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들 - 마음의 고통과 읽기의 날들
수잰 스캔런 지음, 정지인 옮김 / 엘리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여성이 자기만의 방에 앉아 있다, 아니 갇혀 있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옆에는 어디론가 막 떠나려는 듯, 어쩌면 막 도착한 듯 커다란 여행 가방이 놓여 있다. 큰 창문으로 보이는 바깥 풍경을 응시한다. 여자는 나가려는 것일까, 이곳에 머무르려는 것일까.

 

수잰 스캔런의 자전적 에세이 <의미들>의 표지에 실린 호퍼의 그림 이야기다. 하지만 책 표지에서 여성은 보이지 않는다. 그곳에 있어야 할 것은 나다. 오랜 시간 정신병동에서 보낸 시절을 이해해 보려 애쓰는, 이제는 행복해(졌다고 믿고 싶은) 작가가 풀어 놓을 여정을 이제 막 들여다볼, 그 여정이 시작되는 방에서 환한 창문 바깥으로 나갈 나다.

 

몇 년간 머물렀던 (결코 살았던곳은 아닌) 정신병동의 방 한 칸에서 지낸 날들은 작가가 의미들에, ‘미친 여성들에 빠져들고, 헌신하고, 매몰되고, 매혹되고, 얽매인 날들이다(원제인 ‘committed’의 의미처럼). 그곳에서 병원 한켠의 방은 엄마가 죽어가던, 외면해야 했고 그러면서도 와락 뛰어 들어가 안기고 싶었던 엄마의 방, 당연하다는 듯이 죽음을 생각했던 기숙사 방, 끝없이 읽고 쓰고 울었던 작가의 방이다.

 

저자는 자신이 머물던 이곳을 뒤라스의 방, 실비아 플라스의 방, 그리고 자신만의방으로 만든다. 의미를 찾는 방, 삶의 의미를 찾는 방, 언제까지나 머물러야 할지도, 언젠가는 벗어날지도 모를 이 자기만의 방에서 그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자주 창밖을 내다보았을 갇힌 여인들의 방에 자신을 얽매는 동시에 그곳에서 빠져나온다.

 

이것이 그의 첫 책이다. 나는 여기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엄마에 관해 쓸 때면 자주 그러듯이 울고 있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거기서 엄마의 죽음을, 나의 그 첫 인생의 종말을 안고 살아갈 유일한 방법은 그 삶에 관해 영원히, 계속 반복해서 쓰는 것뿐이었고, 때로 그것은 페이지 위에서 무너지는 것을, 울면서 문장들을 써 내려가는 것을 의미했다.”

 

얼어버린 시간을 그대로 묻어두지 않고, 의미를 찾고, 사랑과 광기와 수치와 혐오와 상실로 가득한 인생의 한 시기를 기어이 풀어내고 뒤돌아가고, 스스로 잡아먹히거나 오븐에 머리를 디밀지 않고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건, 다른 미친 여자들과 손을 잡은 덕이다. 미친 여자들과 책으로, 그리고 병원에서 만나는 일은 그에게 약이나 마찬가지였다. 그에게는 필요 없었던, 왜 그토록 오래 갇혀 있어야 했는지 알 수 없는 그 병원의 작은 방에서 수없이 읽고 썼던 시간은 결국 살아내는 시간이었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자신에게조차 미지의 존재다.”

 

책 앞머리에 인용되는 어빙 고프먼의 <수용소>는 마치 이 책을 위한 제사 같다. “우리의 지위는 세계의 견고한 건물들이 지탱하지만, 개인 정체성의 감각은 흔히 그 건물의 갈라진 틈새에 살고 있다.” 우리는 그 틈새에서 허우적대다 어딘가 뚝 떨어지기도 하고, 어두운 방 한 칸에 내내 침잠하기도 한다. 자신에게조차 미지의 존재를 찾지 못해 헤매기도 한다. 하지만 작가는 자신의 그 어두운 순간에 빛이 스미는 시간을 기어이 건져 내어 우리 앞에 내놓는다. 자기가 그랬던 것처럼, 읽고, 읽고, 쓰고, 손 잡자고. 그렇게 다시 살아가자고.

 

하지만 인간으로서 존재한다는 이미 주어진 상태 안에서도 위안을 찾을 방법이 우리에게는 많이 있다. 이는 어느 수준에서는 늘 불가해한 부분이다. 이것이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다. 이것이 내게 다른 여자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던 이유다.”

 

*좋은 책을 보내주신 엘리에 감사드립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