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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 국내 출간 30주년 기념 특별판
밀란 쿤데라 지음, 이재룡 옮김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품절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VS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 책의 한국에 번역제목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한다. 이 책의 작가 밀란 쿤데라의 창작언어는 체코어였다. <Nesnesitelná lehkost bytí>라는 체코어제목으로 발표되었고, 프랑스인에 의해 프랑스어로 번역된 번역판 제목은 <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être>이다. 영어번역은 <The Unbearable Lightness of Being>이고, 독일어번역은 <Die unerträgliche Leichtigkeit des Seins>이다.
4개 언어 모두 존재의 참을 수 없는(혹은 견딜 수 없는) 가벼움으로 해석되는 것이 더 적합하고 이중의미의 소지를 피하는 번역이다. 왜냐하면 너무도 유명해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란 어구는 '참을 수 없는'이라는 형용어가 '존재'를 꾸며주고 전체적으로 어떠한 '존재'(적 특성을 갖는) 한 존재의 가벼움으로 가장 먼저 해석되기 때문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와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은 다른 의미로 인지된다. 문장구조에서, 대체로, 형용사는 가장 가까이 있는 단어를 수식한다. 이 민음사 판의 홍보에서 제목을 번역할 때, 'Nesnesitelná' (영어 Unbearable)을 '참을 수 없는' 혹은 '견딜 수 없는'으로 번역할지 고민했다고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단어의 어원인 참다와 견디다라는 동사는 비슷한 말로 사전에도 나와있다. 번역자는 저 유사한 의미차이보다 원제목이 갖는 의미를 한국어로 어떻게 번역할지 더 고민해야 하지 않았을까?
이 소설은, 유럽-인도권의 뿌리 깊은 사유주제인, '존재'에 대한 성찰을 하고 있으며, 소설제목에서부터 그것을 잘 드러내고 있다. 소설 속 등장인물로 가벼운 존재와 무거운 존재를 잘 대비시키고 있으며 그러한 한 존재의 특수성이 다른 존재의 특수성으로 인해서 변화해가는 구조로 전개된다. 아마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제목을 알거나 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라는 시구 같은 어구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으리라고 믿는다. 또한 이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지금도 소설과 영화 모두 한국인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 같다.
나는 한 시절, 이 시구같은 말을 자주 음미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 한국어 번역으로 나에게 밀란 쿤데라(와 그가 담겨있는 유럽-인도)의 사유가 정확하게 도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늘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대체 어떠한 존재(혹은 존재자)이길래, 참을 수가 없는 걸까? 참을 수 없는 존재라면 곧 가벼운 존재이겠구나...' 하지만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번역되었더라면 나는, 분명, 다음처럼 생각해왔을 것이다. '대체 어떠한 존재(혹은 존재자)이길래, 참을 수 없도록 가벼운 걸까?', '어떠한 존재를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다고 말하는가, 말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나아가 무거운 존재란 어떤 존재인가?' 등등. 이 두 가지 한국어번역의 차이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이 두 번역들의 차이로 확장되어 사유되는 것들이 달라진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