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름답게 어긋나지 - 언어생활자들이 사랑한 말들의 세계 맞불
노지양.홍한별 지음 / 동녘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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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고, 혼자 깔깔 웃고, 한숨 쉬고, 그러다 가만히 책을 덮었다. 마음 깊이 책을 사랑하는 마음에, 같은 일을 하며 서로 기대고 의지하고 공감하며 살아가는 또래의 이야기에, ‘사라지는 것이 운명일지라도, 보이지 않는 것이 규칙일지라도’ 애써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드러내며 글자에 내 모습을 새기는 아이러니한 일에 푹 빠져버린 두 사람의 모습에 감탄하고 또 웃었다.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던 건 내 이야기이기도 해서일까. 적당한 학벌에, 적당한 직장에, 적당한 연봉을 걷어차고 왜 ‘아깝게’ (최소 노동에 최대 효율이 최선인 자본주의에 완벽하게 역행하는) ‘그런’ 일을 하는지, 주변 사람들은 물론 나 자신조차 수없이 되뇌었던 질문이니까. 나는 어쩌다 애증의 이 일을 왜 사랑하게 되어 버렸을까.

그래서 오랫동안 좋은 책들을 번역하고, 감탄이 나오는 문장과 단어들을 섬세하게 고르고 다듬어 온 두 번역가의 이야기가 정말 반가웠다. 워낙 글발과 말발이 좋은 두 번역가가 일과 가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그리워하고 동지처럼 느끼며 교환한 편지들을 읽으며 이런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동지이자 친구가 있다는 사실이 질투 날 정도로 부러웠고,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이렇게라도 엿들을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내 번역이 ‘파파고’보다 못하다는 댓글을 받아도(십수 년 된 중견 번역가분도 그렇다니...), 쌓이는 경력과 반비례하는 통장 액수를 확인해도, ‘우리는 아깝지 않다!’라고 당당하게 일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두 번역가의 자화자찬이 그렇게 애달프고도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번역 이야기를 한다는 건...나는 인생에서 무엇을 포기하지 못하고 어디에서 기쁨을 길어내는 사람인지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두 번역가처럼, 나 역시 한 책을 번역할 때마다 그 책에 푹 빠지고, 작가에게 공감하거나 반박하면서 대화를 나누며, 그 어느 독자보다 먼저 책과 사랑에 빠지는 그 특권을 사랑하게 되어 버렸으니까, 그냥 그렇게 되어 버렸으니까 말이다.

이 편지는 번역을 하는 이들, 책을 좋아하는 이들, 누구보다 이들처럼 책과 내밀한 사랑에 빠지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닿는 편지다. 책이라는 낡고 오래된 매개를 통해 서로를 비밀스럽게 살펴보고 닮아가는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이 책은 필연적으로 나를 조금 닮았겠지만, 나도 이제 이 책을 조금 닮았다. 독자들도 이 책을 읽을 때 조금 책을 닮아갈 것이다. 그렇게 낯선 우리는 서로를 길들인다. 책은 우리의 공감을 확대하고 타자를 이해하는 방식이니까.’ 페이지 너머 나를 들여다보고, 타인의 마음 속을 들여다보고, 어딘가 먼 세계를 돌아보는, 어쩌다 이 ‘요즘답지 않은’ 일을 사랑하게 되어 버린 우리에게 조용히 위로와 찬사를 건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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