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 1등급 고미정이 망하면 우리학교 소설 읽는 시간
우신영 지음 / 우리학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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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금수저로 태어나 아홉 살에 대치동의 유명 학원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경시반에 입성했지만 그 이후 성적이 곤두박질치며 들인 돈에 비해 성적이 애매한 아이, 동네의 명성에 누가 될까 봐 쉬쉬하는 번아웃 틴에이저로 흑화한 고미정. 생일날 모의고사를 시원하게 말아먹고 10년간 그래왔듯 학원 가기 전에 대충 배를 채우려 편의점에서 간편식 중 그나마 즐겨 먹는 오징어짬뽕을 먹으려 했지만, 운도 지지리 없게 재고가 소진되어 맛대가리 없는 컵밥을 먹게 된다. 그런 고미정과 달리, 흙수저로 태어나 각종 알바를 섭렵하며 찌든 티 없이, 가난한 티 없이, 억하심정이나 피해 의식 없이 넉살 좋게 사람 대하는 처세술로 사장님과 손님들에게 사랑받는 편의점 알바생 백영만은 유년기에 결식아동 급식 지원 카드로 편의점에서 대충 때웠던 부실한 식사에 넌더리를 내며 손수 싼 도시락으로 끼니를 챙겨 먹는데, 나중에 오징어짬뽕의 재고가 남아 있었다는 걸 깨닫고 미안한 마음에 특유의 넉살을 발휘하여 펫숍 앞에 쭈그려 앉아 있는 고미정에게 보름달 빵을 들고 다가간다.


그렇게 손님과 알바생으로 만나 빵 하나를 나누어 먹고 어느새 마주 보고 앉아 못난이 김밥을 먹게 된 두 아이의 끼니에 대한 생각은, 이렇게나 다르다.



"...그 만화가인지 미식가인지는 신문에서 본 적 있어. 난 그런 사람들이 너무 싫어."

"왜? 너 먹는 거 싫어해? 안 그래도 맨날 똑같은 거 먹는 게 신기하긴 했어."

"귀찮아. 하루 세끼를 챙겨야 한다는 게. 인간은 너무 효율이 떨어지는 생물이야."

"사람이 평생 먹는 끼니 수가 그렇게 많지 않다, 너.  그런 생각하면 난 한 끼 한 끼가 소중하던데. 한번 거른 끼니는 다시 못 먹잖아."

"많지 않긴, 삼시 세끼 먹는다 치면 1년에 1095끼. 대충 100끼로 잡고. 대한민국 여성 평균 수명 90세. 남성 평균 수명 86세. 그럼 여성은 9만 끼, 남성은 8만 6000끼, 평균 8만 80000끼인데 그게 적어?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 



밥 먹는 것이 귀찮고 지긋지긋하게 느껴지는 때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다. 할 것은 많은데 꼬박꼬박 에너지를 보충하지 못하면 버티지 못하는 인간의 몸이란 미정의 말마따나 비효율적이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 간단한 음식물을 쑤셔 넣는 대신, 달달한 음료 한 잔으로 때우는 대신 백영만과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며 오랜만에 식사다운 식사를 마친 미정은 기분 좋은 배부름을 느낀다. 그리고 배꼽 안쪽에서부터 따뜻한 촛불이 너울거리는 느낌에 콧노래가 흘러나오는 것을 참으며 도착한 버스 정류장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과 똑같은 아이들을 보며 연민을 느낀다.



제 몸만 한 가방을 멘 어린아이들이 한 손에는 영어단어장을, 한 손에는 마실 것을 든 채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딸기우유, 초코우유, 바나나우유. 하나같이 달콤한 빛깔의 우유들. 학원 뺑뺑이의 쓴맛을 단맛으로 덮어 보려는 발버둥일까. 미정은 그 아이들의 얼굴에서 공차를 마시던 제 모습을 발견했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자 우주 최고 천재라 믿어도 아상하지 않을 나이에 자산의 등급을 너무 정확히 통보받은 아이들. 미정이 아련하게 보거나 말거나 아이들은 빨대 끝에 입술을 대고 쪽쪽 빨기 시작한다.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를 이룬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먹는 것이란 단순히 음식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의 분위기, 함께 먹는 사람이 있다면 그와 나누는 대화를 비롯하여 그 시간을 이루는 모든 것이 허기와 함께 마음 또한 채워준다. 그래서 만족스러운 식사는 또 경험하고 싶은, 기분 좋은 추억이 되기도 한다. 그때 먹은 음식은 소화되어 사라져도 기억만은 계속 남아 우리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자주는 아니더라도 이따금 좋은 기억들이 쌓이면 정서적 포만감에 주변을 살필 여유가 생긴다.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 같은 것. 미정이 냉정하게 평가했던 노서영 선생에게 마음을 쓰며 말을 건네고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선물한 것처럼 말이다.

사실 <대치동 1등급 고미정이 망하면>을 읽기 전까지 '대치동 키즈의 삶'은 '그사세'처럼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공부의 압박이 심해서 힘들겠지만 당연히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누리며 성적이 좀 망하더라도 걱정 없이 탄탄대로의 삶을 살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어떤 유명 강사가 진행하는 하숙집 프로그램에서 미정을 닮은 한 참가자와 가족의 갈등을 보고 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한글을 떼기 전부터 영어유치원에 떠밀려 들어가 십 년 넘게 학원 뺑뺑이를 돌고 패스트푸드, 커피와 에너지 음료를 자양분 삼아 자란 아이들의 마음에는 무엇이 깃들어 있을까? 또 그곳에서 결국 윤지완이 되지 못한 아이들은 윤지완들 사이에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모찌처럼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지는 않을까?

그렇게 아이들이 재잘대며 마음 편히 밥 먹을 시간조차 주지 않고 효율을 추구한 결과 우리가 얻은 것이란, 사람을 사람으로 대할 줄 모르는 병적인 마음, 그 마음이 모여 만들어내는 팍팍하고 정 없는 사회,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선두를 차지한 사람들조차 이제는 비효율적인 무언가로 전락해 가는 기계의 세상. 그렇기에 어쩌면... 선행 학습 따위 아무리 해봐야 기계의 능력을 따라갈 수 없는 이 혼돈의 시대에는 고미정과 백영만, 노서영 같은 못난이 과일들이 가지각색의 개성을 드러내며 점점 생각과 마음을 잃고 차가워지는 세상에 다시금 온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슬쩍 고개를 든다. 미정이 끄적인 글들이, 영만의 과일 주스가, 나이 많은 문학소녀의 도전이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부디 더 늦기 전에 아이들에게 마음 편히 밥을 먹고, 친구들과 뛰어놀고,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마음껏 읽고 끄적일 시간이 주어지기를 바란다. 도저히 예측할 수 없고 유례없이 큰 좌절이 덮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에게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가, 진심으로 웃는 웃음이, 그 추억과 경험에서 피어나는 자기만의 생각과 개성, 타인에 대한 공감, 이리저리 떠밀리다가도 의문을 제기하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용기가 유명 대학교의 졸업장보다 ‘망해도 고! 고!’ 를 외치며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설 힘을 줄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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