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메아리처럼
앤절라 미영 허 지음, 임슬애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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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설화는 기본적으로 구전을 통해 다양한 변형을 거쳐 여러 형태로 전파된다. 하지만 그만큼 다양했을 설화 속 여성들의 이야기는 어느 시점에 남성들의 손에 여기저기 잘려 나가고 납작해진 채 기록 속에 붙박인다. 여성들의 삶 역시 그러하다. 타의에 의해 억눌리고 제한되었을지언정 각각의 모습을 지녔을 그들의 삶은 '어머니, 며느리, 아내'라는 이름표 속에서 획일화된 채 지워진다. <우리, 메아리처럼>은 이렇게 지워지고 잘려 나간 여성의 서사를 복원하고 마주하는 여정을 다룬 소설이다. 한국계 미국인 여성 과학자 엘사가 어머니가 남긴 이야기의 파편을 복원하며 잃어버린 자매를 찾아 떠나는 모험담.


"너랑 나, 우리는 삶이 흔해 빠진 옛날이야기로 전락해 버린 여자들의 후손이야. 우리는 메아리처럼 그들의 이야기를 반복하고 그들의 삶을 살지만, 그 위대함은 닮지 못해. 어리석은 비극만 반복할 뿐이야. 우리는 그들의 삶에서 그것밖에 기억하지 못하니까."


엘사의 어머니는 이렇게 메아리처럼 되풀이되는 비극과 같은 삶을 한탄하면서도 잘려 나가 보이지 않는 삶의 서사 속에서 어려운 처지의 여성들을 돕고 돈을 모으며 엘사가 자신처럼 살지 않기를, 설화에서 지워진 여성들의 위대함을 되찾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남겼다. 엘사에게는 비극으로만 느껴졌던 그 이야기들은 복원을 거치는 과정에서 포개지며 새로운 전설로 모습을 드러낸다. 자신의 의지로 저승에서 돌아와 신이 된 여성, '바리공주'.

어릴 때부터 엘사의 주위를 맴돌던 빨간 댕기 머리의 소녀, 같은 세계에 존재할 수는 없지만 늘 함께했던 자매는 ‘어머니, 며느리, 아내’의 이름표 속에서 지워진 여성들, 시대가 허락하지 않아서 재능을 발휘할 수 없었던 혹은 끝끝내 재능을 발휘했으나 기록에서 지워지고 사라진 여성들일 것이다. 이 과거의 여성들은 결코 어리석은 비극만 반복하지 않았다. 그 반복적인 삶 속에서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늘 변화를 꾀했고 변화를 이끌었으며 그렇게 딸들의, 후대 여성들의 삶에 다른 길을 열어주었다. 이따금 떠올릴 수밖에 없는 이 다정한 자매들은 여성들이 공유하는 집단적 응어리이기도 하다. 바리공주의 서사를 획득한 엘사가 승화한 '기억'. 새로운 서사를 써 내려가는 여성들이 멀리 품고 나아갈 기억 말이다. 그야말로 '씻김굿'의 과정을 소설로 이뤄냈다고 할까? 끝이 가까워질수록, 마음 속에 뭉쳐 있던 무언가가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여성 서사라는 측면에 집중해서 글을 썼지만 <우리, 메아리처럼>은 사실 매우 복합적인 소설이다. 어머니와 딸을 이야기 중심에 놓고 여성은 모험을 떠나고 남성은 남겨지거나 기다리는 역할 반전을 통해 기존 모험 이야기의 틀을 비트는 한편, 부모 세대가 겪은 전쟁의 트라우마, 가족 간의 갈등, 이민자의 삶, 인종, 정체성 문제를 다면적으로 엮어내기 때문이다. 최근에야 이민자들이 쓴 작품을 읽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느끼는 불합리함과 불안, 정체성의 혼란이 이토록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 메아리처럼>이 처음이었다. 이민자나 입양아가 아니기에 몰랐던 그들의 고충을 알아간다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인간 이해의 영역에 도달하는 것과 같다. 차별과 편견이라는 틀 속에서 삶의 서사가 잘려 나가는 것은 이들도 마찬가지이기에 그 잘려 나간 서사를 복원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며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다. 아픔을 마주하고 기억하며 거기서 머물지 않고 새로운 서사를 써 내려가는 것. 이 놀라운 통과의례를 경험하고 싶다면 <우리, 메아리처럼>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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