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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
마크 피셔 지음, 서희정 옮김 / 토트 / 2013년 1월
평점 :
마크 피셔.
'부'와 '행복'에 관한 지혜와 새로운 패러다임을 전하며 25개 언어로 번역되어 2백만 부 이상 판매된 책 [게으른 백만장자] 의 저자이다.
저술과 강의를 하고 있는 그의 직업을 표현한 첫 마디는 '동기부여'와 '자기계발' 전문가.
말끔한 저자 이력이 책을 읽다가도 궁금해져 다시 읽기를 여러 번 했다. 그의 다른 책은 읽어보지 못해서 더욱 궁금해지는 목록들, 그 중 [인생의 고난에 고개숙이지 마라]는 제목이 원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다.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그렇듯 같은 패턴의 내용일지라도 그걸 읽음으로서 내 자신에게 힘을 줄 수 있다면 나는 흥미진진한 SF공상과학소설이나 판타지, 혹은 스릴러를 집어드는 대신 기꺼이 그 상투적인 독서를 선택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읽기 시작하면서 저자의 이력을 종종 잊을 정도로 틀에 박힌 자기계발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특별히 강조한 두꺼운 글씨체의 서문도, 부제도 없었을 뿐더러 페이지를 몇 장씩 할애해 '네게 각인시키고 말겠어~' 하는 듯한 의지의 단원 나누기도 없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죽마고우 둘과 만나는 그의 이야기가 담담히 펼쳐질 뿐. '녀석들'의 멤버인 소중한 친구 시몬과 폴. 친구들과의 추억과 현재를 오가며 사람 사는 이야기를 조금씩 조금씩 펼쳐놓는 그의 이야기에는 마법같은 편안함이 있어서 가랑비에 옷이 젖는다는 표현이 생각날만큼 서서히, 그리고 촘촘히 동화되어간다.
자신의 직업에 극단적인 회의를 느끼고 삶의 공허함에 무력해져버린 친구 폴을 위해 편지를 쓰기로 한 마크. 구시대적이고 오글거리기까지하는 시작은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의 깊이기 더해지면서 웃음따위는 사라졌다. 마치 내가 그의 편지를 받는 폴이 된 듯,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며 친구의 가상한 노력이 담긴 이메일을 클릭해보는 기분을 갖게했다. '과연 되겠어?' '이메일 따위로 인생을 대하는 감정이 쉽게 변할리 없어!' 라는 불안에 찬 확신이 있었던 반면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변화를 바라는 폴의 떨리는 작은 희망도 반딧불이의 가냘픈 빛마냥 존재했다. 내가 그랬듯, 네 노력은 소용이 없었노라고 미안하다고 가차없는 일격을 가한 폴에게도 분명 같은 감정이었을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도움을 청하는 가녀린 영혼들이면서도 동시에 그 누구의 손도 쳐내버리는 아집덩어리들인 인간이기에.
자신의 이야기와 친구,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각종 예를 곁들여 풀어낸 마크의 편지에는 볼테르, 톨레,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 프라이데이와의 심오한 대화, 프로이트와 플라톤이 인용되고 어린왕자와 여우, 그리고 꽃 등의 다양한 문학 작품과 영화, 음악이 흐른다. 읽을 수록 빠져드는 놀라운 세계가 활짝 펼쳐지니 책을 중간에 덮기가 어찌나 힘이 들던지!
칼리오스트로 백작, 세기의 연금술사- 그의 존재를 이 책을 보면서 처음 알게되었는데 그 의미심장한 연설문에 놀라움을 터뜨렸다. 이러한 감탄은 위대한 철학자 데카르트가 고백하듯 밝힌 자신의 형이상적인 명상법이나 소크라테스가 알고 있었다던 효과적인 기도법으로 시공간을 초월하며 이어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돌다리를 건너듯 명상과 깨달음에 대해 살며시 문을 열고 불교신자들이 말한다는 '입류과','쿤달리니 각성', '수행'이나 '성자의 흐름에 들어갔다' 라는 현상에 대해 세세하게 묘사한 마크의 경험담을 만나게 되었다. 거부감 없이 읽고 있는 상태인 내 자신의 차분한 상태에 대해, 그렇게 만들어준 이 책에 대해 신기해하면서 저자가 말하듯 누구나 깨달음의 경험을 할 수 있다면- 물론 노력에 의해서- 세상을 보는 시각과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자세나 삶을 살아가는 태도가 얼마나 달라질지 상상만 해봐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수행을 시작하라는 저자의 제안이 매혹적이면서도 머뭇거리게 하는 것은 속세의 시달린 탓일까? 어제 우연히 TV 과학 프로를 보면서 인간의 뇌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주저없이 꾀를 부려 '할 수 없는 이유'를 만들어낸다는 연구결과를 접한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기엔 나이가 많다며 당당하게 내놓는 이유가 60대에 대작을 완성시킨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빅토르 위고- 요즘 우리가 열광하는 '레미제라블'의 작가가 아닌가!- 들 앞에서 무색해지는 것 역시 마찬가지.
그저 상처받은 마음과 힘을 잃은 정신에 소소한 위로와 위안이 되어준다면 그것으로도 족하다 싶었지만 책에 담긴 진심을 마주하고 기대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얻었다. 나아갈 방향과 해야할 일들, 생각할 화두와 고쳐야할 자세까지- 나를 소중히 아끼는 사랑하는 친구로부터 받는 애정어린 응원에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따뜻함을 느꼈다.
그래, '고단한 삶에 지친 당신에게' 전하고 싶다.
불행의 탈을 쓴 행복을 알아보는 눈을 갖자고, 서로의 어깨를 받쳐주며 힘을 내어 살아가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