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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2 - 되찾은 시간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22년 11월
평점 :
처음 이 방대한 소설을 읽기 시작했을 때, 샤를뤼스 남작이라는 등장인물이 책의 마지막 장까지 이토록 오랫동안 중심을 차지할 줄은 미처 몰랐다. 초반의 그는 그저 오만하고 독설을 내뿜으며, 때로는 극도로 불쾌하고 역겹기까지 한 사교계의 괴물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지막 권의 책장을 덮는 순간, 화자인 마르셀을 제외하고 내 기억에 가장 강렬하고 인상 깊게 들어찬 인물은 다름 아닌 샤를뤼스였다. 그 불쾌함의 심연 속에서, 나는 역설적이게도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거대한 이중성과 선악의 양립, 그리고 마침내 가닿게 되는 어떤 지독한 연민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중략)샤를뤼스 남작의 최후를 감히 '몰락'이라 부를 수는 없다. 그것은 타인을 온전히 소유하려다 부서진 영혼이 마침내 도달한, 자기 삶에 지독하리만큼 충실했던 종착지이자, 알베르틴이라는 유령의 방에서 방황하던 화자 마르셀의 손에 마침내 펜을 쥐여준 혹독한 불도장이었다. 남작이 자신의 몸과 삶 전체로 고통과 욕망의 시를 썼다면, 마르셀은 이제 그의 삶이라는 거울을 이정표 삼아 부서진 영혼의 파편들을 위대한 문학으로 재조립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샤를뤼스의 죽음은 한 인간의 비극적인 소멸을 넘어, 세상이 '악덕'이라 부르는 추함 속에서도 인간 고유의 가치와 미덕을 건져 올리는 위대한 예술가의 탄생을 알리는 가장 숭고한 서막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