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빵의 위로
구현정 지음 / 예담 / 2013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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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플 때 보면 딱이겠다며 몇 장 읽고 아껴두기를 반복했었는데

일찍 나가야하는 일요에 접어들어 이렇게 탐닉하듯 완독할 줄은 미처 몰랐다.

-_- 이 새벽에. 피곤한 눈이 떨리고 무거운것을 감지하면서도 맑은 정신으로.

단순히 빵의 종류와 먹는 얘기를 하는 책이 아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9년의 독일 생활은 귀국 후 상상도 못했던 지독한 향수병으로 이끌었고 그 처방전으로 나는 유럽에 대한 각종 매체의 보도를 외면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독일에 대한 영상이나 보도가 있으면 반가운 마음에 나를 부르는 건 엄마, 그리고 씁쓸한 미소로 얼른 돌아나오는 나를 이상타 여기셨을테지..

내가 가진 절대적 그리움은 채 누리지 못한 젊음의 고국이었기에 반대로 그 외롭고 서늘했던 회색빛 독일이 이토록 생생하게 새겨져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어떤 음율이 흐르고, 혹은 문득 기억을 소환하는 향기가 다가오면 여지없이 생각나는 그 곳의 순간들, 추억들은 아리고도 달콤하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이 책의 저자가 서두에 묘사하는 아침풍경과 꼭 닮은 나의 아침이 있다.

처음에는 늦잠자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실행에 옮겼던 빵집으로의 발길, 춥고 스산한 아침이 피하고만 싶었는데 몇 블럭 걸어가면 맞아주었던 따뜻한 불빛의 빵집이 마치 아침 식탁앞에 앉은 어린 날의 기분처럼 포근해서 눈을 비비며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나섰더랬다. 당시 빵집에 다녀오면서 블로그에 쓴 글도 기억난다. ㅎㅎ 약간 사시었던 아주머님께서는 유독 친절하게 해주셨는데 ㅎㅎ 내가 고른 크루아상의 크기가 조금 작다 싶으면 하나를 슬쩍 더 넣어주시곤 했었다. 그럼 그 날은 운이 좋은 날, 기분 좋은 미소를 한껏 걸고 집으로 가는 길엔 이미 말짱하게 깬 정신으로 룰루랄라~ ㅎㅎ 단순하고 소박하고 순진한 수연아- 그 때가 지금은 눈물나게 그립다. 그리고 그 분, 그 빵집의 어머니들이 건강히 잘 계시는지 안부를 궁금해하곤 한다. 내 유학생활의 마무리를 따스하게 해주셨던 고마운 분들.. 그래서 이 책 [유럽, 빵의 위로]가 더욱 마음에 와닿는다.

저자 구현정이 남편과 함께 한 4년여간의 독일 생활 중 독일과 유럽 등지에서 맛본 각종 빵들을 그 유래와 맛, 그리고 함께한 사람들과 장소, 추억을 더해 맛깔스럽게 버무려 낸 책이다. 그 솜씨가 어찌나 빼어난지 책을 읽는 동안 순간 순간 그 곳에 그녀와 함께 발걸음을 하고 햇볕을 쬐고 카페에 앉아 쿠흔다메를 마주하는 설레임을 느껴볼 수 있었다. 조용히 다가와 단단히 내걸린 마음의 빗장을 열어준 그녀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낸다.

 

유일하게 나와 다른 취향, 혹은 기억을 가진 부분이 있다면 바로 슈네발, 올 겨울을 격하게 뒤흔든 독일의 과자.

예쁜 생김새와 고유한 희귀, 특수성에 반해 로텐부륵에서 맛보았던 동그란 눈송이 과자는 -_- 정말 별로였다.

기름맛이 가득한 밀가루 과자 + 내게는 너무도 단 설탕옷이 어찌나 부담스럽던지.

크기 또한 만만치 않아서 하나를 다 소화하지 못했더랬다. 내가. 이 빵순이가, 과자라면 아삭아삭 오독오독 24시간 full로 달릴 수 있는 내가. - !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그것도 백화점에서 줄세워가며 파는 슈네발에 시큰둥할 수 있었고 그놈의 나무망치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한 쪽 눈썹 치켜세우며 이상타 여겼었는데 추운 겨울에 만화책 읽으면서 바구니 하나 가득차게 깨서 오도독 거렸을 그녀의 추억과 만나자 다시 한 번 맛봐야하는지 고민하게끔 하였다. ㅎㅎ 마카롱의 추억을 떠올리는 저자에 동의한다. 같은 브랜드의 같은 음식일지라도 그 맛을 좌우하는 것은 함께하는 사람, 그리고 내 삶을 채우고 있는 순간의 상황.  

 

그래서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그 곳이 어디든,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이불에서 나를 일으켜세울 멋진 빵집을 만나기를.

아침의 공기와 마주하기를 주저하지 않을만큼 유혹적인 그 곳에는 이른 새벽을 열고 포근한 마음을 나누어주는 빵집 아주머니가 계시기를.

그리고 내가 나서기 전에 나를 위해 눈을 비비며 갓 구어진 빵을 종이봉투에 소담스레 담아올 그를 만나기를. :)

 

 

***

구현정님.

4년 지낸 당신에게 훨씬 오래 있었던 내가 얼마나 감탄했는지 모릅니다.

글에서 보이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당신이 얼마나 따뜻하고 친화적인-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엿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그 곳의 빵 뿐만 아니라 나에게 마음을 열어주었던 소중한 이들이 생각났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모든 부분에서 늦되다 느끼는 내 모습에 독일에서 고스란히 보낸 빛나는 20대를 헛되이 흘려보낸것인지 고민하고 한탄했던 생각을 이 책을 보면서 바로잡을 수 있어서 참 고맙습니다.

사랑과 행복이 가득하시기를 2013년 서울의 남쪽에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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