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
세스지 지음, 전선영 옮김 / 반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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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나는 돌아다녔다. 옛날, 신이 있던 장소를. 지금은 고질병이나 다름없는 인간의 탐욕으로 더럽혀진 성지. 그 더러움으로 뇌수를 채우고 속죄함으로써, 맑고 고운 나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 그리하여 나를 대신할 누군가를 찾아내기 위하여.


<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는 일본의 ‘로쿠부 살해’ 민담(피해자가 가해자의 자식으로 환생해 응보를 되돌린다는 이야기)을 기반으로 한 소설이다. '로쿠부'는 중생이 저지른 죄를 씻어 내기 위해 순례를 떠나기도 했던 수행승을 이르는 말로, 이 민담 속에서 수행승이 살해되면서 구원의 순례가 응보의 윤회전생으로 전환되어 <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의 뿌리가 된다. 따라서 이야기를 역산하면 이렇다.


부부가 탐욕에 눈이 멀어 수행승을 살해한 후, 로쿠부가 선의를 품고 순례했던 길은 악의에 찬 응어리가 배회하는 저주의 길이 되었고, 여러 시대를 거쳐 목격되며 고바야시에 의해 '풍선남'이라는 명칭을 얻은 이 존재는 원망과 증오로 가득 찬 인간들을 찾아내 또 다른 죄업의 굴레로 인도한다. 그리고 그 족적이 뚜렷하게 남은 장소가 바로 '심령 명소'로 유명한 '변태 오두막', '천국 병원', '윤회 러브 호텔'인 것이다.


<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는 이 '심령 명소'에 얽힌 소문을 각색해 돈벌이로 삼으려는 고바야시, 호조, 이케다를 통해 이 '죄업의 굴레'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며 그 수레바퀴를 돌리는 원동력이 인간의 마음에 있음을 이야기한다. 또한, '죄의식'과 그로 인한 '확증편향' 역시 그 굴레를 악화시킬 수 있음을 드러낸다. '윤회 러브 호텔' 스토리에 나오는 게이이치는 어려서부터 영문도 모른 채 부모의 냉대를 견뎌야 했다. 이야기 흐름상, 게이이치의 부모는 과거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을 것이고 게이이치는 어린 시절 부모의 '죄의식'을 자극하는 '어떤 행동'이나 '말'을 했을 것이다. 그 결과 영문도 모른 채 부모에게 미움받았고, 부모에게 제대로 된 애정을 받지 못한 서러움이 자신에게 애정을 보이는 인물에 대한 삐뚤어진 집착으로 자라나 또 다른 사람을 악의와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만다.


고바야시와 호조도 이 죄의식과 확증편향을 이용해 이케다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결국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그리고 죄의식과 확증편향에 빠져 괴로워했던 이케다는 모든 것이 잘 풀린 시점에 화가 치미는 것을 느낀다. 이케다가 마지막에 내뱉은 말은 과연 농담이었을까? 그가 받았다는 전화의 내용도 의미심장하다. 죄의식을 느끼며 괴로워하다가 결국 자신의 착각이었음을 깨닫고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한 순간, 열등감이었던 것은 어떻게 비틀려 상대를 찌를 것인가? 타인의 죽음과 두려움을 실컷 이용하고 고바야시와 호조가 베푼 알량한 선의가 오히려 삐걱대던 죄업의 수레바퀴에 기름칠을 한 것은 아닐지.


<더럽혀진 성지 순례에 대하여>를 끝까지 읽고 뒤표지를 보면 눈을 맞춰오는 형체에 '섬뜩함'을 느낄 것이다. 질투, 분노, 서운함, 미움, 열등감처럼 우리가 때때로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 '증오'라는 끈적하고 불온한 변이를 거쳐 '악의'로 물들었을 때 그것을 형상화한다면 딱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지만 이 '섬뜩함'이 그리 낯설지는 않다. 그 어느 때보다 더 자주 눈에 띄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일면이.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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