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곡된 한국 외로운 한국 - 300년 동안 유럽이 본 한국
이지은 지음 / 책세상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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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문학자인 저자는 독일의 여러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관련 각종 저서와 신문기사를 조사하고 섭렵한 것을 바탕으로 1655년부터 1910년에 이르기까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조선"이라는 국가가 독일인들 더 나아가서는 유럽이라는 문화권에 어떻게 각인되고 기억되었는가를 살피고 있다. 동아시아의 각 국(주로 일본, 중국)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교류가 활발하지 않았던 조선은 유럽인들에게 있어서 말 그대로 정보의 불모지였던만큼 간접적인 경로(주로 중국에 파견되었던 선교사들. 마테오 리치, 아담 샬, 마르티노 마르티니 등이 대표적이다)를 통해서 전해진 정보를 토대로 상상되고 그려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물론 헨드릭 하멜 같이 조선에 표류해서 한동안 생활을 하다가 조선을 탈출하여 유럽으로 돌아가 그네의 경험을 정리한 경우라든지, 아담 샬이 소현세자와 교류를 나누었다는 경우도 있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 경험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교류라는 관점에서 보았을 때 지속성을 띠지 못했고, 일시적이었다는 점에서 그네들이 기본적으로 유럽이 아닌 국가들에 대해서 가지고 있었던 인식이나 관점을 바꾸지는 못했다.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많은 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유럽이 지중해 세계를 넘어서 신항로를 개척하고 팽창하기 시작한 무렵부터 제국주의가 판을 치고 있던 시기에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서구인들이 형성해 온 오리엔탈리즘의 시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저자는 에드워드 사이드와 미셸 푸코의 주요 개념들을 차용해서 유럽인(특히 독일인)들이 그동안 조선에 대한 이미지를 어떻게 누적시키고 확장해 왔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선행하여 작성된 각종 여행기나 기록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그리고 인쇄술의 대량 보급 능력에 힘입어 많은 이들에게 보급되어 가는 가운데 "조선"에 대한 이미지가 어떻게 첨삭되고 확장되어 나갔는지는 조선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식인악어"라든지 그네들의 경제적 욕구를 자극하는 금을 비롯한 각종 광물의 과대포장된 소문 등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바이다.

 개항과 더불어 통상조약을 체결한 이후 조선에 들어와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닐 수 있게 된 서구인들은 자신들이 직접 경험한 바를 토대로 그동안 기록을 통해서 전해온 조선에 대한 기록들에 허황된 점도 적지 않았다는 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하지만 "서구 = 문명", "조선 = 야만, 미개"의 기본적인 인식의 틀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조선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동정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멸시하는 감정을 숨기지 않았고, 그러한 것들은 그네들이 남긴 각종 기록을 통해서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조선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기록과 사진을 남긴 서양인들을 통해서 우리는 잊고 있었던 과거의 역사의 단면을 복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어느 정도 사료의 가치는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료로서의 가치를 갖는 것과 동시에 좀더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있기에 그것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서구인들이 조선을 여행하면서 남긴 각종 기록에는 그 당시 그네들이 뿌리 깊게 가지고 있었던 조선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이 반영되어 있는 만큼 접근과 활용에 있어서 주의가 필요하다. 관찰자로서 제3자가 동시대를 기록한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역사적 기록으로써의 가치를 가짐과 동시에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편파성으로 인하여 후세에 이를 접하는 이들에 대하여 역사에 대한 기억을 왜곡하고 그릇된 인식을 선점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를 "역사적 기억의 선점"이라고 표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서구인 중심의 "역사적 기억의 선점"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욱 확산되고, 그 층위가 두터워지고 단단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에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널리 유포되고 확산된 다음에서야 그것이 갖는 문제점을 의식하고 하나 하나 바로 잡아나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곡된 한국 외로운 한국>에서는 유럽인들이 그동안 서구 우월의 세계관 아래서 조선을 얼마나 왜곡하고 호도했는가를 여러 자료를 통해서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적지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았을 때 그동안 여러 서구인들이 조선에 대해서 인식상 폭력을 가해왔다는 점을 역사적 사료를 토대로 체계적으로 밝혀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편견과 오류가 가득한 기억과 인식의 역사적 층위를 치밀하게 밝혀내는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그러한 것들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은 성과가 있다고 보긴 어렵기 때문이다. 조선 혹은 한국에 대해서 왜곡되고 부정적으로 잡혀 있는 인식이나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서는 한국의 역사와 문화에 내재되어 있는 다양성과 역동성을 외국의 언어를 통해서 널리 소개하고 보급하는 과정이 상호 교류를 통해서 부단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드였는가도 신경을 써야 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 왔는가에 대해서 남들에게 어떻게 표현하고 알리고자 노력했는가에 있는 것 아니겠는가? 서로에 대한 인식은 결코 일방성을 띠어서는 아니되고, 상호 간의 지속적인 소통과 교류를 통해서만이 깊어질 수 있는 것이며, 오해나 그릇된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외국인들의 여러 조선 견문기를 읽으면서 한 번 더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부분은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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