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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수첩 김승옥 소설전집 2
김승옥 지음 / 문학동네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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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렸는데 마지막 두 편은 미완 소설이다. 완성되지 않은 소설에 대한 감상을 적기가 두려워서 앞에 세 편에 대한 감상만 적는다. 김승옥 소설가라면 그를 팬이라고 자처하는 독자도 많고 소설가들 사이에서도 존경 받는 분인 모양이다. 나도 「무진기행」을 참으로 좋아한다. 정말 좋아하는 소설을 떠올리면 몸속이 간지러운 느낌을 받는데 왜 그럴까? 몸속이 간지러운 느낌이 없으면 그 소설은 읽고 나서 그저 그랬다고 기억하게 된다. 


  첫 번째 단편 소설인 「환상수첩」에서는 일생을 걸고 목숨을 걸 단 하나의 얼굴을 갈구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서울대 재학생이다. 김승옥 소설가도 서울대 졸업생이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얼굴이란 가면이고 자신의 생활 형태이며 역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그리고 그 자체로 살아지는 것이고 나를 살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감상을 적기 전에 잠깐 떠오르기로는 얼굴이란 남 앞에서 자신 있게 드러낼 수 있는 내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뭐, 꼭 자신 있다고 까지 할 수 없을지라도 그 정도면 그럭저럭 괜찮겠다는 생각이 드는 모습. 그런데 주인공인 '나'는 문학을 하는 자신의 모습도 상상하기 어렵고, 그렇다고 서기니 대의원이니 교수니 비행사니, 뭔가 딱 내세울만한 자기 얼굴을 찾기가 어려워서 방황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서울대학교 학생이면서 그런 걱정을 하는 거냐고, 남의 속도 모르면서 괜히 하고 싶어진다. 대한민국 최고 명문대 졸업생이면 어디에서도 환영받을 것만 같은데. 


  '나'는 그러나 무슨 직업을 택해서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고민보다도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깊게, 깊게 했는지도 모른다. 주인공의 친구 중에서는 한 여인의 남편이 되어서 돈을 벌고 착실히 살려는 마음을 먹었다가 뜻밖의 사건으로 목숨을 빼앗긴 이가 있다. 아, '윤수'다. 윤수는 자기의 얼굴을 방황 끝에 찾은 셈이었다. 하지만 신은 야속하기도 하시지. 이 소설은 참으로 우울하다. 하지만 애매모호한 우울함이 아니라 제대로 된 진단 명이 있는 우울함이다. 


  두 번째 단편 소설인 「다산성」이나 세 번째 단편 소설인 「재룡이」를 읽고 나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떠올리게 된다. 인간은 복잡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무어라 정의내릴 수 있는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가지고 있다. 「다산성」에서 어느 연극 연출가는 토끼에게도 그런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잘만 하면 연극에서 토끼를 연기자로도 써먹을 수가 있다고. 소설이든, 연극이든 그것을 읽고 보는 독자는 등장인물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읽고 보게 된다. 


  「재룡이」에서는 전쟁을 겪고 난 이후 순박한 청년에서 백팔십도 인간성이 뒤바뀌어버린 '재룡이'라는 청년이 등장한다. 사람의 성질이라는 것이 주변 환경이 확 바뀌지 않으면 쉽사리 바뀌지 않는데 괴물 같은 시국이 엉망이면 얼마든지 바뀔 수도 있다는 점을 소설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물론 전쟁이나 무서운 사상이 휩쓸고 가는 시국 정도는 되어야 한다. 마을에서 무슨 싸움이 일어났다고 해서 사람의 성질까지 바뀌진 않는다. '재룡이'가 군인이 되어 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자기 마을에서 순박함을 그다지 잃지 않고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었을지도. 


  인간성이 바뀐 '재룡이'의 삶의 방식은 어떻게 변했나? 부지런함에서 게으름으로, 순박함을 잃지 않은 행동들이 천박하고 경박한 행동들로 바뀌었다. '재룡이'의 어머니는 그 점이 지독하게도 슬프다. 나 같아도 그렇겠다. 가족 중에 한 사람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집으로 돌아오면 그가 낯설고 한편으로 무섭기도 하겠다. 예전의 모습이 많이 그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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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1~3 세트 - 전3권 (무선)
류츠신 지음, 이현아 외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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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양자의 불확정성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것이 확정적이라고 가정할 때, 초기 조건을 안다면 그 후 모든 시간 단면의 상태를 계산해낼 수 있지. 만약 외계의 과학자가 수십억 년 전 지구의 모든 데이터를 갖고 있다면 그는 오늘날 이 사막이 존재한다는 것을 예측해낼 수 있을까?"

  Ice가 대답했다. 

  "당연히 그럴 수 없죠. 이 사막의 존재는 지구가 자연적으로 진화한 결과가 아니니까요. 사막화를 일으킨 건 인류 문명이고 문명의 행위는 물리학의 법칙으로는 예측할 수 없잖아요."

  "좋아. 그런 우리와 우리 동료들은 어째서 물리학의 법칙만으로 현재 우주의 상태를 해석하고 우주의 미래를 예측하려는 거지?"

  Ice는 깜짝 놀랐다. 지금껏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건 물리학의 범주를 넘어선 일이 아닐까요? 물리학의 목표는 우주의 기본 법칙을 발견하는 것이잖아요. 인류가 지구를 사막화시킨 건 물리학으로 계산해낼 수 없지만 역시 법칙에 따라 진행되었겠죠. 우주의 법칙은 영원히 불변하니까." (『삼체 3부 - 사신의 영생』中)



  『삼체』 마지막 권에 이런 대화가 실렸다. 과학자들의 이 대화를 통해서 독자는 이 책이, 그리고 앞으로 인류가 어떤 이야기를 써나갈지 예측할 수 있다. 우리의 행동에 따라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예측이 가능하면서도 모든 걸 제대로 예측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주는 그야말로 베일에 싸인 신비로운 영역이라는 게 대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건 결코 시시한 말이 아니다. 


  이야기의 막바지에 나오는 '질량의 유실'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말은 우주에 있는 고도의 문명이 소우주를 창조하면 대우주의 질량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폐쇄 상태의 우주가 열리고 무한히 팽창함을 뜻한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가? 그야말로 우주가 다같이 영원한 죽음의 길로 들어선다는 말이다. 이 상태를 그대로 방치하면 우주에는 빅크런치가 일어나지 못한다. 


  빅크런치는 우주 탄생의 대폭발(빅뱅)과 반대로 온 우주가 블랙홀의 특이점과 같이 한 점으로 축소되면서 종말한다는 가설이다. 한 마디로 빅크런치가 있어야만 다음에 우주의 재탄생이 일어날 수 있다. 태양계의 인류는 먼 우주에 존재하는 고도의 문명(삼체 문명도 아니다.) 때문에 멸망하고 우주를 항해하던 은하계의 인류만 새로운 삶을 이어가는 게 이 책의 마지막 내용이다. 윈톈밍에게서 별을 선물받았던 청신은 삼체 문명이 만든 소우주에서 관이판과 함께 삶을 이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소우주의 창조가 대우주의 영원한 죽음을 초래하기 때문에 그녀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관이판과 함께 소우주에서의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게 아니라 다시 대우주로 돌아가 소우주가 대우주에서 가져온 물질을 돌려주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독자는 이러한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삶의 방향(행동, 선택)이 엄청난 긍정의 결과 혹은 반대로 엄청난 부정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 명의 인간이든, 집단이든 인간의 선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의 선택이 후세의 환경과 삶을 변화시킨다. 


  인간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드넓은 우주에서 아주 미미한 존재이지만 삼체나, 다른 고도의 문명만큼 혹은 그들보다 더 발전하게 되면 우주의 이야기를 새로 써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그 누가 제대로 예측할 수 있을까? 소설 속 '지자'조차도 해낼 수 없었던 그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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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3부 : 사신의 영생 - 완결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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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지구에 사는 인류는 문명이 진화하고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더 안락한 삶, 더 자유로운 삶, 더 부유한 삶에 대한 욕망이 커졌다. 원시인이 생존, 그러니까 살아있음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삶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고 한다면 현대 사회의 인간에겐 더욱 다양한 삶의 목적이 있다. 결국 생존이 가장 중요한 삶의 목적임에도 인간은 자주 그리고 오랜 시간 그런 사실을 잊을 때가 있다. 당장 먹을 음식이 없어서, 잠 잘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어떤 존재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상태라서 생존의 가치를 절실하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적어졌다. (물론 우리는 그런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런 사실마저도 잊고는 한다.)


  그런데 평온하게 지내던 인류를 위협하는 존재가 나타났다. 류츠신의 소설인 『삼체』에서 그 존재는 '삼체'라는 행성에 사는 '삼체인'들로 드러난다. 항성인 세 개의 태양을 돌면서 극한의 자연환경을 견뎌내며 진화한 삼체인은 지구인보다 막강한 힘과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언젠가 항성 때문에 자신들의 별이 멸망할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환경이 삼체보다 훨씬 나은 지구를 점령하기로 결정한다. 당연히 인류는 엄청난 위기에 놓이게 된다. 삼체가 지구인들이 물방울이라고 부르게 될 탐측기를 지구의 우주 함대와 지구로 각각 보내고 이후에 전 인류가 삼체 때문에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끔찍한 상황들에 놓이게 되면서 인류는 비로소 절실하게 느낀다. 


  바로 생존의 가치를 말이다. 극한 중에서도 극한의 상황이 살아있음을 유지한다는 게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인지 깨닫게 만든다. 공포와 혼돈, 외로움 속에서 방황하며 지구인들은 깨닫는다. 삶은 끊임없이 힘들지만 분명 소중한 것이라고. 인류는 앞으로 어떤 상황에 놓이게 될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방황하고 절망한다. 그렇지만 아무도 두 손 놓고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살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살아있음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인류는 우주에서 어떤 이야기를 써내려 갈까? 류츠신의 상상력이 바로 그 이야기를 써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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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2부 : 암흑의 숲
류츠신 지음, 허유영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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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류츠신의 『삼체』는 아름다운 문장인 동시에 기막힌 스토리 그 자체다. 이 책은 대부분의 독자가 지닌 상상력을 훌쩍 뛰어넘는 이야기를 품고 있으면서, 인간 정서에 깊이 와 닿는 글을 선보이기도 한다. 좋은 책을 깊게 파고들며 읽을 줄 아는 독자일수록 이 책의 매력을 파내고 또 파낼 수 있겠다. 2권에서는 지구 문명보다 훨씬 막강한 위력을 가진 삼체 문명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인류는 멸종되지 않고 지구에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대비를 한다. 삼체가 지구의 인류와 타협을 할지 태양계에 진입해서 바로 공격을 시작할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은 이미 지구에 사는 인류를 '벌레'로 지칭하며 전혀 존중하지 않는 태도를 보인 바 있다. 


  UN본부에서는 새롭게 '면벽자 프로젝트'를 발표한다. 면벽자는 삼체에 대항하여 전 인류를 구원할 전략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그 계획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을 자를 말한다. 삼체 문명이 보낸 양성자인 '지자(知子)'도 그 계획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삼체 문명은 과학과 기술이 말도 못하게 뛰어나지만 그에 비해서 감성적인 부분은 생존에 적합하지 못하다고 판단하여 거의 말살하다시피 한다. 그들에게는 사랑이나 정(情)이 생존에 방해가 되는 것들이다. 그리고 삼체인은 개인이 하는 생각이 다른 이들에게 그대로 노출이 되기 때문에 기만이나 전략적 계획을 수립하는 것은 인간에 비해 훨씬 뒤떨어진다. 


  리뷰에서 이 책의 스토리를 대략적으로 줄줄 읊기만 해도 즐거운 일이 될 수 있다. 그 정도로 이야기가 신기하고 흥미롭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는 이가 과학적 지식이 높은가, 낮은가, 하는 점은 이 책을 읽는데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면벽자로 선발된 네 명의 인물 중에 핵심 인물로 남을 '그'가 어떤 지혜로써 삼체에 맞서는지 알게 되는 순간 독자는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듯한 느낌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리고 인류가 삼체의 함대와 벌일 최후의 전쟁에 대비하면서 오랜 세월 어떤 일들을 겪게 되는지 그 경로를 차근차근 따라가 보는 일도 참으로 즐겁다. 


  『삼체』를 읽을 때 기억해야 할 점은 과학 기술이 더 많이 앞섰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전쟁에서의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삼체가 보낸 탐측기(함대가 아니라 고작 탐측기가 말이다)인 '물방울'이 지구의 연합 함대를 소수만 남기고 모조리 파괴했을 때, 실제로 벌어진 일이 아닌데도 글을 읽는 동안에 온몸에 소름이 돋을 수밖에 없었다. 지구인의 앞날은 그야말로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쌓아온 그 모든 노력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변하는 순간, 탄식조차 쉽사리 입에서 튀어나올 리가 없다. 


  어서 빨리 3권도 읽고 싶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야기와 아름다운 문장이 또 나를 맞이해 줄 것만 같다. 1권에 이어서 2권을 읽는 동안에도 지루함이나 책에 대한 실망감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좋은 책을 더욱 깊게 파고 들며 읽을 줄 아는 힘이 내게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티끌 만큼의 희망이 있다면 그건 결코 완전한 끝일 수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물론 안타깝게 희생 당한 생명들은 끝을 맛봐야 했지만 인류는 계속 생존과 문명의 발전을 위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현실에서도 『삼체』속 지구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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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1부 : 삼체문제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 자음과모음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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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 느끼고 생각할 수 있어서 알지 못하는 영역에 대해서는 호기심을 넘어서 경외심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예원제'는 지식 수준이 높은 과학자이면서도 삼체 세계를 종교적으로 받아들인 구원파의 일원이었다. 삼체 문명은 지구에서 4광년 떨어져 있는데 거리로 따지면 광활한 우주에서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라고 한다. 물론 지구인의 시간으로는 엄청난 거리겠지만. 삼체인은 지구인보다 높은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에 비해 자연 환경은 지구보다 훨씬 더 혹독하다. 그들에겐 태양이 세 개가 존재하기 때문인데 그로 인해 그들이 겪어야 할 가혹한 환경에 대해서는 리뷰에서 자세히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알 수 없는, 오래도록 알기 힘든 신비로운 영역을 종교적으로 받아들이기 쉽다면 사람은 얼마든지 같은 사람에게서도 '신(神)'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삼체 문명 뿐만이 아니라 아직 사람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투성이다. 삼체 문명에 의해 지구인이 멸종을 당하지 않고 전쟁에서 이긴다면, 또한 아주 긴 시간 동안 지구가 멸망하는 대재앙이 벌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높은 수준의 과학 기술을 보유하고, 지식 수준도 점차 발전할 것이다. 하지만 얼마나 발전해야 사람이 사람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고 신의 영역까지도 넘볼 수 있게 될까. 잘 모르겠다, 가 아니라 전혀 모르겠다. 과학인들과 지식 수준이 상당히 높은 사람들은 짐작을 하고 있을까.

삼체 문명의 '지자(知子) 프로젝트'는 2차원으로 펼쳐진 양성자 두 개를 지구에 보내서 효과적으로 지구인을 통제하려는 전략이다. 양성자는 중성자와 함께 모여 원자핵을 이루며 원자핵은 전자 구름이 둘러싸고 있다. 이것을 통틀어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인 원자로 부른다. 양성자와 같은 미시 입자를 9차원으로 보면 그것은 우주 전체와 맞먹을 정도의 수량과 복잡성을 가진다고 한다. 거시 세계와 마찬가지로 미시 세계도 경이로움 자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해도 우리 눈에 보이는 순간 결코 하찮은 것이 아니게 된다. 이 내용은 sf소설의 일부분이면서도 참으로 시(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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