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말이 될 때 - 우리의 세계를 넓히는 질병의 언어들 맞불
안희제.이다울 지음 / 동녘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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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고도 먼 두 사람이 한 가지 주제로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동녘의 맞불시리즈의 두 번째 책을이다. 첫 책이었던 두 번역가님의 책은 나와 같은 일을 하는 대선배님들의 유쾌하고 사려 깊은 이야기에 몰입해 읽었다. 하지만 우리의 세계를 넓히는 질병의 언어들이라는 부제 아래 직접 겪고 있는 만성 질환 이야기를 나누는 두 작가의 편지는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무거운 마음을 가다듬고 무거운 마음으로 진지하게 읽기 시작했다.

 

두 작가는 통증과 질병이 일상이 된, 언제 어디서든 아플 준비가 되어 있고 일상을 포기할 준비를 해야 하는 삶 속에 있지만, 그 통증을 묘사하는 통증 백일장을 열고 싶다고 유쾌하게 받아들이거나, 일상의 틈새에서 덕질을 하고 춤을 추고 학교를 다니고 삶을 가꾸며 질병 속에서 질병을 고찰하는 진지한 통찰을 엿볼 수 있다. 미야노 마키코와 이소노 마호가 주고받은 편지 모음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을 떠올리게 했지만, 죽음에 한층 가까워 있던 저자의 글에서 평온과 수용이 비쳤다면 90년대생 두 작가의 편지에서는 질병을 삶으로 끌어들이려는 이들의 통찰이 더 생생하고 삶에 가깝게 느껴졌다. 보편성과 추상성 사이에서 개인의 경험과 본질의 추구 사이를 끊임없이 줄다리기하고, ‘꾀병이 아니냐는 질문과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싶은 질병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 진단명을 받았을 때의 내가 미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안도감과 그 속에 갇히지 않을까 하는 불안은 아프지 않은 시간과 아픈 시간이라는 사이에서 내가 살아가야 할 공간을 애써 비집고 찾는 노력이었다.

 

1인칭과 3인칭 사이 2인칭 시점으로 당신의 말에 담긴 구체적 맥락을 들어보는 대화를 이어가며 비슷함 속에 가득한 차이와 불일치를 드러내는 두 사람의 편지를 읽으며, 조심스럽지만 언젠가 나의 이야기인(또는 누군가의, 언젠가는 올) 질병을 받아들일 자리를 마음 한 구석에 내어주었다. 두 작가가 치열하게 받아들여 온 질병에 비하기는 어렵지만 누구나 노화를 겪고 질병을 만나고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삶에서, 어쩌면 질병은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하지만 일상인 일이다. 불쑥 삶의 자리에 침범한 이 질병을 받아들이고, 저항하고, 함께 사는 이 과정을 나눈 두 사람의 다정하고 치열하고 공감하고 부딪히는 편지를 함께 읽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희망은 어떤 완료된 것 혹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자 동시에 우리가 만들어가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가는 것이기도 합니다. 희망은 갖거나 품는 것이 아닌, 부단히 실천함으로써만 지탱할 수 있는 어떤 존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의미에서의 희망만이 우리를 무력하게 만드는 현실을 실제로 바꾸어나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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