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서점
서점을 잇는 사람들 지음 / 니라이카나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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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서점. 제목을 소리 내 가만히 읽어본다. 내가 사랑한 서점. ‘내가사랑한사이의 여백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그 한 호흡에서 그동안 내가 사랑한 서점들을 떠올린다.

 

내게 서점의 원형인 동네 서점, 감나무 열린 이층집들을 따라 난 좁은 골목을 내려가면 그 끝에 있는, 열 평도 채 되지 않을 작은 서점에서 온갖 어린이 소설을 탐독했던 시절, 유리문을 열기도 전에 내가 읽지 않은 새 책이 들어왔는지 단박에 알 수 있었던 문가 책장에서 피어오르던 달큰한 새 책 표지 향기를 떠올린다. 시험이 끝나거나 방학이 되면 제일 먼저 찾았던 교보문고에서는 지금의 교보문고 향이 났던가.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핸드폰조차 없던 시절, 서점 앞 유리창에 붙인 포스트잇에서 모임 장소를 확인하고 헐레벌떡 달려가 선배나 친구들과 만나 함께 책을 읽고 비장하게 이야기를 나누던, 그 시절 그 사회과학 인문 서점의 비좁은 서가와 쿰쿰한 냄새를 떠올린다. 어째서인지 그곳에서 가장 많이 산 책은 사회과학책이 아닌 <키노>였던 것 같지만. 행운동 이층 햇볕이 길게 이어지는 창가가 좋았던, 영화 책과 <필로>가 반겨 주었던 서점에선 바삭하게 마른 빨래 같은 햇볕 냄새가 났던 것 같다.

 

어째서일까, 이 서점들이 책이 아니라 냄새로 기억나는 건, 그 기억이 그만큼 원초적이어서일까. 내 몸에 들러붙어 빠지지 않는 냄새처럼, 나는 그 서점들을 냄새로 기억한다. 그만큼, 내게서 떨어지지 않겠지, 그 기억이란.

 

과거의 추억으로 묻혀 있었을 기억을 지금으로 꺼내 온 건 오늘의 서점을 지키는 서점지기들의 이야기다. 열다섯 곳의 서점을 지키는 이들의 기억 속에 자리한 서점들. 지금의 서점지기들이 떠올리는 과거의 서점 이야기는 내 이야기와 언뜻 비슷했다. 내 서점의 원형이 되어 주었던 기억 속의 서점, 그리고 그 자취를 찾듯 이곳으로 돌아와 다시 숨결을 찾은 지금의 서점. 거기에는 어떤 모습이 될지 아직 알 수 없는 아이가 가질 기억의 모양새를 갖춰 준 서점이, 처음 책을 만지는 일을 시작했던 헌책방 주인의 무심한 다정함이, 이제는 그리움 북받쳐도 찾아갈 수 없는 책 냄새가 있다.

 

지금은 사라진 서점을 이야기한다는 건, 그리 즐거운 일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대형 서점으로, 온라인 서점으로 눈길을 돌리고 고향을 떠나면서 한동안 눈을 돌렸던 서점이 어느새 사라졌을 때까지, 그사이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을 테니 말이다. 우두커니 조용한 서점을 지키는 지기의 마음을 짐작하려 해도 이내 마음이 아려와 그만두고 만다. 그래도 그 사이를 곱씹으면 어느새 조금은 자란 이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추억이 되면 힘들었던 것도 그리워진다. 그런 기억들을 생각하면 흙 속의 고구마처럼 천천히 자랐을 그때가 그립다.’

 

한 서점지기는 존 버거의 글을 인용한다. ‘살아왔기 때문에 죽은 이들은 결코 무기력할 수 없다.’ 지금은 없는 서점을 그리는 이야기가 그저 추억 소환이나 한탄에 머무르지 않을 수 있는 건,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들이 지금 그 시간을 잇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은 이들이 살아온시간을 살려내고, 무기력하지 않도록 숨을 불어놓고, 지금 이곳에 애써 되살려 놓는 이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책장과 책방 사이에서 생겨난 삶을 만나 지금의 삶이 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서성거림과 우연 끝에 나의 책방을 열었다.’

 

사라짐을 다룬 책이지만, 이상하게도 쓸쓸하지 않았다. 오히려 온기가 스며 나왔다.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이렇게 서점지기들의 기억 속에서, 지금 서점을 잇는 사람들의 마음에서, 오늘도 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는 사람들 손에서, 서점과 책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내게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겠지, 하고 짐작한다.

 

기억의 셔터를 올린 건 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건 손님이다라는 한 서점지기의 글에서 서점을 기억하는 책이 시작되고, 그 책에서 내 속에 머물던 서점 기억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오고, 또 지금의 서점들로 이어진다. 내가 사랑한 서점, 아니 내가 사랑하는 서점, 내가 앞으로도 계속 사랑하게 될 서점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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