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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지음, 이나경 옮김, 코리 브렛슈나이더 해설 / 블랙피쉬 / 2021년 8월
평점 :
미국 역사상 두 번째 여성 대법관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나는 반대한다”라는 말로 전 세계 진보와 페미니즘의 아이콘이 된 그의 ‘진짜 말’을 들어 볼 수 있는 책이다.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 발짝씩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 그의 당당하고 소신있는 생애는 잘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그가 쓴 글을 접하기는 쉽지 않았다.
잘 알려진 ‘리드 대 리드’ 판결이나 ‘크레이그 대 보런’ 판결에 대한 의견 및 소수의견 등, 크게 ‘성평등과 여성의 권리’, ‘임신, 출산의 자유’, ‘선거권과 시민권’으로 분류한 의견서들을 통해 그가 미국 내 법적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헌법을 어떻게 해석하려 노력했는지 볼 수 있다. 꼭 이긴 사건의 판결문이 아니라도, 감명 깊은 소수 의견을 통해 후대를 위해 전례를 남겨 잘못된 법률을 철폐할 근거를 확립한 의미있는 글들이다.
긴즈버그는 자신의 위치에 따라 어떤 사안에 다해서는 의견을 명료하게 밝히지 않거나, 다수의 의견에 목소리를 높여 소수의견을 지켜 나가기도 했다. 이상만 추구할 수는 없고, 재판에서도 이겨야 하지만, 지더라도 후대를 위한 목소리를 남긴다. 그의 말은 정의나 감정에 호소하지도, 차가운 논리만 밀어붙이지도 않는다. 여성은 더 어린 나이에 술을 살 수 있는 오클라호마주의 법처럼 역으로 ‘여성에게 이익이 되는 것처럼 보이는 법을 공격하는 길을 선택’하기도 했다. 까다로운 문제를 마주한 다면적인 상황에서도 그는 영리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알았고, 전략적으로 대처하고 상황을 꾸밀 줄 알았다. 상황을 정확히 바라보고, 소리 높여야 할 때와 조용히 틈을 보아 정곡을 찌를 때를 구분했던 그의 치밀한 논리의 근거가 직접 쓴 글들에 담겨 있다.
사실 법조문이라 읽기 편한 글은 아니지만, 곳곳에 정치학과 교수인 코리 브렛슈나이더의 주석이 달려 있어 한 문장 한 문장 고민하며 썼을 문장들의 ‘사이’를 좀 더 알기 쉽게 들여다볼 수 있다.
“여성이 정치, 사업, 경제 분야에 온전히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에는 종종 ‘보호’나 ‘혜택’이라는 설명이 딸려 있다. 인종적, 민족적 소수집단에 그런 법을 적용한다면 부당하고 허용해서는 안 되는 일로 간주될 것이다.”
“남녀 간의 ‘본질적 차이’는 존중받을 요소지 어느 쪽이든 폄하당하거나 기회를 제한받을 요소가 아니다. 성별 분류는 과거처럼 여성의 법적, 사회적, 경제적 열등성을 만들어내거나 지속시키는 데 이용해서는 안 된다.”
하버드 로스쿨에 여자는 고작 2%에 불과했던 시대,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한 뒤에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취직할 수 없던 시대를 거쳐 클린턴 대통령의 지명으로 미국 역사상 두번째 여성 대법관이 된 긴즈버그는 ‘법을 통해 여성해방운동에 앞장서는 업적'을 남겼다. 그는 ‘여성과 모든 시민을 평등권에 기초해 보호하는 헌법의 진정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의 말이 지금도 유효한 것은 그와 수많은 동료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바꿔 나가야 할 차별과 잘못된 제도가 만연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과 불의에 대처하는 방식은 지금, 여기에서 우리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알려준다. 우리는 여전히 그의 목소리에 힘을 얻어 “나는 반대한다”라고 외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