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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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으로 얻은 듯한 연말연시의 한 주에 조용히 침잠하며 읽는 책으로 이보다 적절한 책이 있을까. 조용하고 고독하고 망망대해 한가운데 떠있듯, 북극의 얼음 위에서 고요히 먼 곳을 응시하듯, 고요한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이 때, 배리 로페즈의 장대한 서사를 읽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일생을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지구 곳곳을 탐험하며 땅과 인간의 관계를 살핀 그가 생전 마지막으로 집필한 이 대작은 세계 구석구석에서 그가 얻은 평생의 배움을 전한다. 장대하고 장엄한 자연을 넘어 인간의 역사를 바라보고, 생태의 진화를 살피는 그의 글에서는 광활하고 황량한 땅에 남겨진 가장 작은 인간의 모습을 본다. 하지만 무력하기보다 그저 거대한 그 힘에 내맡겨진 채 한없이 펼쳐지는 경험은 오직 그의 글에 마음을 던질 때만 얻을 수 있는 경험이리라.

 

자서전과 다름없는 이 책을 쓰기 시작하며, 저자는 뉴욕에서 보낸 청소년기가 지나고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기억을 되살려 자신이 살던 아파트를 찾는 편지를 관리인에게 보낸다. 어머니가 꽃을 가꾸던 곳, ‘비행기라는 물체에 매혹되고 의도치 않게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이 되는시발점이 되었던 곳. 그 여행의 시작이 인상깊었다. 뉴욕 어딘가 한 곳에 붙박혀 있던 자신의 시작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이 끝없이 떠도는 인생을 시작하는 것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더없이 적절해 보였다.

 

그의 글에서는 자연의 거대함과 바흐의 지고함과 모네의 빛이 어우러진다. 지고함의 모든 것을 품은 바흐의 <b단조 미사>, 처음에는 아주 단순하게 보였던 것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 의미의 무한한 가능성을 암시하는 파르티타에서 흐트러지지 않는 음악의 순수성, 그림의 채도를 떠올리고, 여기에서 한 풍경에 통합되어 존재하는 생물학적 지질학적 지리학적 생태의 총체를 발견한다. 이렇게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그의 글에서 우리는 지금 해야 하는 질문을 얻는다. “저 바깥에, 저 길 끝 바로 너머에, 언어와 열렬한 믿음 너머에, 누구든 우리가 충성을 바치기로 선택한 신들 너머에 무엇이 존재하는가?”

 

사무실 칸막이 안에서 모니터 앞에서 안락하게 자족할 때 우리는 강제된 선을 지키며 그 안에서 모험을 잃어버린다. 우리는 강제된 선을 지키며 그 안에서 모험을 잃는다. 일상의 폭력이 가득한 시대에 저 너머를 내다보면, 우리는 무엇을 얻게 될까? 인간의 모순을 외면하지 않고 자연의 장대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이 체험적인 독서에서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작디작은 인간의 모습을 겸허히 다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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