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너머 한 시간
헤르만 헤세 지음, 신동화 옮김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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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느 지나간 여름에 대해 노래했다. 내 소년의 눈이 처음으로 한 젊은 여인의 자태와 걸음걸이에 붙박여 있던 그때를. “


자정 너머 한 시간, 아름답고 반짝이는 꿈, 동화 같은 환상, 축축하고 음습한 기억과 비밀스런 말들이 움트는 시간. 작가는 그 시간에 글을 잣는다. 여인의 금발 머리칼로 시를 잣듯 얼기설기 엉성한 기억과 불쑥 튀어나오는 공상들을 그러모아 글을 쓴다. 그 짧은 이야기들이 모여 <자정 너머 한 시간> 이 되었다. 머릿말을 포함해 헤세의 초기 단편 열 편을 모은 이 작은 책은 어둠처럼 무겁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끈끈하고 음습하고 또 놀라우리만치 희망이 반짝인다. 그 젊음의 혼란스러움에서, 우리가 아는 그 헤세를 만난다. 

닿을 수 없는 사랑. 게르트루드 부인, 이곳의 가장 아름다운 여왕의 그 발끝에서 창백한 모습이 빛 속으로 사라지는 걸 보며 열정에 불타고, 닿을 수 없는 나 자신의 내면으로 향하며 정반대의 어둠을 갈구하는 젊은 시절의 헤세. 

“이따금 너의 미소가 내 이야기를 따라올 때면, 내게는 순간 그것이 무언가를 
다시 알아보는 미소처럼 보여.“ <말 없는 이와의 대화>는 어쩌면 내 안에 무거운 꿈, 납빛이고 열띤 시간처럼 가라앉은 나 자신과의 대화일까. 

“사람들 대부분의 삶처럼 나의 삶에도 평범함에서 특별함으로 변화가 일어난 지점이 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부서진 청춘의 폐허를 딛고 무와 공허에서 새롭게 날아오르는 꿈을 꾼다. 마치 데미안처럼. 

심연에 고여 있던 축축하고 산뜻하고 청량하고 바스락거리고 아름다운 글들이 한밤의 시간 속에서 반짝인다. 헤세의 글이 어디쯤에서 시작되었을까, 곰곰이 뒤적여보는 젊은 날 꿈의 노벨레. 

*엘리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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