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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노은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8월
평점 :
과거에든 현재에든 현자라고 불리는 지혜로운 이들은 역사를 공부하라고 했다. 하지만 이 역사라는 것을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방법을 찾아보려 하면 막막하기 그지없었다. 몇 번인가 개괄서를 뒤적이다 실패하길 여러 번, 소설에 주로 집중되었던 독서에 대한 흥미가 AI에 대한 담론과 과거의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운 정세에 대한 우려를 거쳐 <어제의 세계>에 닿으면서 나는 드디어 역사라는 방대한 지식에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았다.
<어제의 세계>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자전적 회고록으로, 오스트리아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고 문화와 예술이 번성한 시기에 유럽에서 그 결실을 자유롭게 만끽한 그는 뛰어난 감수성으로 훌륭한 작품들을 발표하고 당대의 유명 예술가들과 교류하고 협업하며 놀라운 성공을 거두는 한편, 두 차례의 전쟁을 거치며 처절한 몰락을 경험했다. 그야말로 한 인간이 겪은 '밝음과 어둠, 전쟁과 평화, 상승과 추락'이 모두 담긴 이 책을 읽으면서 이름을 익히 들어온 유명 예술가들의 면면을 가까이서 접하는 즐거움은 물론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이라는 결과로 모습을 드러낸 시오니즘의 시초를 비롯하여, 회고록이기에 기억이란 이름으로 기록될 수 있었던 놀라운 역사의 지점들을 저자의 풍부한 언어로 마주할 수 있었다. 한 사람의 삶이 이렇게도 다양한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때로는 깊숙이 때로는 단편적으로 얽히며 시대의 단면을 그려낸다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 자신이 생생한 언어로 기록했다는 점에서 <어제의 세계>는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슈테판 츠바이크는 꽤 특권적 위치에 있었기에 그가 그리워하며 묘사하는 모두가 아름다운 음악처럼 조화롭게 살아가는 찬란한 과거 유럽의 풍경이, 누군가에게 불협화음이 흐르는 어둠 속이었으리라는 점을 읽는 내내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역사라는 거대한 퍼즐에 다가가기 위한 구체적인 구상이 떠올랐다. 묘사되지 않은 바깥 풍경을 살피는 것, 그리고 그 풍경의 조각들을 찾아내어 맞추는 것. 설명적인 글에서 다루지 않는 시대의 풍경을 <어제의 세계>처럼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통해 알아가면서 그 안에 묘사되지 않는 풍경 또한 바라보는 것. 이것이 앞으로 내가 역사를 파악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독서는 조지 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과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거쳐 <조지 오웰 뒤에서: 지워진 아내 아일린>으로 이어질 것이다. 여기에 <전체주의의 기원>과 <존중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정치학> 같은 분석서로 서로 다른 시대의 풍경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세상을 조금씩 알아가다 보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전체적인 그림이 보일 것이다. E.H. 카가 말했듯이, 역사는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