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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의료는 가능하다 - 한국 의료의 커먼즈 찾기
백영경 외 지음 / 창비 / 2020년 12월
평점 :
의료의 공공성, '다른 의료'를 꿈꾸는 이들의 대담이 담긴 이 책은 언뜻 전공자들이 사회 변혁을 논하는 거창한 책으로 보이지만, 실은 동네 병원이 못미더워 대학병원 예약 날짜를 기다리는, 실손보험 청구액을 계산하는, 산부인과 가기를 두려워하는, 치매 어머니를 모시는, 바로 내 이야기다.
'보다 넓은 의료'를 논하는 이 책은 '어떻게 살고, 병들고, 늙고, 죽을 것인가'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 질병과 죽음이란 가능한 한 미루고 싶은 질문이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질문에 가장 현실적으로 맞닿아 있는 '의료'에 대한 여러 전문가들의 대담에서 그 해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사실 일반인이 의료계에 가진 시선은 양가적이다. 코로나 상황에 헌신하는, 내 생명을 오롯이 맡아주는 의료진에게는 고마운 마음이지만 ('전교1등 의사' 사태에서 보듯) 사회의 엘리트이자 (의료거부 사태와 국시 거부로 이어진) 이권을 주장하는 모습에는 반감을 가진다. 하지만 의사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연봉을 수 억 줘도 지방에 가지 않는 건 그만큼 과도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고, 과잉진료도 낮은 수가의 손실을 메꾸려는 고육지책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의료의 공공성이 중요해진 팬데믹 시대는, 이익집단으로서의 의료계에 불편한 시선을 던지기보다 의료계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균형을 논할 때다. 민영화가 가속화되고, 대기업은 호시탐탐 의료라는 거대한 블루오션에 눈길을 던진다. 이런 '큰 논의'는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큰 돈 드는 질병에 도움이 되어 가입한 실손보험은 오히려 공공보험을 약화하고, 어디서나 서울 대형병원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원격진료는 오히려 의료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불편한 진실은 대부분 가려진다. 오히려 지역의료를 강화하고 접근성을 늘리는 것이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논의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병원이 인간다운 곳, 인간으로 존중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은 이런 질문에 대해 의료인 뿐만 아닌 개개인이 질문을 새롭게 던지게 한다. 의료의 공공성은 바로 나 자신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가 질병이나 죽음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여야 한다. 자신의 몸과 질병에 대비하고, 현명하게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이 책은 의료 서비스에서도 소외된 여성과 소수자에게도 귀기울인다. 현실 속 여성은 자신의 질병을 계속 '증명'해야 한다. 장애인과 노인은 가정이나 시설에 분리되고 사회에서 보이지 않게 된다. 하지만 '더 나은' 의료는 이들을 배제하는 것이 아닌 공존하며 치료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우리는 질병과 죽음에 보다 관대해질 필요가 있다.
저자와 여러 의료 분야에서 일하는 다섯 명의 대담자의 목소리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의료가, 나아가 어떤 삶이 가능한가에 대한 구체적인 해답을 발견할 수 있다. 일반인도 무조건 편리한 대형병원, 원격진료를 옹호하고 의사의 말은 '자기들 이익을 위한 이기심 아닌가'라고 실눈뜨고 볼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그리고 나 자신의 삶과 질병과 죽음을 더 인간답게 맞을 방향을 찾을 수 있다. 공공의료, 의료의 커먼즈는 '결국 지금 여기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에 반응하고 해결해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에서 논하는 '더 나은 의료'는 비단 의료인에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바로 '더 나은 삶'을 위한 우리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