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정신분석 신화 종교 상징 총서 6
가스통 바슐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이학사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불의 정신분석』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불이라는 물질성에 대한 정신분석이라고 생각했다. 불의 물성이나 역사, 혹은 불에 대한 인문학을 다룬 책쯤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책장을 넘길수록 내가 읽고 있는 것은 불에 관한 책이 아니라 인간의 상상력에 관한 철학이었다.
바슐라르는 불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왜 불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며 신성시하고 욕망하는지를 연구한다. 불은 그에게 하나의 물질이 아니라 인간 정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불을 통해 인간 사고의 원형을 들여다보고, 상상력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탐구한다. 그래서 이 책은 결국 '불의 정신분석'이 아니라 '인간 상상력의 정신분석'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흥미로운 책이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오래전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불을 다시 만났다.
어릴 적 언니는 방문 창호지의 작은 구멍 위에 촛불을 올려두었다. 촛불은 순식간에 창호지로 옮겨 붙었고 방 안에는 불길이 번졌다. 다행히 곁에 어른이 있어 큰 화재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그 장면은 오랫동안 내 기억 속에 남았다.
또 한 번은 플라스틱 소꿉놀이 냄비와 프라이팬을 연탄불 위에 올려놓았는데, 나는 까만 연탄에서 불이 나온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예쁜 보라색 냄비는 순식간에 녹아내렸고 매캐한 냄새만 남았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연탄가스 중독도 경험했다. 언니가 나를 억지로 끌고 나와 부엌에서 동치미를 마시게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큰집 사촌 언니는 결혼을 앞두고 같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처럼 어릴적 나에게 불은 언제나 두려운 존재였다. 어른이 되어서도 성냥을 켤 때면 손끝이 닿을까 봐 최대한 나무 끝을 붙잡고 겨우 불을 붙였다. 바슐라르가 말한 프로메테우스의 용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작가가 된 이후, 특히 도시를 떠나 강화도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나는 불을 사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취미처럼 불을 피우면서 나는 불꽃보다도 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불을 피우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한다. 꽃을 말리고 향기로운 허브도 말린다. 쑥을 말아 작은 다발을 만들고 솔가지도 가다듬어 모은다. 귤껍질과 계피를 갈아 콘 모양의 향을 만들기도 한다. 불은 라이터를 켜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 이전부터 시작된다.
불은 준비하는 시간까지 포함하는 하나의 의식이다.
불이 붙기 시작하면 나는 오래 바라본다. 솔가지가 타들어가는 모습은 놀라울 만큼 아름답다.
말린 수국 한 송이는 마치 불 속에서 다시 꽃을 피우는 것처럼 보인다. 불은 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꽃을 피우는 것이다. 나는 타들어가는 그 장면을 넋을 잃고 바라본다. 마치 불나방처럼 삶의 본능과 죽음의 본능이 하나되는 바슈라르가 말한 ‘몽상’과 엠페도클레스 콤플렉스가 이런 것이구나 싶다.
그러고 보니 내 작업 속에도 이미 불이 있었다. 종이가 불에 타들어가는 모습을 계속 바라본 적이 있다. 단순히 종이를 태우는 것이 아니라 불이 종이 속으로 서서히 침투하며 하얀 종이가 까맣게 되어가는 과정이 너무 흥미로웠다. 종이마다 불꽃의 색도 조금씩 달랐고, 타들어간 흔적 역시 제각각 모두 달랐다. 나는 그 불의 흔적을 작품으로 만들어 전시했다.
또 다른 작업인 〈잡초를 위한 의식〉에서는 전시가 끝난 잡초들을 하얀 종이에 말아 팔뚝만 한 다발로 만들고, 그것을 캠프파이어 장작처럼 높이 쌓아 불을 붙였다. 그 퍼포먼스는 폐기가 아니라 의식이었다. 잡초는 재가 되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순환의 시작이 되었다.
그때는 그것이 '불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불의 정신분석』을 읽으며 이미 불을 작업의 중요한 매개로 사용해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바슐라르는 불이 인간 상상력의 가장 근원적인 원형이라고 말한다. 불은 동시에 따뜻함과 위험, 생명과 죽음, 파괴와 정화를 함께 품는다. 그래서 그는 불을 가장 변증법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책에서 특히 놀랍고 흥미로웠던 것은 '노발리스 콤플렉스'였다. 마찰에 의해 불을 만들어내는 행위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성적(性的)인 상상력과 생명의 탄생에 관한 원형적 사고와 연결된다는 설명은 생각지 못한 놀라움이었다.
"불은 두 나뭇조각에서 태어난 자식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등장하는 질문은, "어째서 불은 태어나기 무섭게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삼켜버리는가."
불은 언제나 자신을 낳은 것을 태운다. 생성은 곧 소멸을 품고 있다. 소멸은 또 다른 생성을 준비한다. 그 순환은 내 작업을 오래 관통해 온 질문과도 닮아 있었다.
채호기 詩 「부패는 생각의 힘이다」를 읽었을 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죽음 이후는 어떤 열기의 시작이다.죽음은 반드시 부패라는 문턱을 넘는다.부패는 생의 반응이고 멸의 느낌이다.부패는 생각의 힘이다.
모든 있는 것의 생각은 열기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부패와 불이 하나의 이미지로 연결되는 경험을 했다. 죽음은 차가움이 아니라 또 다른 열기의 시작이며, 부패는 끝이 아니라 생성의 조건이다.
명리학에서 말하는 오행 역시 흥미롭게 겹쳐진다. 목생화(木生火) 즉, 나무는 불을 낳는다.
화생토(火生土) 즉, 불은 재를 만들고, 재는 흙이 된다.
불은 무엇인가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로 건너가게 하는 통로이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어린 시절의 공포와 지금의 즐거움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해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통제할 수 없는 불을 경험했다. 불은 갑자기 번졌고, 생명을 위협했으며, 설명할 수 없는 무지와 공포였다. 지금의 나는 불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불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 땔감을 정성껏 준비하고, 불을 즐기고, 불이 물질을 변형시키는 과정을 바라본다.
바슐라르는 상상력이란 현실을 재현하는 능력이 아니라 끊임없이 이미지를 변형하는 능력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변형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이미지와 고정관념을 먼저 정신분석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 작업은 잡초를 잡초로 본 적이 없었고, 녹을 단순한 부식으로 본 적도 없었다. 가시는 상처가 아니라 생명의 형식이었고, 부패는 죽음이 아니라 생성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이제 불 역시 파괴가 아니라 변형과 순환의 과정으로 다가온다.
나는 자연을 재현하려 하기보다 어떤 존재가 다른 존재가 되어가는 순간과 경계, 그 사이 그리고 흔적을 탐구한다.
『불의 정신분석』은 인간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묻는 책이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내가 만들어 온 작업들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불은 태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낸다.
불은 끝내는 것이 아니라 변형시킨다.
나는 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불을 통해 생성의 시간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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