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방 동문선 문예신서 326
롤랑 바르트 지음, 김웅권 옮김 / 동문선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수잔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라는 책이 많이 생각났다. 수잔 손택은 타인의 고통을 이미지로서는 말할 수 있는 한계점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의 포화상태에서는 이미 주어진 이미지를 뛰어넘는 이미지를 필요로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수잔 손택은 사진의 기능을 옹호하기도 했지만 그 기술주의를 경계했다. 롤랑 바르트도 그와 비슷한 맥락에서 사진은 사진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 채 지시하고 있는 대상만 남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롤랑 바르트도 이 책에서 사진의 본질에 대해서 고민한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사고하는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래서 그가 이를 설명하고자 하는 개념으로 스투디움과 푼크툼이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이는 문학의 개념에서도 종종 사용된다.) 스투디움은 평면적인 것을 말한다면, 푼크툼은 입체적인 것을 말한다. 

  그것은 스투디움(studium)인데, 이것은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연구'를 의미하지 않고 어떤 것에 대한 전념, 누군가에 대한 애정, 열정적이지만 특별히 격렬하지는 않은 일반적인 정신집중을 의미한다.(p.42) 

  푼크툼은 사진 안에서 나를 찌르는(뿐만 아니라 나에게 상처를 주고 완력을 쓰는) 그 우연이다. (p.42)

  스투디움이 일반적으로 우리들에게 호소하는 사진의 메시지이다. 그래서 이러한 스투디움이 일으키는 사진들이 대부분이지만, 푼크툼을 일으키는 사진들이 그에게 와닿는다고 한다.(나는 표현적 언어와 비평적 언어라는 두 언어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주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어떠한 사진에서 역사적 사실이나 상황보다는 세부적인 것에 관심을 가진다. 이러한 행위위에는 그가 포스트구조주의자였다는 사실을 망각할 수 없다.

   바르트는 초기의 자신의 기호학에서 기포/기의의 의미화과정을 설명하면서 3차적 의미화 과정, 즉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믿음이나 가치, 태도 등을 신화라고 불렀다. 신화는 지배적인 이데올로기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도 인물사진들을 신화의 창조라고 설명하는 것으로 보아서 그것을 경계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사진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포즈를 취하게 만드며, 욕망을 일으키기 때문에 경계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사진을 죽음과 동일시 하고 있다. 그래서 사진의 기원을 회화보다는 연극에서 찾고 있는데, 사진은 원시 연극과 같으며, 활인화와 같고, 부동의 분칠한 얼굴의 형상화, 우리에게 사자들을 드러내는 그 형상화라고 한다.  

  투케(tuche)는 자유의 개입없이는 이해될 수 없는 '순수한 우연' '만남의 진정한 우연'으로 불확실하고 예측 불허하며 불규칙한 것에 속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투레를 아우토마톤(automaton)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했는데, 후자는 자연의 우발적 사건들처럼 자연발생적으로 생선되는 것으로, 필연성 속에 속하는 것을 말한다. 

  사진들은 우연적이기 때문에(이렇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진은 마스크를 씀으로써만 의미를 띨 수 있다고 한다. 마스크는 하나의 얼굴을 한 사회와 이 사회의 역사가 낳은 산물로 만들어 주는 것을 지칭하기 위해 칼비노가 사용하는 낱말이지만, 얼굴 또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다. 

  카프카가 "사람들이 어떤 것들을 사진 찍는 것은 그것들을 정신에서 몰아내기 위해서이다. 나의 이야기들은 눈을 감는 하나의 방식이다." 라고 했을 때, 푼크툼이란 코드화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 그는 사진이 포르노적인 사진보다는 에로틱한 사진(즉, 환유적인 사진)이 욕망의 적절한 순간, 즉 카이로스(kairos)를 찾아낸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사진에서 느끼는 욕망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결국 사진의 본질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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