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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완전판) - 보통의 우화 오웰이 쓴 오웰
조지 오웰 지음, 정철.홍지영 옮김 / 빈서재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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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오웰은 사회주의 노선을 걷는 소설가였고 진정한 애국자였다. 그는 세상의 모든 기득권 층을 경멸했다. 영국의 제국주의, 소련의 전체주의, 독일의 나치 정권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공산당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는다. 그가 경멸하는 이들은 이 세상에서 사람 위에 군림하고 자기 이익만 취득하며, 권력을 끊임없이 유지하려는 자들이었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동물인 '나폴레옹'은 자기 자리에서 결코 물러날 줄 모르는 독재자를 뜻했다. 


  아무리 다른 동물들의 권리를 위해서 싸운 나폴레옹이어도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나지 않으면 훌륭한 혁명가로 기억되기 어려웠다. 『동물농장-보통의 우화』는 조지 오웰의 소설만 담고 있지 않고, 그의 소설을 읽는데 도움이 되는 여러 글이 같이 실렸기 때문에 분량이 많다. 정치나 사상에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공부하는 기분으로 읽게 된다. 조금 따분할 수도 있지만 분명 도움을 받는다. 이 책을 읽으면 『동물농장』과 『1984』를 이해하기가 좀 더 수월해진다. 


  책에 이런 글이 있다. 1930년 까지 나는 스스로 사회주의자라 생각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아직 명확하게 정의된 정치적 견해가 없었다. 계획 사회에 대한 이론적 동경보다는, 산업 노동자들의 가난한 계층이 억압 받고 무시 당하는 방식에 대한 혐오감 때문에 친사회주의자가 되었다. (본문 156쪽) 조지 오웰이 쓴 우크라이나어판 『동물농장』의 서문 중 한 부분이다. 


  억압 받는 노동자의 권리를 생각한 오웰이 나치 독일과 스탈린 숭배에 가까운 움직임을 보이는 러시아를, 러시아의 사회주의를 옹호할 리가 없었다. 전체주의 국가의 정치란 결국 국가나 권력층의 이익이 시민들의 이익과 안전보다 우선인데, 그러면 국가와 권력층은 노동자 계층보다 자본가나 힘 있는 자와 결탁하고 검은 돈을 챙길 우려가 있다. 소련은 처음의 이념과는 달리 점점 파시즘에 물든 이념으로 변해 갔고 오웰은 그 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책에도 나오는 단어인 '과두적 통치'란 권력을 잡은 소수의 집단이 정치, 경제, 사회 등 전반적인 것을 지배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과두적 집산주의'는 실제 존재하는 정치 체제는 아니고 조지 오웰의 소설인 『1984』에서 제시된 가상의 이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히친스라는 인물이 현실에서 『1984』속 과두적 집산주의와 가장 닮은 노선을 밟고 있는 나라를 북한으로 꼽았다는 점이다. 과두적 집산주의의 핵심은 거의 완벽한 통제에 있는 듯하다. 


  『동물농장』이 우화는 우화이지만 라퐁텐이나 이솝 우화와 비슷한 결은 전혀 아니다. 어느 우화든 재치나 풍자는 있기 마련이지만 조지 오웰의 우화는 정치적인 성격이 강해서 읽기가 마냥 편하기만 하지는 않다. 하지만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완벽한 자유에 놓일 수는 없기 때문에 정치적인 이야기를 무시하며 살 수 없고, 매번 그래서도 안 된다. 그래서 조지 오웰의 소설은 한번 쯤 꼭 읽을 필요가 있다. 『1984』도 정치적인 성격이 강한 소설이고 읽다 보면 무섭기도 하다. 따분하다고 느낄 사람도 없지는 않겠지만 분명한 건 무척 강렬하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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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n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6
위수정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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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분량은 짧은데 어려운 소설이다. '가볍게 읽기 좋겠지?' 이런 생각으로 책을 막상 읽다 보면 결코 유쾌하고 가볍지 않다. 문학 평론을 하는 분들이야 깊고 깊은 수심을 걱정하면서도 제대로 장비를 갖추고 물 속으로 들어가는 잠수부처럼 소설에 대해서 최대한 넓고 깊게 볼 줄 알겠지만 나는 기본적인 수영도 못 하고 물 공포증도 있고…, 하여간 여러 면에서 난국인데 말이다. 


  2. 


  주인공은 연극 배우인 최기옥과 윤태인이 있고, 또 그들의 매니저인 윤주와 상호가 있다. 최기옥은 약물을 맞은 일로 논란이 있던 중년의 여배우이고 인기가 높아서 삶이 그야말로 윤택하다. 윤주는 그녀의 매니저인데 평범한 외모에 이렇다 할 특징이라고 할 만한 게 없는 여성이지만 한 사람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삶이 어디 있을까. 적어도 윤주는 자신이 그렇다고 생각하겠으나.


  윤태인은 악역을 주로 자처하는 배우이고 그 또한 인기가 높아서 남 보기엔 부족함이 별로 없다. 그의 매니저인 상호는 그의 곁에서 묵묵히 일을 한다. 가끔 악역을 연기하고 있는 중인가 착각이 들 정도로 까칠하게 구는 태인의 행동을 잘 참아준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부분이 무엇이냐면 기옥은 윤주를 부러워 하고 윤주는 기옥을 부러워 하며, 태인은 그런 기색은 없지만 상호는 태인을 부러워 한다는 점이다. 


  도대체 이게 어떤 점에서 흥미로운가. 기옥은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관리 잘 받는 여성 특유의 광채가 나면서 속 썩게 하는 자식도 없다. 누가 봐도 부러운 삶 아닌가. 그런데도 항상 우울과 불안에 절어 지내고 예쁘지도 특별하지도 않지만 그저 젊다는 이유 만으로 윤주를 부러워 한다. 윤주는 당연히 그런 기옥이 이해가 안 가고 부족한 거 없이 지내는 기옥이 부러울 뿐이다. 


  상호도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태인이 부럽기 그지 없다. 더군다나 따뜻하고 안락한 집과 귀여운 아내도 있고 돈도 잘 벌고. 그런데 희한하게도 이들은 상대에게 '너는 뭘 잘 모른다', 이런 소리만 한다. 기옥이 윤주에게 윤주가 기옥에게 그렇게 말하거나 느끼고, 태인과 상호도 그랬을 것이다. 서로가 그저 부럽기만 하지 왜 저렇게 불만이거나 우울한지 이해가 안 간다. 


  뭘 모른다는 걸까. 그게 궁금했다. 그 말에는 여러 뜻이 숨어 있겠다. 서로의 마음일 수도 있고, 나의 가면이 아닌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일 수도 있고, 아니면 삶 그 자체일 수도 있다. 우리는 뭘 잘 모르고 모호하게 사는데, 다만 그 모호함이 싫어서 웃고 떠드는 게 아닐까. 웃고 떠드는 행동이야말로 확실하고 선명하고 어렵지 않고 그저 즐거우니까. 다들 너무 어려운 건 질색이니까. 


  네 마음이니, 진실이니, 삶이니 그런 것들 말이다. 따지고 따질수록 어렵다. 당신이 나에게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지, 거짓으로 대하고 있는지 판단하기도 어렵지만 거짓으로 대하고 있다고 해도 그게 정작 본심에서 나온 거라면 나는 그 사람의 본심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안개가 끼듯이 뿌연 삶 속에서 가장 확실하면서 좋은 건 잘 먹고 잘 사는 건데, 이상하게 삶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3. 


  가면. 소설에서 중요한 단어다. 이런 문장도 있다. '가면을 쓰는 것에서 한 발짝 더 들어가면 가면을 바라보게 된다는 것을 기옥은 알고 있었다.'(본문 27쪽) 가면을 바라보게 된다는 말은 이 문장의 다음에도 나오지만 자신의 가면을 마음대로 꾸밀 수 있다는 뜻으로 보였다. 자기 표정, 분위기를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해서 상황을 다른 식으로 흐르게 한다(되도록 본인에게 유리하게). 어째서 바라본다는 말을 썼냐면 제대로 보여야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바꾸기가 가능하니까. 


  자기 가면을 잘 볼 줄 알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기옥이나 태인을 보면 그렇지가 않다. 그들은 분명 자기 삶의 주인으로 보이지 않고 무언가에 휘둘리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자신의 삶에 휘둘리는 것처럼. 상호는 자기의 얼굴이 마치 노예의 관상이라고 말한 바 있는데, 높으신 양반의 관상을 지닌 기옥과 태인도 자꾸만 자기 삶에 있어서 귀족처럼 굴지 못한다. 그들은 그저 삶이 부리는 무언가일 뿐일까. 


4.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행복을 타인의 행복과 나란히 놓고 크기를 비교하길 잘 한다. 내가 가진 행복이 타인의 것보다 한참 작아 보일 때 불행의 크기는 이전보다 조금 더 커진다. 그런데 행복만 비교하길 잘 하는 게 아니다. 고통도 그렇게 하길 잘 한다. 내가 가진 고통은 희한하게도 타인이 가진 고통보다 크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럴 때에도 불행의 크기는 이전보다 조금 더 커진다. 어쩐지 불공평하다. 행복은 언제 즈음 커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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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아이들 2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0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0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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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누구-무엇인가? 내 대답은: 나는 나보다 앞서 일어났던 모든 일, 내가 겪고 보고 행한 모든 일, 그리고 내가 당한 모든 일의 총합이다. 나는 이-세상에-존재함으로써 나에게 영향을 주거나 나의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이고 사건이다. 나는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일어난 모든 일이며 내가 죽은 뒤에도 나 때문에 일어날 모든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특별히 나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모든 '나'가-즉 지금은-6억-명도-넘는-사람들 한 명 한 명이 모두-그렇게 다수를 포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되풀이한다: 나를 이해하려면 세계를 통째로 삼켜야 한다. (본문 302-303쪽)


  한 아이가 자라나는 동안 역사와 운명에게 수도 없이 흠씬 두들겨 맞았다. 아이는 어떤 사람으로 자라날까? 참다가 참다가 보면 빛을 발하는 날이 오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낙관주의에 빠져 살아갈까, 내 인생의 종점은 결국 '망함'이라고 생각하면서 비관주의에 빠져 살아갈까. '살림 시나이'는 말 그대로 수도 없이 당했다. 그는 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지만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하지는 않았다. 태어나면서 인도라는 나라와 운명을 같이 하게 된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무엇을 하였나. 


  기록을 했다. 특별한 능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모조리 읽어낼 줄 알고, 그런 능력을 잃은 후에도 매우 섬세한 후각 능력으로 세상의 모든 냄새를 맡을 줄 알았다. 그런 능력에 더하여 기억을 잘 하는 능력과 글을 잘 쓰는 능력으로 기록을 한 것이다. 그러면서 글을 읽는 독자에게(세상 사람들에게) 인도라는 나라를 알렸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이야기들 중에서 대부분의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이라고 말해 주었다. 


  앞서 1권을 읽고 쓴 리뷰에서 천 명 하고도 거기에 한 명을 더 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영국이 점령했던 땅을 되찾은 인도가 신생 국가로 거듭난 그 날 자정에 태어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그 중에서 시간 여행을 할 줄 아는 능력이 있는 아이가 자신들의 존재 이유는 모조리 전멸하기 위해서라고 말했을 때 살림은 그가 비관주의자라고 생각했다. 


  어린 아이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형태의 낙관주의는 죽음, 소멸이 머릿속에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다. 어린이들의 천진난만함은 거기서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람은 결국 언젠가 죽기 때문에 존재 의미가 생기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반드시 사라진다는 확실함 때문에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친절해야 하고(사라지면 다신 볼 수 없으니까), 무한하지 않은 인생에서 시간 내에 자기 꿈(아주 작은 소망일지라도)을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살림 시나이를 비롯한 천 한 명의 아이들의 운명은 노년에 죽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겠지만 어쨌든 죽기 전에 살림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했고 실천했다. 자꾸만 분열하는 나라와 사람들을 위해서 정치적인 행동을 했다. 하지만 그는 정치에 질려 버렸다. 그의 능력은 정치를 잘 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일까. 대신 그는 열심히 기억하고 기록했다. 그것이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이뤄야 할 꿈이었는지도 모른다. 다가오는 운명 앞에서 무기력하게 당하고 있기만 할 수는 없으므로. 


  그는 언어와 피클을 이용해서 자신의 기억을 영원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기록이 정말 영원할지는 알 수 없는 일 아닐까. 하지만 금방 잊힐 일도 기록하면 오래 전해진다. 그렇게 해서 그의 기록이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 사람들에게 읽히고 교훈을 얻게 만든다. 살림은 젊은 나이에 강력한 균열을 겪어야 했으나 신생 국가인 인도의 운명과 자신의 운명은 같을 수밖에 없었으니 그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그가 갈라지고 부서지면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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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아이들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79
살만 루슈디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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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속에 온 세상을 담으려 했던 어느 화가처럼 『한밤의 아이들』의 주인공이며, 화자인 '살림 시나이'도 이야기 속에 온갖 것을 모조리 담으려다 이야기가 산만하고 정신이 시끄러워지긴 했으나, 요지경상자 속 마냥 신기해졌음은 사실이다. 읽고 있다 보면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로 아찔한 기분이다. 이런 문장을 좋아한 적이 없었는데도 살만 루슈디의 소설은 취향을 뛰어넘어 만인을 사로잡을 수 있는 힘이 있었다. '부커 오브 부커스'를 왜 받았는지 충분히 납득이 갔다. 


  살림 시나이는 그의 조상이나 지인들의 이야기를 그들이 자신에게 남긴 유산이라고 말한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사람은 이야기 없이는 살기 어렵다. 끝없이 쏟아지는 이야기 상자에 묻히고, 스스로 그것을 만들기도 한다. 작가가 아닌 사람들은 이야기를 짓거나 말할 때 기승전결을 갖추고 아름다운 문체를 곁들이는 등의 갖은 노력을 기울이기보다 쉽게 생산하고 소비하는데, 물론 작가는 다르다. 


  그들의 노고를 떠올려 본다. 정신적인 노동도 많이 기울였겠지만 육체적으로도 상당히 힘이 들었을 것이다. 장시간 책상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고 눈은 혹사 당하고 뻐근해지는 손가락, 손목과 등, 허리, 목…. 나는 작가가 아니라서 실제로는 어떨지 잘 모르겠다. 그냥 상상만 한다. 책 한 권을 읽으면서 상상은 끝없이 이어진다. 안 그래도 복잡하고 수다스러운 살만 루슈디의 소설을 읽으면서 잡생각과 상상에 쉽게 빠지는 나는 책을 한 장 넘기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거나, 영상으로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살만 루슈디의 소설은 필수다. 글을 읽는 동안 독자의 머릿속은 살만 루슈디의 글로 꽉 차다가 폭발하는 지경에 이른다. 살림 시나이의 나라인 인도를 우화의 나라라고 하는데, 나는 처음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수많은 힌두교의 신들이 다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가령, 뱀신이 끔찍한 독(말)을 내뿜는 영화관 지배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듯이. 한 명, 한 명의 인도인은 다 어떤 특정한 신을 떠오르게 만든다. 종교가 없는 사람의 숫자도 만만치 않게 많은 한국에서 인도라는 나라는 신기하게 다가온다. 사실 모든 인도인이 힌두교도는 아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수없이 많고, 믿는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시도 때도 없이 내란과 전쟁이 벌어진다. 그 또한 나에게는 색다른 부분이다. 믿는 종교가 문제가 되어 큰 싸움으로 번진다는 점이. 


  살림 시나이는 어린 시절에 전 인도인의 목소리를 수신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그 말을 가족들 앞에서 꺼냈을 때 무슬림(이슬람교를 믿는 사람) 집안에서 대천사를 들먹였다는 이유로 집안은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천사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고 고백했으니 아버지는 그가 거짓말을 하는 동시에 천사를 욕보였다고 오해했음이 분명하다. 하여간 다른 사람의 말을 수신하게 되었다는 것은 그들의 내면을 속속들이 알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한다. 


  인도가 영국에게서 독립한 그 날(8월 15일), 자정에서 한 시 사이에 인도에서 태어난 이른바 '한밤의 아이들'은 특별한 재능을 부여 받았는데,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태어난 아이일수록 능력은 특별했고 한 시에 가까운 시간에 태어난 아이일수록 능력은 보잘것없었다. 살림 시나이와 그의 분신이나 마찬가지인 시바는 자정에 태어났다. 이 이야기도 정말 매력적이지 않은가. 내가 만약 신에게서 특별한 능력을 받는다면 뭐가 좋을까, 고민하게 된다. 


  물론 그런 건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내림을 받는 것이지만. 내가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자 문장은 선택 받은 한밤의 아이들이 살림의 머릿속에서 토론을 벌일 때였다. 1001명의 아이 중에서 시간여행자인 수미트라는 아이답지 않은 비관론자였다. 소설 속에서 내가 좋다고 느낀 문장을 옮겨 적는다. 


  "내 말 잘 들어!─이거 다 쓸데없는 짓이니까우린 뭘 시작하기도 전에 끝장나고 말 거야!" 하고 말했을 때도 우리 모두는 그를 무시해버렸다. 어린이 특유의 낙관주의 때문에한 때 우리 외할아버지 아담 아지즈가 걸렸던 병과 똑같지만 훨씬 더 강력한 형태의 낙관주의병 때문에─우리는 한사코 어두운 측면을 보지 않으려 했고, 그래서 '한밤의 아이들'의 존재이유는 모조리 전멸하기 위해서라고, 우리 모두가 멸망하기 전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고 말하는 아이는 우리 가운데 단 한 명도 없었다. (본문 479-480쪽)


  

  이 문장은 읽는 사람에 따라서 해석이 다를 수 있고, 또 내 생각은 맞지 않을 수 있지만 일단은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려고 노력했다. 여기서 말하는 '훨씬 더 강력한 형태의 낙관주의병'은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가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대낮처럼 밝고도 확고한 삶만을 바라보는 셈이다. 반면에 '어두운 측면'은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사라진다는 사실이 머릿속에 자리 잡은 상태이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언젠가는 반드시 죽는다는 명백한 사실 때문에 삶의 의미가 생긴다.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확실함 때문에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하고(죽으면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르니까), 무한하지 않은 인생에서 시간 내에 꿈을 펼치기 위해 움직인다.(영원히 죽지 않는다면 꿈은 계속 뒤로 미루기만 하는 게 가능하므로) 죽음이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죽음이 있어서 인간은 살아야만 한다. 죽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인간은 모두 열심히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는 점은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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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스미스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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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욱 감독의 영화가 이 소설을 각색하여 만들었다는 점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 체로 소설을 읽었다. 어디까지 읽다 보면 이 소설은 반전이 기막히구나, 싶다가 어디까지 읽으면 이 소설은 페미니즘 소설이구나, 싶다가 어디까지 읽으면 이 소설은 시적인 장면으로 가득하구나, 싶다가 어디까지 읽으면 이 소설은 가면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890쪽 분량의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다르게 읽히고 다른 점이 보이는 특별한 소설이었다. 


  책을 상당 부분 읽고 난 뒤에 유튜브에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에 대한 영상을 찾아 봤다. 드라마도 만들어졌다고 했는데 그건 안 봤다. 영화의 결말은 정말 멋졌고, 이런 놀라운 결말을 미리 봤으니 소설을 읽어도 색다르게 놀라울 점은 없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전혀 아니었다. 소설과 원작이 완벽하게 같은 결말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다니, 정말 바보 같았다. 소설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였고 영화도 소설과는 딴판이었다.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결말이 멋졌다는 것. 


  소설의 제목인 "Fingersmith"는 소매치기란 뜻인데 이 소설이 시적인 장면이나 단어로 가득하다는 점을 깨닫고 그런 상태로 글을 읽어나가면 제목에 얼마나 많은 뜻이 담겨있는지 머리가 띵하도록 깨닫게 되리라. 그리고 이야기 속에서 끊임없이 나오는 신사와 숙녀란 단어가 이 소설에서 얼마나 경멸이 섞인 단어로 쓰였는지도. 나중에는 해당 단어만 봐도 넌덜머리가 날지 모른다. 


  신사와 숙녀의 가면을 자신이 썼든 남이 씌워주었든 그것을 벗었을 때 드러나는 민낯은 더럽거나 아니면 지독하게 슬프다. 상류 사회에서 신사의 가면을 쓰고 살았던 릴리 삼촌은 잉크 때문에 항상 혀가 새까만 사람이었다. 이 이미지 또한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다. 그는 책 속 세상에만 갇혀 사는 헛똑똑이였고(실제로 똑똑하지 않은데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실생활에서 깨우치고 배우려 하지 않는 자였다. 


  그리고 정말 알아야 할 걸 알지 못하는 눈 먼 자였고, 생물학적으로는 그렇게 늙지 않았음에도 정신적으로는 이미 늙어버려 주변 사람을 힘들게 한 자였다. 릴리 삼촌이 지배하고 있었던 브라이어 저택은 그의 추악한 꿈에서 결코 깨어날 수 없는 잠든 공간이었다. 영화의 결말이 멋졌다고 말한 이유는 그렇게 잠들어 있기만 할 것 같던 공간이 아름다운 현실로 깨어났기 때문이다. 


  모드가 브라이어 저택에서 숙녀의 가면을 쓰고 지낼 적에 그녀는 나이를 먹지 못하게 단속 당하는 어린 아이에 가까운 처지였다. 여기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생물학적으로 늙어간다는 의미보다 자아 실현을 위해 왕성한 노력을 하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독립도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모드는 릴리 삼촌 때문에, 조용하고 말 잘 듣는 소녀를 원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때문에 어른이 될 수 없었다. 


  자아 실현이니, 독립이니 하는 일을 꿈꾸기가 어려웠다는 말이다. 전족을 하지 않은 비대한 발이나, 코르셋을 입지 않아 가늘지 못한 허리는 어느 시대의 어느 나라에서는 여성에게 있어서 수치였다. 자라거나 커지지 못하게 막아야 하는 건 여성들의 신체에만 그치지 않았다. 정신적으로도 막아야만 한다고 여겼던 점들이 있었다. 이렇게 쓰다 보니 이 소설이 페미니즘을 유독 강조했다고 드러내는 듯한데, 그건 아니다. 가면 뒤에 숨겨져 있었는데 마주해야 할 진실과 진짜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보는 편이 더 맞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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