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극을 꿈꾸다 - 우리의 삶에서 상상력이 사라졌을 때
배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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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을 꿈꾸다 베리 로페즈 지음 신해경 옮김 북하우스

 

남극에 가고 싶었다.

사람들과 세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그저 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그곳을 갈 방법을 알아보곤 했었다. 최근엔 주인도, 국경도 없이 그저 하얀 눈과 침묵만 있는 극지에 이끌린 이상한 사람들무리에 끼어 남극을 방문한 일기를 연재하는 소설가 김금희 님의 글을 열심히 읽으며, 나 또한 꿈꾸었던 그 빛과 고요만 있는 극지를 떠올린다.

 

하지만 문명에서 멀어진 곳, 순수, 자연, 궁극의 삶. 그런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치장된 극지는 어쩌면 내 머릿속에서 재구성된 이상향이었는지도 모른다. 베리 로페즈가 만난 북극은 그런 이상 속 아름답고 순수한 곳이 아니었다. 치열한 삶이 벌어지는 곳, 그 나름의 질서로 움직이는 곳, 인간이 이룬 문명과 역사보다 더 거대한 무언가로 이루어진 세계였다. 그 아름다움에 이끌려 극지를 찾아간 수많은 탐험가나 과학자들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곳은 우리의 판단을 넘어선, ‘당황스러운 존재’, ‘미묘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우리가 파악할 수 있는 한계보다 거대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이해할 수 있는 어떤 존재.

 

베리 로페즈의 이 우아하고 아름다운 글은 에세이이면서 과학 연구서였다가 북극을 둘러싼 역사를 다룬 역사서가 된다. 신기하게도 화려한 수식어 없는 관찰기인데도 담담한 문장이 끝없는 상상으로 뻗어나가 단순한 문장 하나에도 오래 눈이 머무른다. 극지를 이동하는 고래와 북극곰의 조용하지만 치열한 삶, 그 삶에 끼어들어 북극이라는 대지를 이용하려는 인간, 그 거대한 대지를 만나며 자신의 욕망과 역사를 되돌아보게 된다. 시야를 차단하는 먹먹한 빛과 어둠의 과학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며 인간의 상상과 전혀 다른 자기들만의 삶을 사는 극지 동물들의 가혹하지만 위엄있는 삶을 새롭게 관찰하고, 그곳을 정복하려다 정복된 사람들의 엎치락뒤치락하는 역사를 다루며 결국 이 책이 가닿는 곳은 존엄이 등장할 수 있는 존중의 관계를 확립하는 일이다. 인류에게서 가장 먼 북극을 경유해 다시 인간을 돌아보게 하는 이 장엄한 서사시 같은 멋진 글을 이 막막하고 갑갑한 세상의 한가운데서 다시 만날 수 있어 다행이다.

(정확하면서 아름다운 문장도 베리 로페즈의 글을 한층 읽기 좋게 만들어 주었는데, 알고 보니 존 버거의 책을 많이 옮겨 주셨던 번역가님의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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