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취직은 2018년도였다. 20대 초중반에 걸쳐 있던 나이.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
거의 딱 1시간 반이 걸리는 어마어마한 거리였지만 내게 기회만 주어진다면 나도 이 회사에서 노련한 경력직 직원이 되고 싶었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건 대략 6개월 좀 넘었을 때였다. 잠깐 내려오라 하기에 칭찬이라도 해주시려나 하고 따라갔다. 그 당시 난 회사를 위해서 퇴근 이후에도 노력했고 그게 업무에도 드러났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칭찬이 아니라 훈계였다. 장장 30분 넘게 네가 어떤 걸 못 하는지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회사 대표님은 나보고 어디서 그런 노력하고 있다고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취직 전에 해야 할 일을 지금 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라고. 이후에는 나보고 다른 직업이 맞지 않겠냐고 했고, 사수는 왜 이렇게 실력이 부족해서 자기를 힘들게 하냐고 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고 얘기하니 너랑 비슷한 경력의 다른 직원은 안 그랬다고 하셨다. 난 결국 말을 삼켰다.
난 여우 같지 못했고 그 모든 말들을 방어막 없이 감내해야 했다. 대표님은 어느 날 나보고 수박을 사와 그걸 썰라고 말씀하셨다.
껍질도 두꺼운 수박. 사과였다면 어찌저찌 해보겠는데 그 커다란 수박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내가 낑낑대고 있자 다가와서는 "과일을 잘 써는 것도 사회 생활"이라고 하셨다.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수박은 컸고 대표님께 찾아가 수박 하나를 다 썰어야 하는지 여쭈었다. 그러니 "사무실에 있는 사람 수를 세어 봐라."라고 핀잔이 날아왔다.
한 책상에 모여 앉아 수박을 먹는데 당연히 목구멍에 넘어갈 리 없었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다 먹은 대표님이 휴지를 쟁반 위로 던지며 "OO 씨, 이거 치워." 라고 하셨다.
그날 1층으로 내려와 주저앉아 울면서 아빠한테 전화했다. 도저히 못하겠다고. 그렇게 난 대략 두 달 뒤 퇴사했던 거 같다.
사적인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그 당시를 생각하면 답답하기 때문이다. 난 그 모든 게 가스라이팅이라는 걸 꿈에도 몰랐다. 신입인 나는 내가 진짜 여기에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지금이라면 노동청에 고발은 못하더라도 내가 문제가 아니라 당신들이 문제라고 한 마디는 하고 퇴사했을 것을.
가스라이팅이라는 건 되게 은밀하게 진행된다. 잘 알지 못하면 설령 대놓고 드러내도 그게 가스라이팅이라는 걸 알기가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