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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아들 - [초특가판] 일본 고전영화 할인전
오즈 야스지로 감독, 하야마 마사오 외 출연 / 기타 (DVD)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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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신주(信州), 실공장에서 일하는 홀어머니는 가난을 무릅쓰고 공부잘하는 외아들 료스케를 중학교에 진학시킨다. 십수 년이 흐른 1936년 동경(東京), 어머니는 동경으로 유학해서 이제 자리를 잡은 아들을 찾아간다. 번듯한 데 취직해서 좋은 집에 살고 있을 거라 기대하던 어머니는 아들이 살고 있는 초라한 집과 동네에 놀란다. 작고 허름한 아들 집에는 이미 결혼한 여자가 있고 젖먹이 아기까지 있다. 착실한 인상의 며느리가 환대해주지만 어머니는 착잡하기만 하다. 아들은 야간학교의 선생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료스케와 어머니는 근처에 살고 있는 아들의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을 찾아간다. 어머니에게 아들의 중학교 진학을 강력하게 권유했던 선생은 자신도 곧 동경으로 가서 더 공부할 계획이라며 희망에 부풀어 있던 사람이다. 지금 선생은 동경의 변두리에서 작은 돈까스 가게를 하고 있다. 옛날 일을 회상하는 세 사람... 어머니와 료스케 앞에서 자신의 초라한 처지를 의식한 듯, 세상일 참 뜻대로 안되더군요, 하고 선생은 혼잣말하듯 중얼거린다. 결혼해서 올망졸망한 아이들을 두고 있는 그는 열심히 일을 하지만 먹고 사는 것이 힘에 부치는 듯하다.

아들은 수십 년 만에 처음 어머니가 찾아오셨는데 제대로 대접하지 못해 민망하고 죄스럽다. 동료 교사에게 돈을 좀 꾸어보지만 그 돈으로는 어머니를 모시고 어디 구경 한번 가기도 힘들다. 착한 아내는 입지 않는 기모노를 처분해 마련한 돈을 내놓으며 아들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나들이를 좀 다녀오라고 권한다. 그들이 마악 나들이를 가려는데, 동네 이웃 소년이 큰 말(馬) 주위에서 놀다가 뒷발에 채이는 사고를 당한다. 병원에서 료스케는 소년의 가난한 엄마에게 아내가 주었던 돈을 병원비로 쓰라고 건네준다. 다음날 다시 신주로 돌아온 어머니는 이제 더 규모가 커지고 기계화된 공장에서 청소와 허드렛일을 하고 있다. 나이들면서 공장에서 점점 주변부로 밀려난 것이다. 동경 나들이가 즐거웠냐는 동료의 물음에 어머니는 밝은 표정으로 즐거웠다고, 아들이 아주 출세해서 잘 살고 있더라고 말한다. 걸레질한 양동이의 물을 버리러 공장 마당에 나온 어머니는 잡초가 우거진 양지바른 곳에 쭈그려 앉아 생각에 잠긴다....

오즈 야스지로가 1936년에 만든 첫 유성 영화 <외아들>의 스토리는 대강 이렇다. 오즈의 다른 영화들이 대부분 그렇듯, <외아들>도 서민의 생활과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는데, 이 영화는 거의 빈곤층에 가까운 한 가정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청운의 꿈을 품고 동경으로 유학을 한 가난한 집의 아들이 결국 야간학교 선생으로 주저앉게 된 현실, 그것을 목격한 어머니는 놀람과 실망으로, 아들은 안타까움과 죄스러움으로 각기 가슴이 아프다. 아들이 그렇게 된 것은 무능해서나 게을러서가 아니다. 그는 최대한 노력을 했지만 현실이 그리 녹록치 않았던 것이다.

료스케/ 어머니는 제가 무슨 일 하리라고 생각하셨어요? 어머니, 실망하고 계시죠?

어머니/ 어째서?

료스케/ 저도 제가 이렇게 될 줄 몰랐거든요. 

            전 가끔 동경에 안 온 편이 나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학교 나와서 고작 이런 일 한다는 것이 어머니께도 죄송하구요.

             어머니까지 고생시키면서 무리하게 동경으로 유학 올 필요는 없었어요.

어머니/ 왜, 어째서? 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니? 넌 이제부터라고 이 엄마는 생각한다.

료스케/ 저도 그렇게 생각하지만요...

             하지만 어쩌면 제 인생은 벌써 결정 나 버렸는지도 몰라요.

어머니/ 그렇게 태평한 소리를 하면 안되지.

료스케/ 전 어머니랑 같이 시골에서 살고 싶었어요....

            어머니 역시 실망하고 계시죠? 하지만 저도 할 만큼은 했어요.

             어머니 고생시키는 것이 저한테는 큰 자극이었어요.

             동경에서는 야간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조차 힘겨웠어요.

             저도 이대로 야간학교 선생으로만 만족하고 있지는 않지만

             앞으로 어떻게 할까 생각하면 막연한 걸요.

어머니/ 그럴까?

료스케/ 네.

어머니/ 넌 아직 젊은데 벌써 포기할 건 없지 않니?

료스케/ 포긴 안했어요. 할 만큼은 했다고요.

              사람이 넘쳐나는 동경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 없어요.

어머니/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할 필요 없지 않니?

             나도 이 나이가 되도록 어쩔 수 없다고 포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어.

             여자 혼자 힘으로 너를 동경에 유학보낼 때는 그리 쉽지만은 않았어.

             그런데 네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니....

료스케/ 어머니 보시기에는 제가 한심해보이겠지만

             오오쿠보 선생님도 그때는 큰 꿈을 갖고 계셨어요.

             그랬던 선생님이 동경에서는 돈까스 장사나 하고 계시잖아요.

             그 큰 청운의 뜻이 5전짜리 돈까스나 튀기고 있다니...

             어머니, 사람이 넘쳐나는 동경에서는 어쩔 수 없어요.

어머니/ 그거야 선생님은 선생님이고...

료스케/ 어머니, 저도 마찬가지예요. 하는 수 없다고요. 그게 동경이에요.

   

무엇이 이 젊은 사내를 패배자가 되게 만들었을까? 어머니와 아들이 료오스케 선생을 만나본 후, 들에 나가 멀리 큰 공장이 보이는 곳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위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의 하나다. 네 개의 큰 굴뚝에서 흰연기를 내뿜고 있는 공장을 어머니와 아들은 말없이 바라본다. 오즈는 처절하게 경쟁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살벌한 현대 사회 도래와, 오랫동안 지속돼 왔던 인간적이고 온정적인 삶이 이제는 더이상 가능하지 않음을 공장으로 암시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러나 삶의 잔인함을 들려주는 오즈의 목소리는 늘 그렇듯이 나직하다.

가난한 아들이 모처럼 찾아온 어머니를 대접하기 위해 별식으로 국수를 사오는 시퀀스도 가슴에 박혀오는 장면이다. 늦은 밤, 국수장사의 피리 소리를 들은 아들은 밖에 나가 국수장사로부터 국수 세 그릇을 사온다. 영화 속에서 국수장수의 짧게 반복되는 피리 소리는 아주 구슬프고 아름다웠는데, 이제는 우리 삶에서도 완전히 사라진 각종 장수들의 소리를 생각하게 한다. 야경꾼의 딱딱이소리, 굴뚝청소부의 징소리, 두부장수의 딸랑 종소리, 아이스께끼 장사 소리...  서민들의 애환이 담긴 그 소리들에 관한 추억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마찬가지인 듯,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은 자서전에서 소리가 사라진 것에 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어렸을 적 내가 흔히 듣던 소리들은 지금의 소리들과는 전혀 달랐다. 우선 그 당시에는 전기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자연음이었다. 이들 자연음들 중 이제는 영원히 없어진 소리들도 많다. 이들 중 몇 가지만 기억해 볼까 한다.

정오를 알리는 요란한 신호 소리. 매일 정오만 되면 육군 부대에서 대포로 공포탄을 쏘았다. 소방서 경적 소리. 소방관의 나무 딱딱이 소리. 동네 사람들에게 화재 위치를 알려주는 소방관 목소리와 북소리. 두부 장수 나팔 소리. 담뱃대 수선장이의 호각 소리. 엿장수 엿통의 자물쇠 소리. 윈드차임 장수 물건에서 나는 찰랑거리는 소리. 나막신 끈 수선장이의 북소리. 불경 외며 돌아다니는 스님의 종소리. 사탕 장수 북소리. 소방차 종소리. 사자춤을 알리는 큰북 소리. 원숭이 곡예사 북소리. 절 의식을 알리는 북소리. 대합 장수. 고추 장수. 금붕어 장수. 빨랫줄 장대 장수. 묘목 장수. 한밤의 국수 장수. 생선 장수. 정어리 장수. 삶은 콩 장수. 곤충 장수. 윙윙 연줄이 바람에 날리는 소리. 탁탁 제기 차는 소리. 공튀기기 하며 부르는 노래. 아이들 노랫소리."

이렇게 각종 장수들이 다양했으니 그들이 내는 소리도 그만큼 다채로웠을 것이다. 자동차 소리가 쓸어가 버린 이 잃어버린 소리들을 기억하는 사람도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국수를 사온 아들은 국물을 마시며 맛이 괜찮지요? 하고 어머니에게 묻는다. 어머니와 아들, 그리고 며느리가 둘러 앉아 국수 그릇을 들고 훌훌 국수를 먹는 모습은 정겹고도 슬프다. 예의바르고 반듯한 아들과 착한 며느리, 그리고 아들이 사는 모습에 실망하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태도는 배우들의 절제된 연기를 통해 더욱 생생하게 살아난다. 비록 가난하기 그지없지만 그들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것은 인간의 품위, 그것이며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더욱 짙은 비애감을 자아낸다. 후기 오즈의 영화들에서 볼 수 있는 어딘지 비현실적인 인물이나 분위기와도 많이 다르다. 어쩌면 오즈는 <외아들>에서 그가 영화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을 이미 다 얘기했다는 느낌이다.

오즈 영화를 볼 때 느껴지는 편안함의 한 이유가 고정된 장면들과 '다다미 숏'이라 불리는 낮은 카메라 시선에서 비롯되는 건 확실하다. 영화 속의 현란한 카메라 워킹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의 관중은 도무지 움직일 줄 모르는 장면들로 구성된 오즈의 영화가 단조롭고 지루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눈이 폭력적인 것에 익숙해 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사실 인간의 눈이 볼 수 있는 것은 카메라가 보여주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인간의 눈은 카메라처럼 그렇게 빨리, 높이, 또는 가까이에서 대상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오즈의 영화를 보면서 편안해지는 것은 알게 모르게 익숙해 있던 폭력적인 시선으로부터의 해방감과 내 본래의 시선으로 회귀했다는 무의식적인 느낌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모자라는 것이 넘치는 것이다 (less is more)"를 늘 주장했다는 오즈 야스지로는 확실히 영화에서  일본적 미학의 정점을 이룬 것 같다. 또한 '사물의 정취'라 부르는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われ)적인 분위기를 오즈 영화에서 느끼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건, 결혼하고 부모를 떠나거나 떠나보내는 과정이건, 극적인 사건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오즈 영화를 보고 난 후 밀려오는 느낌은 아무래도 (일본적인) 비애의 감정이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비록 오즈가 다루는 주제들이 지극히 보편적인 것이라 해도 '일본적인 것'에 대해 그리 편안할 수만은 없는 우리에게 오즈의 영화는 그 매력과 호소력으로 간단치 않은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영화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는 오즈의 영화가 단조롭다고 보는 것은 그의 영화를 보는 우리의 눈이 단조로운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느리고 완만한 이야기 템포, 극적인 사건의 부재, 사회비판적 시각의 희미함 등 결여라는 말로 오즈의 영화를 말하는 것은 그의 영화를 보는 우리의 눈이 단조롭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오즈의 영화가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결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여에 의해 정의될 수 없는 과잉된 무엇 때문이라는 그의 말에 완전히 동의할 필요는 없겠지만, 과연 그의 말대로 오즈는 자신의 영화를 영화의 한계까지 밀어붙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끊임없이 영화 그 자체의 불가능성과 대면하고 있기 때문에 오즈는 현대적이며 혁신적이라고 하스미 시게히코는 말한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에 매료되지 않기란 어렵다. 오즈 만큼 독창적이고 독자적인 영화미학을 만들어낸 영화 작가는 달리 없기 때문이다. "두부가게 주인에게 돈까스를 만들라는 주문은 무리다. 나는 두부가게 주인이므로 두부밖에 만들지 않는다"고 오즈는 당당히 말했다고 한다. <외아들>은 오즈 후기의 <동경 이야기>나 <꽁치의 맛> 같은 대표작에서 볼 수 있는 단순함의 아름다움과 완숙함을 이미 보여주고 있으며, 지나치게 양식화된 후기 영화들보다 진솔함을 더욱 많이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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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시의 여인 - [초특가판] 일본 고전영화 할인전
미조구치 겐지 감독 / 오아시스 (OASIS)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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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사와 아키라에서 시작된 일본고전영화에 대한 관심이 오즈 야스지로, 나루세 미키오 등을 거쳐 미조구치 겐지에 도달한 셈일까. 앞으로 생각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미조구치 겐지보다 더 뛰어난 일본 감독은 없다고 생각되니 말이다. 역동적, 남성적인 구로사와 아키라의 세계에서 정신없이 놀다 보니, 조용하고 애잔하기 그지없는 오즈 야스지로의 소시민들이 좁다란 골목과 다다미방에서 손짓해 부른다. 어떠한 극적인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오즈 야스지로 세계속에서 늙은 부모와 자식들, 자매와 연인들은 차를 마시듯 잔잔히 흘러가는 일상과 더불어 소리없이 사랑하고 갈등하며 살아간다. 성실하고 선량한 그들은 물론 정겹지만 솔직히, 한편으론 몹시 답답하기도 하다.

미조구치 겐지 영화 속의 인물들은 사뭇 다르다. 그들은 대개 빈곤층이거나 서민들이고 기구한 운명의 기생이거나 가난 때문에 몸을 파는 창부들이다. 자기 의지로 삶을 살아간다기보다는 사회와 시대의 격랑 속에 떠밀려 살아가는 가련한 인생들이며 그런 경우 거의 그렇듯이 대부분 지독히도 불행한 여성들이다. <무사시노 부인>은 남편이 대학강사이고 뼈대있는 가문에 재산도 적잖이 있는 친정을 두고 있는 여인이니 그만하면 출신과 형편은 꽤 좋은 편이지만, 전통과 계급 사회의 억눌림 속에서 고통을 겪는다는 점에서는 그녀 역시 다르지 않다.

무사시노...  일본 도쿄 중부에 있는 도시. 제 2차 대전 후 주거도시로 되었다. 학교가 많다. 산업구조는 3차산업이 중심을 이룬다... 무사시노를 검색해보니 이런 무미건조한 설명이 뜨지만 영화 속에서 무사시노는 주인공 미츠코가 이제는 옛모습을 되찾을 수 없어 안타까와 하는 추억의 공간이며 영혼의 고향이다. <무사시노 부인>이 만들어진 때가 1951년이니 아마 전쟁과 전후에 많이 망가졌던 모양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무사시노는 단지 사라진 미츠코의 시골 고향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무사시노 부인>이라는 제목이 암시하듯이 주인공 미츠코는 그녀가 자랐고 살았던 장소에 깊은 애정과 애착을 느끼는 인물인 것이다.

전쟁 중 도쿄 공습을 피해 미츠코 친정에 미츠코 부부가 피난을 오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미츠코의 부모는 가문에 대한 자부심과 그 존속에 대한 신념이 대단한 사람들이며 미츠코에게 집과 땅에 대한 전 재산을 상속하고 얼마 안 있어 세상을 떠난다. 그로부터 3년 후 미츠코의 사촌 츠토무가 전장에서 돌아온다. 츠토무와 미츠코는 어릴 적 무사시노에서 같이 자란 사이지만 미츠코의 남편은 츠토무가 돌아온 것이 조금도 반갑지 않다. 그의 등장으로 인해 자기에게 돌아올 미츠코의 재산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미츠코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지만 가문을 흠없이 이어가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기쁨없는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대학강사인 남편은 자유연애와 간통죄 폐지를 주장하는 '모던'한 사람이며 이웃에 사는 미츠코 사촌의 부인 토미코와 실제로 연애를 하는데, 사실 그는 전통과 현대적 가치 사이에서 표류하는 속물이다.

어릴 적 놀던 무사시노의 여러 장소들을 찾아보며 추억을 나누던 츠토무와 미츠코 사이에 어느덧 미묘한 사랑이 싹트지만, 전통적 가치에 매여 있는 미츠코는 츠토무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미츠코의 남편이 미츠코의 집과 땅에 관한 문서를 훔쳐 토미코와 달아나면서 파국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절망한 미츠코는 전쟁에 패하고 궁지에 몰렸을 때 자결하라고 나라에서 주었던 청산가리를 먹고 자살한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그녀 주위에 모여든 미츠코의 남편과 토미코, 토미코의 남편은 그 자리에서도 서로 잘못을 상대방에게 전가하며 싸운다. 환멸을 느낀 츠토무는 미츠코가 그에게 남긴 상속권을 받지 않고 떠난다. 그가 도착한 곳은 무사시노. 이제 옛모습은 사라진 무사시노에 주택들만 가득히 들어차 있다...

스토리 자체는 멜로 드라마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이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애정과 배신, 그리고 죽음이라는 내용을 넘어서 전후 일본의 혼란스런 시대상을 훌륭히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미조구치 겐지는 이미 무너져 가고 있는 전통적 가치를 지키려 하는 미츠코나 그녀와 반대 입장에 있는 인물들 누구의 편도 들지 않는다. 그의 현실주의적이고 냉정한 시선은 현실이 이렇다고 말할 뿐이다. 현실이 쓰고 있는 가면을 벗겨 내기 위해 대상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미조구치의 카메라와 롱 테이크는 그들이 겪는 수난과 고통에서 한발짝 물러나 있는 것 같지만 묘하게도 더욱 강한 파토스를 불러 일으킨다.

미츠코와 츠토무가 무사시노를 산책하는 시퀀스는 한편의 시처럼 아름답다. 비록 빼어난 풍광과 경치는 아니지만 영화 속에서 그들이 걷고 있는 일본의 시골은 그래도 논과 수풀이 우거졌고 조금은 따분하고 적막한 느낌을 주지만 소박하고 풍요로워 보인다. 그런데도 미츠코와 츠토무는 회한에 차서 그곳이 옛날의 그 장소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이 그리워하는 유년기의 무사시노는 영원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메이지 시대에 태어나 격변하는 현대를 살았던 미조구치 겐지였기에 빠르게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는지도 모른다. 그의 영화가 탐미주의적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모양이지만 사실 미조구치 겐지가 보여주는 장면들을 탐미주의적이라 부르기엔 어딘가 어색하다. 아무리 추악하거나 비참한 인간 세상을 보여줄 때에도 그가 구성한 장면들에는 완벽한 시적 아름다움이 있는데, 그건 그가 세상을 낭만적으로 아름답게 봐서가 아니라 철저하게 현실주의자의 시선으로 보기 때문이다. 거기에서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미조구치 겐지의 시가 태어난다.  


그의 영화를 보고 나면 무언가 시대가 단단히 잘못되어 있다, 누구도 그 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인식을 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세상은 그토록 아름다운데 또한 그토록 비참한 것이다. 환경에 의해 강요된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몸부림치는 그의 인물들은 규율과 규범의 나라 일본이기에 더욱 절실하며 그들이 겪는 고통은 바로 미조구치 자신의 것이었을 것이다. 그의 강렬한 사회비판적인 힘은 사상이 아니라 그의 시에서 나온다.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만 나온 독학자였던 미조구치 겐지는 바로 그랬기 때문에 자신의 삶과 경험에서 우러나온 가열한 시선과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은 어떤 사상이나 교육, 또는 교양 따위가 배양할 수 없는 천재의 재능이다. 

 사실, 이 영화를 보게 된 건 순전히 DVD 자켓의 포스터 때문이었다는 것을 고백해야할 것 같다. 미조구치 겐지 감독 영화를 알라딘에서 검색할 때 많은 영화 중에 <무사시의 여인>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수심에 잠긴 듯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는 젊고 수려한 남자의 옆모습과 그 앞에 양산을 들고 서 있는 기모노 차림의 단아한 여인 모습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끌었다. 나중에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왜 그 두사람의 모습이 그렇게 마음을 끌어당겼는지 알 것 같았는데, 미조구치 겐지의 대표적인 다른 영화들을 다 보고난 지금도 <무사시의 여인> 포스터만큼 마음에 드는 건 없지 싶다. 

<무사시노 부인>은 미조구치의 다른 영화들에 비해 비교적 주목을 덜 받는 작품에 속하는 것 같다. 1953년 베니스영화제 수상작이었던 <우게츠 이야기>나 <오하루의 일생>, <신헤이케 이야기> 등이 워낙 강한 인상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난한 도공과 혼령과의 사랑을 그린 <우게츠 이야기>도 그렇고, 높은 신분에서 창부로 전락하는 기구한 여인의 일생을 다룬 <오하루의 일생>은 미조구치 겐지의 완벽주의가 최고의 경지에 다다른 걸작임에 분명하지만, <무사시노 부인>은 좀 다르게 가슴 깊이 울려오는 맛이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른 세대간, 남녀간의 갈등과 혼란이야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고 오즈 야스지로가 주로 다룬 주제도 바로 그것이지만, 이 탁월하게 정밀하고 아름다운 일본화는 미조구치 겐지만이 그려낼 수 있었던 리얼리즘의 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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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jotiple > 재미있고 정보가 많은, 새로운 시선의 음악사
청중의 탄생 - 청중의 자리에서 본 클래식 신화의 탄생과 해체
와타나베 히로시 지음, 윤대석 옮김 / 강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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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캄캄할 정도로 낮은 조도로 뒤덮인 객석과 밝지만 은은한 색상의 조명으로 뒤덮인 무대. 무대 위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제각기 음을 맞춰보면서 특유의 음의 혼돈을 연출한다. 이윽고 단원들도 조용해지고, 지휘자가 나타나면 웅성거리던 청중들은 말을 멈추고 박수를 친다. 지휘자는 인사를 한 후, 두 손을 들고 오케스트라를 향해 첫마디의 시작을 알린다. 이후, 청중석에 앉은 사람들은 몸을 움직이거나 말을 해서는 안된다. 심지어 어쩔 수 없이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조차 아주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다른 사람들의 청취를 방해하는 일이니 말이다. 연주홀 안의 모든 시설들은 오로지 무대 위에서의 연주에 집중하도록 짜여져 있다. 관객들은 주위의 다른 관객들이 아니라 오로지 연주만에 집중해야 하고, 따라서 예술작품과 오로지 개인으로서만 만나야 한다. 이 때 예술작품은 거의 경모되는 어떤 것이다.

청중에 대한 이러한 요구는 상당히 어려운 적응과정을 강요한다. 이런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사람은 문화적 수준과 소양이 낮은 사람으로 폄하되고, 다른 청중들의 깔보는 듯한 찌푸린 눈길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수용방식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고, 오히려 극도로 인위적이다. 특수한 관계방식에 대한 정보와 훈련을 거치지 않고는 결코 편할 수 없는 것이 청중의 '바람직한' 태도다. 이 '바람직함'은 대단히 위계적인 가치관을 내포하고 있다. '고급' 문화에 맞는 태도방식에 대한 익숙함은 하나의 신분적 표징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청중에 대한 이런 '훈육'은 왜, 어떻게 가능해진 것일까?

근대적 의미에서의 예술, 다시 말해 예술외적인 목적에 종속되지 않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독자적인 목적을 지니는 고유한 영역으로서의 예술이 성립된 시기는 대체로 18세기 말로 추정되고 있다. 물론 예술이 수공업적 기술과 구별되어 다른 보다 높은 정신적 가치를 지니는 영역으로 간주되기 시작한 것은 이보다 더 이전인 르네상스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좀 더 정밀하게 따져보면 고대에도 이미 예술이 단순한 수공업과는 달리 좀 더 고급의 인간능력의 산물로 취급되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일이지만, 예술이 사회적인 규모에서 도덕, 학문, 교육, 종교 등이 부여하는 과제로부터 놓여나이런 음악의 수용양식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아니, 극히 인위적인 것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위 '자율적'인 영역으로 성립되고 제작, 수용되기 시작한 것이 18세기 말이라는 데에는 일반적으로 이론이 없다.

이렇게 예술이 자율적 영역으로 성립되면서 예술의 산출과 수용의 양상에서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이전에는 공동의 모임에서 소리내어 읽던 독서는 이제 개인의 묵독으로 바뀌었고, 주로 시장에서 저급한 오락의 기능을 담당했던 연극은 극장 안으로 들어와 소위 '제4의 벽'을 구축하여 집중적인 관람을 가능하게 했다. 미술 역시 미술시장 및 미술관의 성립과 더불어 종교적, 세속적 과제로부터 벗어나 미적 가치 자체를 추구하게 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과정에 음악에서는 어떻게 일어났으며, 최근에는 또 어떤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상술하고 있는 책이다.

매우 대중적이며 쉽게 쓰여져있는 이 책은 근대적 청중의 성립에 대한 묘사로부터 시작된다. 이 청중이 성립되기 이전, 음악은 다른 예술장르들과 마찬가지로 주로 실용적인 목적을 수행하는 데 사용되었다. 교회에서 신앙심을 키우고, 귀족들의 파티에서 흥을 돋우고, 춤을 반주하고, 식욕을 돋우고, 귀족들을 칭송하는 것이 음악이었다. 그러나 음악회라는 것이 성립된 후에도 한참동안 음악회는 일종의 파티이자 사교의 장이었다. 청중들은 적어도 음악에 대해서만큼이나 주변의 관객들에게 관심을 쏟았다.

문학과 달리 감각적 소재만을 취해야하는 음악은 모든 예술 장르들 가운데 가장 저급한 것으로 취급되기 일쑤였다. 대표적인 예가 칸트다. 칸트에게 음악은 정신성이 결여된, 단순한 쾌적함만을 제공해줄 뿐인, 따라서 가장 저급한 예술이었다.

18세기 말 이후 음악은 이러한 관념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19세기에는 음악을 정신의 표현으로 간주하는 소위 '진지파'가 기존의 '오락파'에 승리를 거두게 되었다. 그리고 탁월한 음악가들은 '거장'으로 숭배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음악 자체도 고급음악과 저급음악으로 갈라졌고, 저급음악으로 분류된 음악은 차츰 콘서트홀에서 배제되었다.

'진지파'들은 음악이란 감각적 음의 향유가 아니라 음악의 구조적 측면을 읽어내어 이로부터 어떤 정신적 의미를 간파해내는 작업으로 간주했다. 음악에서 음은 이제 단지 표면만을 구성할 뿐이었고, 그 배후의 정신성만이 진정하고 품위 있고 고상한 향유의 대상이 된 것이다.

이렇게 '거장'에 의해 창조되어 '진지하게' 수용되어야 하는 음악에 대해 청중은 숭배와 경건의 태도, 즉 거의 종교적인 태도를 보여야 했다.

저자는 이러한 음악의 수용방식이 1920년대에 바뀌기 시작했다고 한다. 벤야민이 지적했듯, 예술복제시대가 시작된 것인데, 음악에서는 축음기, 라디오, 재생피아노 등이 새로운 '하이테크' 매체로 등장한 것이다. 이로써 음악은 한결 더 접근성이 커졌으며, 음악의 신전이라고 해야 할 콘서크홀을 빠져나와 언제 어디서나 수많은 대중에 의해 청취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음악이 일상에서 격리된 위상을 벗어나 다시 일상에 접근하는 것을 의미했으며, 이러한 경향은 2차대전이 끝난 후에 더욱 강화되었다.

이제 음악청취는 완성된 작품의 참된 의미에 대한 추구가 아니라 무수하게 다양하게 연주될 수 있고, 일체의 규범적 수용방식을 벗어난 자유롭고 개인적인 향유의 대상이 되었다. 또한 사회 전반을 지배하게 된 상업화의 경향이 음악계에도 침투하여 음악은 그 자체로서 고급스런 광고의 수단이 될 뿐만 아니라, 일상을 장식하는 소품이 되기도 하고, 영화의 한 요소로 활용되기도 한다. 다시 말해 19세기의 진지파가 주장했던 '순수관조'의 수용방식은 다시 해체되어 그 이전의 실용적 음악관에 의해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음악은 소수의 엘리트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중의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간주된다. 자율적 예술은 다시 오락과 유희의 대상으로 대중에게 돌아오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음악에서 나타나고 있는, 불가역적인 포스트모던한 경향이다.

대강 이런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자율적 예술의 성립과 해체의 과정 자체는 그간 많이 논의된 바 있으므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책에서는 그 과정에 음악의 수용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나타났는지를 매우 흥미롭고 전형적인 사례들을 통해 확인해보는 재미가 있다. 저자의 필체는 매우 평이하며, 독자를 가르치려 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성실한 탐구결과를 짜임새 있게 보고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많은 정보를 취하면서 재미도 느낄 수 있으니, 좋은 대중서가 갖추어야 할 미덕들을 다 갖추고 있는 책이다.

그러나 물론 자율적 예술이 불가역적으로 해체되고 있다는 저자의 견해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오히려 더 불가역적이었던 것은 자율적 예술의 성립이 아니었던가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자율적 예술의 성립 후에도 타율적, 실용적 예술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예술시장을 양적으로는 언제나 지배해왔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므로 근래에 클래식 음악이 전통적인 장을 벗어나 다양하게 활용되고 다양한 수용방식들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고 해서 자율적 예술의 장 자체가 와해되고 있다고 보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다. 저자는 이 책이 발표된 지 7년 후에 덧붙여놓은 후기에서 이와 비슷한 생각을 표명하고 있다. 이 책의 초판이 1989년 발표되었으니, 포스트모던이 마치 세상을 뒤바꿀 것이라는 과장된 생각이 한참 지식계를 강타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 당시의 성급한 흥분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러나 이런 관점상의 유보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잘 정리하여 전해주는 구체적 정보들의 가치는 손상되지 않는다.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나아가 예술사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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