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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
라이오넬 슈라이버 지음, 유소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5년 12월
평점 :
뻔히 미치광이 같은 이념을 국민 전체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재앙 같은 새로운 사회적 관습을 기쁘게 끌어안는 모습을 보면서, 인간 일반에 대한 내 평가는 심각하게 떨어졌다. 나 자신만 예외라고 강변하기는 곤란할 테니, 아마 이 실망감을 나 자신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인간이 하나의 종으로서 생각보다 훨씬 덜 대단한 존재라면, 나 역시 그저 그런 존재가 아닐까.
한때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다양한 역사적 현상을 이제는, 필연적은 아니었다 해도 납득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더 이상 홀로코스트에 경악하지 않으며, 나치 집권과 필적한 만한 현상이 절대 있을 수 없으리라고 생각되는 나라는 세상에 한 곳도 없다. 아니, 나는 미국이나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프랑스 혹은 현대 독일에서도 대략 2주면 본격적인 파시즘이 발현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마오쩌둥의 문화혁명, 스탈린의 강제노동 수용소, 캄보디아의 킬링필드, 이런 역사도 이제 내게는 너무나 평범해 보인다.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는 어느 순간 '정신평등주의'라는 이념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개인이 겪는 저항과 파멸, 승리 그리고 또다시 드리운 패배의 여정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날카롭게 통찰한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젠더 정체성 이슈부터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심상치 않은 일들이 과거의 역사와 겹치며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이자 팟캐스트 진행자인 에즈라 클라인은 최근 미국의 베네수엘라 군사 개입을 20세기 초반 아나키스트들이 국가 권력에 맞서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행동을 촉발하기 위해 벌였던 '행위 선전(Propaganda of the Deed)'에 빗대며, 이러한 행위 선전을 트럼프 행정부 같은 국가 권력이 행할 때 그것은 "지금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메시지"라고 언급했다. 그 메시지란 무엇일까? 앞으로 강대국이 다른 나라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 질서가 힘의 논리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똑같은 비극이 벌어지지 않도록 구축되었던 국제 질서가 극우파의 부상과 함께 서서히 무너지면서 사실상 전체주의가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에 나오는 '정신평등주의', 즉 반지성주의와 손을 잡고 우리 삶에 스며들고 있다. 한국도 최근 그로 인한 위기를 겪은 바 있다. 다시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사태가 믿을 수 없이 엉성하고 멍청하지만 실제적인 폭력의 형태로 그 한심한 민낯을 드러낸 것이다. 실패로 끝났지만 이제는 또다시 벌어지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는, 오히려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다시금 찾아올지도 모르는 그 순간은 늘 어딘가에서 현재 진행 중이었고, 어느새 세상 전체에 진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는 이러한 현시대 상황을 ‘정신평등주의’의 광기에 잠식된 평행 세계를 통해 조망하며 이념의 갈림길에서 벌어진 수많은 갈등과 비극의 역사를 에머리와 피어슨, 두 인물을 통해 우정이라는 개인적인 관점에서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소설을 읽는 진정한 가치가 있다. 허구의 이야기를 통해 도달하는 현실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깨달음. 거기에 재미까지 있으니 이만한 지적 유희가 또 있을까? 이 소설을 읽은 덕분에 나도 피어슨처럼 ‘한때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던 다양한 역사적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비롯되는 ‘악의 평범성'에서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역시. 어떤 사회적 현상에 대해서 역사서나 인문서를 읽어도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때, 연관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점들을 잇는 선을 찾을 수 없을 때, <마니아, 평등에 미친 시대>와 같은 소설은 벼락같은 통찰력을 제공하며 그 점들을 단번에 연결하는 엄청난 지름길이 된다. 그것이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