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래에게>는 ‘피터 팬 바이러스’로 어른이 모두 죽고 아이들만 남은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이다. 주인공 자매는 구세계의 첨단 시스템이 무너진 세상에서 옛 방식으로 생존할 수 있는 할머니 댁으로 향한다. 그 여정에서 마주치는 규율 없는 세상 속 타인은 무엇보다 위험하고 믿을 수 없는 존재이며, 한 공동체에서 생활하면서도 서로에 대한 불신 아래 이익을 가늠하고 차별하며 적대감을 키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누군가 예상치 못한 이상한 친절을 베푼 순간, 딱딱하게 굳었던 마음이 풀리며 이해와 공감, 연대의 길이 열린다. 반면, 어떤 이들은 절망적인 상황에 생각과 의지를 내려놓고 집단 환각에 빠져드는 ‘편한’ 길을 택한다.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남의 의지에 휘둘리는 삶을.
나는 이 소설 속 디스토피아가 현실에 대한 은유처럼 느껴졌다. 교사가 ‘감히’ 아이를 훈육할 수 없는 세상.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교육’이라는 말이 설 자리를 잃고, 그 결과 아이들이 세상을 배우고 의지할 어른들이 부재한다. 부실 공사에도 부동산 가격이 떨어질까 쉬쉬하고 싱크홀이 곳곳에서 나타나도 공사를 계속한다. 어떤 이들은 새롭게 부상한 미디어 플랫폼에서 떠들어대는 목소리 큰 자의 말을 맹신하며 스스로 생각하길 포기하고 그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내란에 가담하며, AI에게 판단을 맡겨버리기도 한다.
이런 세상에서 <나의 미래에게>는 주인공 미아를 통해 우리에게 생각할 것을, 행동할 것을, 생각과 의지를 잃은 꼭두각시의 삶에서 벗어날 것을 권한다. 즐거울 때도 있지만 때로는 지긋지긋하고 끔찍하기도 한 삶을 그래도 살아갈 것을, 세상에 문제가 있다면 문제를 마주보며 해결할 수는 없을지라도 ‘한 발 나아가는 삶’을 살아갈 것을 이야기한다.
"지금 너에게 말해 주는 이 모든 건 내가 기록했기에 기억하는 거야. 기록하지 않으면 기억은 쉽게 날아가. 쓴다는 건 끊임없이 부는 시간이라는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기억을 언어로 붙잡아 두는 거야.
그러면 너는 또 묻겠지.
기억하면 뭐가 달라지냐고.
난 말하고 싶어. 달라진다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씀으로써 나의 과거는 기억으로 남고, 씀으로써 나는 시시각각 흘려 버리기 쉬운 현재에 눈을 뜨게 돼.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마주하면 미래 역시 달라져. 미래라는 파도에 속수무책으로 휘말리는 게 아니라 겪었던 해류를 기억하고 현재의 물살을 파악하며 다가올 파도를 가늠해 나아갈 방향을 정하게 돼."
<나의 미래에게>의 책장을 덮으며, 나는 문득 나혜석을 떠올렸다.
우리보다 앞서 길을 걸어간 수많은 언니 중 한 사람.
"조선의 남성들아, 그대들은 인형을 원하는가,
늙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당신들이 원할 때만 안아주어도
항상 방긋방긋 웃기만 하는 인형 말이오.
내 몸이 불꽃으로 타올라 한 줌 재가 될지언정
언젠가 먼 훗날 나의 피와 외침이 이 땅에 뿌려져
우리 후손 여성들은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살면서 내 이름을 기억할 것이라."
생각해 보면 여성에게 디스토피아가 아니었던 시대는 없었다.
수많은 살해 위협과 폭력, 박해, 조롱, 멸시 속에서도 맹렬한 불꽃처럼 타오르며
끝끝내 앞으로 나아가 글을 남겼던 나혜석 같은 언니들이 있었기에
과거와 현재를 거쳐 여성들의 미래가 달라지기 시작했고
단순히 '생존'만이 아닌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우리가 존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전하고 싶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드디어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좀 더 인간다운 삶을 사는 미래가 여기에 도달했다고.
수많은 여성의 미래인 우리도 언니들처럼
나아가고, 마주하며, 세상에 목소리를 내고
세상을 알고 삶을 살기 위해 걸으며 ‘삶의 이야기’를 남길 것이라고.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의 미래가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