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 - 당신을 심리적으로 지배하고 조종하는 사람에게서 벗어나는 방법
스테파니 몰턴 사키스 지음, 이진 옮김 / 수오서재 / 202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첫 취직은 2018년도였다. 20대 초중반에 걸쳐 있던 나이. 설레고 긴장되는 마음으로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

거의 딱 1시간 반이 걸리는 어마어마한 거리였지만 내게 기회만 주어진다면 나도 이 회사에서 노련한 경력직 직원이 되고 싶었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건 대략 6개월 좀 넘었을 때였다. 잠깐 내려오라 하기에 칭찬이라도 해주시려나 하고 따라갔다. 그 당시 난 회사를 위해서 퇴근 이후에도 노력했고 그게 업무에도 드러났을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기대와 달리 칭찬이 아니라 훈계였다. 장장 30분 넘게 네가 어떤 걸 못 하는지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회사 대표님은 나보고 어디서 그런 노력하고 있다고 얘기하지 말라고 했다. 취직 전에 해야 할 일을 지금 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라고. 이후에는 나보고 다른 직업이 맞지 않겠냐고 했고, 사수는 왜 이렇게 실력이 부족해서 자기를 힘들게 하냐고 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고 얘기하니 너랑 비슷한 경력의 다른 직원은 안 그랬다고 하셨다. 난 결국 말을 삼켰다.

난 여우 같지 못했고 그 모든 말들을 방어막 없이 감내해야 했다. 대표님은 어느 날 나보고 수박을 사와 그걸 썰라고 말씀하셨다.

껍질도 두꺼운 수박. 사과였다면 어찌저찌 해보겠는데 그 커다란 수박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내가 낑낑대고 있자 다가와서는 "과일을 잘 써는 것도 사회 생활"이라고 하셨다. 불과 3년 전의 일이다.

수박은 컸고 대표님께 찾아가 수박 하나를 다 썰어야 하는지 여쭈었다. 그러니 "사무실에 있는 사람 수를 세어 봐라."라고 핀잔이 날아왔다.

한 책상에 모여 앉아 수박을 먹는데 당연히 목구멍에 넘어갈 리 없었다. 먹는 둥 마는 둥 하는데 다 먹은 대표님이 휴지를 쟁반 위로 던지며 "OO 씨, 이거 치워." 라고 하셨다.

그날 1층으로 내려와 주저앉아 울면서 아빠한테 전화했다. 도저히 못하겠다고. 그렇게 난 대략 두 달 뒤 퇴사했던 거 같다.

사적인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는 그 당시를 생각하면 답답하기 때문이다. 난 그 모든 게 가스라이팅이라는 걸 꿈에도 몰랐다. 신입인 나는 내가 진짜 여기에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지금이라면 노동청에 고발은 못하더라도 내가 문제가 아니라 당신들이 문제라고 한 마디는 하고 퇴사했을 것을.

가스라이팅이라는 건 되게 은밀하게 진행된다. 잘 알지 못하면 설령 대놓고 드러내도 그게 가스라이팅이라는 걸 알기가 쉽지 않다.

직장에서 매번 당신의 실적을 가로채는 팀의 동료이고, 왜 자기 집 앞에 쓰레기를 버리냐며

당신에게 욕을 하는 이웃집 사람이며, 자신의 실수를 절대 인정하지 않는 정치인이고,

전부 다 당신이 자초한 일이라며 당신을 괴롭히는 바로 그 사람이다.

-서문, 9쪽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라면 첫 페이지부터 그 회사들이 떠오를 것이다. 가스라이팅을 하는 사람은 정말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가스라이터들의 괴롭힘은 너무도 절묘하다.

그들은 당신이 괴로워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그러나 증명하기엔 불충분할 정도로만 괴롭힌다.

-직장 내 가스라이팅, 117쪽

이거 정말 진짜다. 배운 사람들이 더 하다고, 이런 사람들의 특징이 뭣 모르는 신입들을 데려와 심리적으로 통제하고 자존감을 깎아내린다. 나 같이 순진무구하고 곰 같은 사람들은 그냥 당하고 마는 것이다. 지금이라면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매일매일 기록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다 녹음했을 것이다.

그들은 정말 철두철미하다. '내가 얘를 괴롭히고 있습니다요!'라고 광고하지 않는다. 그들은 겉으로 지식인인 척하고, 깨어있는 척하며 당하는 사람을 오히려 게으르고 부족하고 무능한 사람으로 몰아간다. 그런데 정작 진짜로 그런 사람은 소중한 인력을 짓밟는 바로 그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이제 갓 취직을 했거나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 꼭 권하고 싶다. 세월이 흐르면 이제 와 따지기도 애매해진다. 이미 완전히 끊어져 버린 연인데 굳이 더러운 걸 내 손에 묻히고 싶지 않아진다.

그 사람들의 말대로 난 무능한 사람이었을까? 아니었다. 난 지금 거기보다 몇 배는 더 큰 회사를 다니며 연봉도 그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받고 있다. 여느 대기업만큼 받지는 않아도 적어도 그런 곳보다는 훨씬 돈도 많이 주고 복지 좋은 곳에 다닌다. 과일을 썰라는 곳이 아니라 그런 다과들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곳을 다닌다.

아직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사무친다. 지금도 종종 자기 전에 그때를 생각했다. 그때 참 힘들었지 하면서.

사무친다. 난 이 단어를 가스라이팅으로 뼛속까지 체감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얼굴 모르는 당신이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그 시절은 나에게 너무 상처였다.

그래서 당신은 그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가스라이팅 #수오서재 #책추천 #직딩 #취준생



댓글(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선정이 2021-12-14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장님이 진짜 양아치네요. 고생하셨겠습니다 ㅠ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