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 과학, 어둠 속의 촛불 사이언스 클래식 38
칼 세이건 지음, 이상헌 옮김, 앤 드루얀 기획 / 사이언스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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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세이건이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 쓴 글들을 모은 마지막 저작이 20여 년 만에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수십 년의 시간에도 글은 낡지 않았고, 오히려 지금, 우리를 위해 새로 쓴 것처럼 적확해 보인다. 표지 그림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어두운 하늘을 나는 악령처럼 보였던 것은, 자세히 보면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다 떨어지는 이카루스다. 능력 있는 소수가 과학을 독점하면 위험할 수 있다. 과학이 힘을 얻지 못하고 떨어져 버리면, 그 자리에는 악령이 득세한다.

“촛불이 점차 희미해진다. 초의 작은 불꽃 웅덩이가 떨린다. 어둠이 모인다. 악령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이 책은 <코스모스>나 <브로카의 뇌>처럼 과학 자체보다는 ‘민주주의 사회에서의 과학’에 좀 더 가깝다. 현 상황을 과학의 눈을 통해 날카롭게 성찰하는 사회과학 서적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세이건이 글을 쓸 당시 유행했던 반과학주의, 종교, 외계인, 사람들을 현혹하는 유사 과학, 온갖 미신들은 이름만 바꾼 채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마녀와 외계인, 도사와 법사가 출몰하고 반과학과 미신, 비합리주의와 반지성주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니, 바로 지금, 이곳이지 않은가? 미래가 보이지 않고, 대체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지 막막한 지금, 세이건은 ‘촛불’을 들어야 한다고 말한다(우리나라에서는 다분히 중의적인 표현으로 들린다).

우리가 악령에 맞서 들 수 있는 촛불은 과학이다. ‘아무리 이상하고 직관에 반하는 것일지라도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는 것, 오래된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모든 아이디어를 회의적으로, 그리고 아주 철저히 조사하는 것’, 의심할 줄 아는 정신과 경의를 느낄 줄 아는 감성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본질적인 도구로 과학을 이용하고, 종교와 정치, 사람들을 현혹하는 온갖 말싸움에 ‘헛소리 탐지기’를 들이댈 수 있는 것은 과학적 사고로만 가능하다.

세이건은 선입견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대안적 가설을 만들고 사실과 부합하는지 검증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면서도 회의적으로 철저하게 검토하는 과학적 사고방식이 미래를 이끈다고 말한다. 하지만 칼 세이건은 이 과학이 독선적으로 흐를 수 있는 위험도 경고한다. 과학자가 스스로 죄를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고, 일어날 수 있는 위험을 대중에게 알리는 일도 의무다. “도덕적 모호함 또는 양면성은 과학자 고유의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진 본성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때로 실수나 오류를 범하기도 하면서도, 검증가능한 가설을 세우고 결정적인 실험을 찾는 것, 이런 불완전한 과학이라는 도구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선의 도구다. 과학은 결과라기보다 수단이다. 사고하는 방법,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방법, 혹은 옳은 방향이 어딘지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방법이다. 그래서 이 책은 앞날이 막막한,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알 수 없는 지금, 우리에게 도착해야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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