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렇게 사랑하고야 만다 (리커버)
고수리 지음 / 수오서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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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딱 받고 들었던 생각은 표지와 제목하고 찰떡이구나! 하는 1차원적인 생각이었다. 종이책 출판사에서 일했던 시절의 가졌던 직업병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두께 괜찮네, 판형도 좋다, 내지 디자인도 잘하셨네. 그곳에서 딱히 배운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마냥 불행했다고 여기던 순간이 소중하게 남았다는 깨닫곤 한다.

난 그 세월을 후회했다. 배운 것 없이 미운 말만 잔뜩 들었고 자존감이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그 사람들의 말은 파도처럼 내 마음을 무너뜨렸다. 할 수 있는 건 부서진 마음을 부여잡고 새로운 출발선을 찾는 것이었다.

약 8개월 정도 되는 세월이 쓸모없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아무리 순간들이 모여 길이 된다고 하지만 겨우 그딴 시간들이 길이 될 리 없다고도 여겼던 것도 같다. 뭔가를 얻으러 들어갔는데, 나올 때 손안에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남은 건 내 노력을 부끄럽다 매도하던 매섭고 천박한 말이었다. 그 상처는 아직까지도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깊게 내 마음에 박혔다.

아예 다른 바닥으로 떠날까도 생각했지만 평생 글이 아닌 곳을 가겠다고 진심으로 다짐했던 적은 없었다. 헤매다가 비슷한 길로 접어 들었고 그때 1년도 안 되는 경력이 도움이 되었다. 그곳에서도 입에 담기도 싫은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신입이 감당하기에 벅찬 업무를 담당했지만, 결국 나한테 도움이 되었다. 현재 나는 3년 차 웹소설 PD가 되었다. 내가 그토록 원하던 '경력직 편집자'가 된 것이다.

책 리뷰에서 내 얘기를 길게 얘기한 것은 책과 내 삶을 연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저자의 삶의 여러 순간을 담고 있는데, 이는 모두 하나의 말로 이어지는 듯했다. '삶의 순간은 길이 된다.'

그때 나는 길을 찾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그냥 걸어가는 것이 내가 할 일, 내가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략)

어느 길이든 때마다 내가 선택한 방향으로 나의 속도로 걷는다. 걷다가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길게 이어진 나의 발자국이 나의 길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그때야 알게 되겠지. 우리의 지난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나는 그녀들에게 마음을 보냈다. 그렇게 계속 걸어가.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159쪽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의 길을 찾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가 말하길 연기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걱정하기에 나는 하라고, 해도 괜찮다고 응원했다. 네가 언제 도전하든 날 널 응원하겠다고. 그렇게 말한 이유는 의지를 갖고 마음이 향하는 곳을 가다 보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 밑거름이 된다는 걸 이제는 알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하든 그 일을 소중히 하고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빛을 발한다는 걸 안다.

쳇바퀴 같은 삶은 산다고 많이들 이야기한다. 그런데 내가 개복치 유리멘탈인지는 몰라도 나는 하루도 똑같은 날이 없다. 매일이 스펙타클하다. 그러다 보니 그저 하루가 무탈히만 지나가도 오늘 하루도 무사히 보내게 해서 감사하다고 기도하곤 한다.

우리의 삶은 뜻밖에 운이 좋은 날보다 행복하지 아니한 날들이 훨씬 많다. 자잘하게 불행하고, 지루하게 평범한 날들이 이어진다. 그래도 갑자기 파리 떼가 들이닥치거나 하지 않는 오늘이 얼마나 평온한 날인지.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매일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파리 이야기, 178쪽

그날 하루 좀 힘들어도 '오늘 하루는 잔잔하게 흘러갔다. 파도 없이.'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겉으로 보면 똑같아 보이는 일상도 훗날 봤을 때는 하루도 빼놓아서는 안 되는 나의 지반이 된다. 굳이 나를 타인과 비교하며 불행을 곱씹지 않는 이유이다. 남들이 얼마나 잘 사고, 어떻게 살든 내 하루가 평온하고 행복했으면 됐지 뭐. 그러다가 달디단 성취를 맛보면 좋은 거니까.

공감가서 슬프고, 몽글몽글해서 기분 좋은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내가 걸어왔던 길을 곱씹게 된다. 내 삶도 그렇다. 공감가서 슬프고 몽글몽글해서 기분이 좋다. 우리의 삶은 이토록 공감과 공감이 이어져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한다. 내가 책을 놓지 못하는 이유이다.

#수오서재 #고수리 #에세이추천 #힐링에세이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 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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