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없는 작가
다와다 요코 지음, 최윤영 옮김 / 엘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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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에게 여행이란 낯선 물을 마시는 것이었다. ... 경계 자체가 물로 되어 있다면, 낯선 물이 시작되는 지점을 어떻게 알 수 있다는 말일까?” <유럽이 시작하는 곳>, p.10-11

다와다 요코의 경계 위의 세계가 시작되는 책. 다와다 요코를 처음 만난다면, 또는 이리저리 그의 지도 위를 배회하고 있다면 더없이 좋을 책이다. 여행,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경계, 뒤섞이는 말들, 모어와 외국어 사이에서 그 어느 것도 아닌 언어가 되는 ‘이상한 나라의 다와다’가 촘촘히 글들 사이에 새겨져 있다. “서로 바짝 붙어 있는 것과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을 모두 떼어놓는” 스테이플러 심 제거기 같은 외국어에서 인형의 언어, 스님 한 명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여러 명의 목소리까지, 갖가지 목소리를 실험하는 ‘영혼 없는 작가’의 기이한 여행에 기꺼이 동참한다. 단어가 조각나 세포가 되고, 문장은 산맥이 되고, 터널이 되고, 목소리가 되고, 유령이 되어 몸을, 자연을, 숨결을 관통한다.

가장 좋았던 <번역가의 문 또는 첼란이 일본어를 읽는다>는 “낯선 언어로 완벽히 모사될 수 있는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번역본 또한 문학일 수 있는지를 의미하는 번역 가능성”을 모색하며, 한자의 부수를 조각조각 내 그 안에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마음껏 풀어놓는다.

언어의 무한한 가능성을, 변신하고 갈라지고 채우며 세계를 완성하는 가능성을, 그러면서도 “세계의 망에 너무나 많은 구멍을 만드는” 말을 발견하고, 그 빈 자리를 기꺼이 놓아두며 상상하는 즐거움. 다와다 요코의 글을 읽는 것은 결코 설명서가 없는 레고 퍼즐, 그런데 중요한 블록 몇 개가 꼭 사라지고 없는 퍼즐을 애써 맞추는 당혹스러운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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