 다가왔다. 너무 인위적이고 남자의 시선만을 만족시키는 공허하고 창백한 존재같다.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사랑은 죄도 아니고 부도덕도 아니다. 사랑이 어디 그런 것 따지고 오던가. 하지만 은교가 이토록 이상한 인물로- 마치 창백한 마네킹처럼 혹은, 요즘 나온 영화 공기 인형의 공기 인형처럼 - 생명력이 하나도 없는 성적 판타지의 대상으로만 그려진 것은 이 소설에 대한 몰입을 강력하게 차단한다. 이것이 나의 불만이다.   

서지우와 이적요, 두 남자는 놀라울 정도로 한 인물 같다. 전혀 다른 캐릭터인 것처럼 그려지지만, 두 사람은 이미 하나다. 둘이 다른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람의 앞모습과 뒷모습의 차이 정도에 불과하다. 둘은 한 사람의 분열된 상태를 적극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둘이 동시에 은교에 대한 갈망을 억누르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그런데, 두 사람이 죽음을 향해 돌진할 정도로 강력한 갈망의 대상이 되는 은교는, 정작 백일몽에 왔다가 스러지는 환영처럼 현실감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그 갈망도 나의 공감을 하나도 얻지 못했다.  이렇게 몰입이 안 되어 이 봄날, 나는 서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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