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하 식당의 밤
사다 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토마토출판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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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학원이 즐비한 우리 동네에는 딱히 '고유의 장소'라고 할 곳이 없다. 교재를 파는 동네서점은 있지만 그 외 카페나 가게는 대개 프렌차이즈 뿐이다. 그래서 주변에서 동네에 괜찮은 카페나 가게가 생겼다고 하면 꽤 부러워하곤 했다. 우리 동네에도 그런 고유의 장소가 생기면 좋으련만. 살기 편한 동네이기는 하지만 나만의 장소처럼 아늑한 곳은 딱히 없다. 그러다 보니 특이한 카페나 가게, 독립서점은 지하철을 타고 다른 동네로 이동해야만 들릴 수 있다.

그런데 우연히 도쿄 변두리에 자리한 한 가게를 발견했다. 바로 <은하 식당의 밤>이라는 책을 통해서. 도쿄 요쓰기 일번가 한복판의 자리한 은하 식당은 카운터 석만 있는 선술집이지만 다양한 술과 안주, 그리고 은하 식당만의 포근한 분위기로 동네 주민들의 단골집이 된다. 거의 매일을 서로 얼굴을 보다 보니 점점 더 상대에게 정이 들어가는 동네 주민들.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한 할머니의 씁쓸한 고독사로 시작한다. 이 문장만 들으면 사회 비판하는 소설로 느껴질 수 있지만, 사실 할머니의 죽음은 아주 오래 전 한 영화에서 시작된다. 풋풋한 첫사랑부터 씁쓸하고 잔혹한 현실의 뒷면을 다룬 이 이야기를 통해 초중학교 동창인 테루, 헤로시, 붐은 말 한 번 나누어 보지 않은 그녀의 마음에 공감한다. 떨어져 있었지만 사실은 줄곧 함께 했던 연인의 끝. 둘이 함께한 <첫사랑 연인의 동반 자살>이라는 영화는 어쩌면 그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결말을 뜻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다소 상투적인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은하 식당의 분위기와 감미롭게 어우러져 더욱 기억에 남는 이야기였다.

다만 다른 단편들 중에서는 조금 아쉬운 부분들이 있었다. 먼저 2편인 <매달 배달되는 돈 봉투>는 마치 피해자에게 용서를 강요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사실 피해자가 관용을 베풀고 용서를 하는 건 절대로 누군가가 먼저 요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다나카는 자신의 죄를 조금이라도 갚고자 매달 돈을 보냈는데, 피해자가 거절했음에도 계속 보내는 건 일종의 폭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피해자인 시노가 용서하고 그의 손녀인 요시노가 다나카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은 아름답다고 하지 않을 부분은 아니지만 '용서'에 대한 좀 더 깊은 고찰이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4편의 <서투른 사랑>은 어린 연인의 계획 없는 사랑에 별로 공감이 가지 않았다(특히 게이코가 일부러 돈을 통장에서 다 빼서 마사미가 훔쳐가기 쉽게 놓는 장면은 더욱 더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이다). 이야기의 결말도 그다지 감동을 주지 못했다.

5편 <요괴 고양이 삐이>의 경우 재즈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다도 오카다 선생이 자신의 오빠 데츠타로가 살아생전 마지막으로 들었던 음악을 찾아달라고 가스오에게 의뢰하는 내용이다. 음악을 찾아가는 과정은 좋았다. 괴담 느낌이 물씬 풍겨서 좋았고. 다만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루고 있고, 데츠타로가 전쟁(특히 가미카제)에 참여하는 군인이다보니 전쟁 미화가 좀 있는 편이다. 역사에 예민한 편이라면 솔직히 말해 이 편은 보지 않고 넘어가는 것도 좋을 거 같다. 개인적으로 제일 기대했던 편이었기에 제일 아쉬웠던 단편이었다.



1편 <첫사랑 연인의 동반 자살>, 3편<지독하게 운 없는 남자>와 함께 마음에 드는 편은 은하 식당 마스터의 이야기를 담은 5편 <첼로 켜는 술고래>이다. 마스터가 줄곧 신비로움을 품고 있다 보니 읽으면서 더욱 즐거웠던 편이었다. 다만 이 이야기에도 마치 불륜을 너무 쉽게 넘어가는 느낌이라 그 점이 걸렸다. 불편한 부분을 덜어내고 충분히 더 감성적이고 위로가 되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미소 된장국처럼 담백한 맛을 지닌 소설이라는 것. 편하게 읽고 싶은 일본 소설이 끌리는 날에는 은하 식당에 찾아가보자.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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