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9 - 번영과 낙관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달았는가
앤드루 로스 소킨 지음, 조용빈 옮김, 신현호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29_번영과 낙관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달았는가

(앤드루 로스 소킨, 웅진지식하우스, 2026, 초판 1쇄, 629쪽)

 

#1929 #앤드루_로스_소킨 #웅진지식하우스 #대공황 #저널리스트 #월스트리트 #금융논픽션

 

“결국, 1929년의 이야기는 금리나 규제에 대한 것도 아니고, 공매도꾼의 영리함이나 은행가의 실패에 대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훨씬 더 영속적인 것, 즉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야기다.”(514쪽, 후기)

 

저자는 저널리스트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다룬 “대마불사(Too Big to Fail)”의 저자로 유명하다. 금융 논픽션의 대가인 저자가 이번에는 1929년 대공황을 현장감 있게 그려냈다. 그는 수많은 기사, 인터뷰, 일기, 편지 등을 오랜 세월 발굴하고 정리하여 위와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은 결국 ‘인간의 본성’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과거의 교훈을 쉽게 잊어버리며, 믿고자 하는 것을 예외적으로 완전하고 합리적이라 생각하면서 깊고 고통스럽게 추락하는 일을 반복한다. 어떻게 하면 이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겸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어떤 시스템도, 어떤 시장도, 어떤 인간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그 겸손 말이다.

 

“오늘은 미국 역사상 가장 어두운 날입니다.”(282쪽, 1929년 10월 27일)

 

이 책을 읽으면 1929년 당시로 빨려 들어간다. 모든 인간이 그렇듯, 100년 전 인간들도 과거를 잘 안다고 착각하면서 미래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 상황 속에서 가장 자신답게 행동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대공황이었다. 저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 대공황이 ‘왜’ 일어났는가이지 ‘누구’ 때문에 일어났는지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믿고 싶어 한다. 누군가 한 사람 때문에 이 모든 사달이 났다고. 하지만 저자는 냉정하게 말한다. 누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며, 그들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다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재평가와 교훈-

#미첼 #글라스 #후버 #루즈벨트 #공황

 

“미첼은 과연 개인이 할 수 있는 온갖 수단을 동원해 경제를 벼랑 끝으로 밀어 넣은 주범이었을까? 아니면 … 편리한 희생양에 불과했을까?”(500쪽, 에필로그)

 

저자는 1929년 미국 경제를 움직였던 거의 모든 사람을 이 책에서 다룬다. 그러면서 대공황이 어떤 과정에서 왜 일어났는가를 구체적으로 추적하고 있다. 그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행위를 최대한 당시 상황에 맞게 객관적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한다. 저자는 아마도 위 질문에 답하고자 한 것이리라. 저자는 ‘과연 대공황은 누구의 책임인가’라는, 모든 이의 관심이 쏠린 질문의 답을 찾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우리가 대공황이라는 사건으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길 바란 것일까.

 

“그러나 비극은 반복된다. 1929년에도 정확히 그런 일이 일어났다.”(45쪽, 프롤로그)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으려면 일단 알아야 한다. 대공황이 벌어지기 전후의 상황과 그 원인, 경과 등을 세세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당시의 광기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어야 한다. 제대로 된 평가를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해서는 제3자의 위치에서 그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마치 ‘천만 관객 영화’의 참모습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흥행이 모두 끝나고 사람들의 열기가 식어 내린 후에 찬찬히 음미해야만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정확하지만 객관적인 답을 찾고 싶었던 저자의 열정이 이 책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다름과 존중-

#다름 #견제 #존중 #협력

 

“미첼은 미국 소비자가 신용 대출을 이용하는 데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확신했다.”(75쪽, 1929년 2월 14일)

“(글라스) 그의 관점에서 볼 때 연방준비제도가 월스트리트의 하인이 되어 국가의 자원을 뉴욕의 은행가들에게 퍼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는 도둑질이나 다름없었고, 반드시 막아야만 하는 것이었다.”(147쪽, 1929년 4월 5일)

 

같은 현상을 두고 서로 다르게 생각한다. 저자는 그들의 출신 배경과 성장 과정에 따라 그런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사전에 친절하게 설명한다. 그들이 왜 서로 다른 지점에 서 있어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들의 행위가 왜 그토록 다를 수밖에 없었는지를 우리가 잘 알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단순히 ‘대공황’이라는 결과를 기준으로 하여 미첼을 부정적으로, 글라스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매우 큰 잘못이다. 당시 그들에게 ‘대공황’은 아직 경험하지 못한 미래였으며, 아무도 그런 결과를 원하고 행동할 리가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 사후 결과를 기준으로 과거를 평가하면 우리는 제대로 된 교훈을 얻을 수 없다.

 

나는 미첼과 글라스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정책적으로 맞서는 장면을 읽으면서 아주 훌륭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바로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서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견제하고 협력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일방적으로 자기 생각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항상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다. 특히나 ‘대공황’과 같은 큰 충격이 발생했을 때, 자기변명에만 급급하고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은행가나 새로운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과거에만 집착하는 보수적인 사람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며 목표를 위해 노력한 인물들은 결국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여준 대표적 인물은 후버 대통령이나, 발 빠르게 금융 개혁에 앞장선 JP모건같은 금융계 인물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신뢰와 공포-

#신뢰 #공포 #대공황

 

“신뢰가 사라지는 순간, 공포가 지배했다.”(32쪽, 프롤로그)

 

1929년의 미국은 제1차 세계 대전이 가져다 준 결실을 맛보고 있었다. 미국의 각종 산업은 호황을 맞이했고, 엄청난 양의 돈이 미국으로 흘러들어왔다. 전기와 기계의 발명, 다우 지수와 주식 시장의 확대는 그 많은 현금이 맨해튼의 월스트리트로 모여들도록 만든 기반이었다. 이제 세계 금융의 중심은 월스트리트였고, 이를 움직이는 것은 금융계의 거물들이었다.

 

그들의 영향력은 미국 내 도시와 농촌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제1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 독일의 배상금 협상도 이들이 고안한 방법에 따라 타결되었으며, 영국의 처칠도 미국의 활력에 매료되었다. 빚과 신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미국의 번영은 전 세계를 집어삼켰고, 모두를 그 영향권 안으로 끌어들였다. 미국의 주식 시장은 영원히 상승할 것이라는 믿음 외에 다른 대안은 없었다. 그 믿음을 전파했던 미첼마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미첼은 두려움을 모르는 사람이었으나 이 순간만큼은 공포를 느꼈다. 평생 일궈온 모든 것이 위태로웠다.”(272쪽, 1929년 10월 27일)

 

결국,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대안이 없는 늪에 발을 들인 사람들은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미첼과 같은 금융가의 거물들은 더 많은 대중에 주식을 판매하고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었겠지만, 더 많은 대중이 주식을 구매할수록, 주식 시장은 그들의 통제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이 신뢰를 잃고 공포를 느끼는 순간, 주식 시장은 순식간에 폭락했다. 실체가 없고 대안이 없는 주식 투자는 소문만으로도 쉽게 무너져 내렸다. 그래서 대공황은 누군가 한 사람의 행위에 의해 발생했다기보다 우리 인간의 본성 때문에 찾아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본성-

#인간 #본성

 

주식 시장이 대폭락한 그 날 이후에도 낙관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오히려 저가 매수의 기회라고 생각한 많은 사람이 주식을 사 모으다 파산했다. 반대로 비관론도 여전했다. 공매도를 선택한 이들도 많았다. 그들은 대중의 적이 되었지만, 순식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엄청난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도 인간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다. 은행가들은 파산을 숨기면서 이전의 삶을 영위하려 애썼다. 주식 투기꾼들은 여전히 투기를 통해 많은 돈을 벌고 또 잃었다. 저자는 당시 주요 인물의 대공황 이후 삶을 추적하여 이를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 중 상당수가 쉽고 피상적인 방법으로 자기 정당화를 꾀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대단히 훌륭한 일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영리한 핑계를 꾸며내지요. 그래야만 자신의 비도덕적 행위를 묵인할 수 있고, 스스로를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라 여기며 좋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477~8쪽, 1933년 6월 21일)

 

이 책의 부제 ‘번영과 낙관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달았는가’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인간의 맹목적인 믿음이 결국 공황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1929 - 번영과 낙관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달았는가
앤드루 로스 소킨 지음, 조용빈 옮김, 신현호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국 대공황을 다룬 금융 논픽션으로 소설처럼 읽을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역사를 지우다 - 권위주의자들은 왜, 어떻게 과거를 조작하는가
제이슨 스탠리 지음, 김한종 옮김 / 책과함께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역사를지우다 #제이슨_스탠리 #김한종 #책과함께

역사를 지우다(Erasing History)_권위주의자들은 왜, 어떻게 과거를 조작하는가

(제이슨 스탠리, 김한종, 책과함께, 2026, 1판1쇄, 295쪽)

역사를 지우다


#충격 #공포 #교육 #사례 #교훈


"교사의 힘으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_ 블라디미르 푸틴(23쪽)


충격이었다. 나는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권위주의자들이 역사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한다는 것은 아주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 구체적인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런 시도들이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권위주의가 교육을 어떻게 그들의 도구로 활용하는지 깨닫게 된 충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공포로 다가왔다.

저자는 미국의 대표적인 사회철학자다. 그래서 이 책의 대부분은 미국에서 권위주의 세력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주로 사례로 제시한다. 그래서 권위주의가 역사를 지우는 행위를 '현재 진행형'으로 살펴볼 수 있다. 또한, 미국 밖의 다양한 역사적 사례도 함께 제시하기 때문에 정확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체계적인 사례 분석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이 책을 따라 읽는 것만으로도 권위주의자들의 속내를 정확히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자유'를 외치는 현재의 극우 세력이 '아리아 인종의 우월성'을 외치던 과거 나치 세력들과 어떤 점이 닮았는지 저자는 분명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현재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 나가려 시도하는지를 알려준다.

그래서 이 책은 매우 '교훈적'이다. 저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하는지를 매우 분명하게 제시한다.


"민주주의가 공격받는 매커니즘, 전쟁이나 집단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과 같은 행동을 정당화하는 데 신화와 거짓말을 사용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이러한 공격을 막을 수 있고 심지어 그 흐름을 되돌릴 수도 있다. 이러한 투쟁은 민주주의 활동 그 자체의 일부다."(238쪽)


우리는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래서 역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을 필요가 있다.



#권위주의 #정치 #교육 #역사지우기


"권위주의 정부는 역사를 되찾는 일이 민주주의로 이어질 가능성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역사 되찾기를 괴롭히고 위협하는 것은 권위주의 정부와 이를 지지하는 정치운동의 특징이다."(221쪽)


역사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수단이다. 따라서 역사를 어떻게 지켜나가는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현재 우리나라는 '한국사'라는 교과를 학생들에게 '필수'로 가르친다. 수능에서도 '필수'로 선택해서 응시해야만 하는 과목으로 그 위상이 매우 높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는 권위주의 정부가 역사를 지우는 정치적 움직임과 그 맥락이 유사하다. '필수'로 배워야 하는 한국사는 '정답'이 정해진 암기 과목일 뿐이다. 그 정답은 권위주의 정부가 정한다. 그 정답을 제외한 다른 가능성은 원천 배제된다. 우리 역사의 시작은 반드시 고조선의 단군왕검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고, 일제의 식민 통치에 조선인들은 모두 저항했어야만 한다.

우리도 '역사 되찾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집단과 지역의 역사가 발굴되어야 한다. 중앙 정부의 권위적인 정답만 암기할 것이 아니라 지역 백성들의 자연스러운 삶도 학습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다양화해야 한다.


"(파시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배 집단의 지위 상승이 의도적으로 선택한 조작의 결과가 아니라 역사의 정당한 결과임을 입증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점이다."(26쪽)

"무지(無知) 역시 자유롭고 정보에 입각한 행동을 방해한다. 지식이 없으면 행동할 수 없다. 교육을 둘러싼 싸움은 자유를 둘러싼 싸움이다."(237쪽)


교육은 이토록 중요하다. 파시즘에서 지배 집단의 권력을 유지하는데에도 기여할 수 있으며, 시민들이 민주주의적인 정치 투쟁을 하기 위해서도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은 양쪽에서 모두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도구다. 그러면 교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지배 집단의 권력을 유지하는데 기여해야 하는가, 민주주의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저항해야 하는가. 교육이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우리 사회는 인정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법적으로 정해진 교사의 정치적 중립 의무는 과연 민주주의를 위한 장치일 것인지, 과거 권위주의 정부가 교육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장치인지 우리는 생각해봐야 한다.


"조지 워싱턴을 신화적 인물, 뛰어난 덕을 갖춘 건국 인물로 표현하는 것은 동료 인간을 노예로 삼는 데 그가 했던 역할을 지우는 것이다. 권위주의적인 역사 '재현'은 사실상 필연적으로 한 국가의 과거를 이해하는 데 절대 필요한 역사적 정보를 지우는 것이기도 하다."(212쪽)


어릴 적 위인전을 많이 읽었다. 그리곤 반감이 들었다. 위대한 인간이 위대한 탄생부터 위대한 죽음까지 살았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고,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는 막연한 열등감이 들어서였다. 우리 역사에는 이런 위인들이 참 많다. 세종대왕이 그렇고 이순신이 그렇다. 한글 창제는 반박할 수 없는 절대적 진리이며, 이순신은 국난을 극복하는데 기여한 위대한 인물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과연 정말로 그러했을까. 왕이 될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갑작스럽게 왕위에 오른 세종이 처음부터 위대한 왕일 수 있었을까. 32세까지 무과에 급제하지 못하고 장인의 후원을 받아야만 했던 이순신은 처음부터 위대한 장군이었을까.



#실천적지식인 #교사의역할 #시민적연민


나는 과연 저자처럼 전쟁의 최전선인 우크라이나에 들어가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 있을까 생각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도 그는 우크라이나의 민주주의를 지키려면 권위주의적 정부가 역사를 지우려는 행위에 저항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적인 러시아를 막아내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교사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내가 실천할 수 있는 상황이 있을까. 저자가 제시한 길은 다음과 같다.


"민주주의는 진실을 향한 개방적인 탐색을 장려하고,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오래된 가정에 의문을 제기하는 새로운 관점, 서사, 데이터를 포함하려고 노력한다."(224쪽)


내 수업은 이런 모습을 지향할 수 있을까. 역사적 지식을 전달하고 문제를 풀이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인 양 가르쳐 왔는데, 개방적인 탐색과 새로운 관점의 제시를 장려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3학년 동아시아사에서는 이런 시도를 거의 할 수 없었지만, 1학년 한국사 수업에서는 이런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교과서와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사례를 제시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신석기 혁명'을 다르게 해석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병자호란을 전염병의 관점에서 분석한 구범진의 '병자호란, 홍타이지의 전쟁' 등을 제시한 경험이 있다. 학생들이 이런 사례에 흥미를 느끼고 탐구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조금 더 다양한 사례를 발굴할 필요가 있다.



#연민 #소통


"우리 사회의 계급 구조의 양 극단들 사이, 여러 민족 및 인종 집단 사이, 그리고 상당수의 남성과 여성 사이에는 상호 소외와 고정 관념적인 환상이 존재한다. ... ... 개인적인 삶의 경험이 전혀 없는 집단의 객관적인 역사적, 현실적 조건을 이해하게 하는 것이다. 연민은 특별히 예리하고 정보에 입각한 어떤 방식으로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능력을 전제로 한다."(226~7쪽)


저자는 '시민적 연민'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그런데 읽다보면 우리가 잘 아는 그 어떤 개념이 떠오른다. 파시즘이 우리와 적을 구분하여 적대시하는 구분짓기가 특징이라면, 민주주의는 서로 다른 민족과 인종, 집단과 젠더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한다. 이른바 '역지사지'가 다. 저자는 이 역지사지의 역량을 '연민'에서 찾는다. 인간이라면 자연스럽게 갖게 되는 감정이 나와 다른 존재와의 소통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정서교육이 왜 중요한지, 대입 과정에서 배려와 협력이라는 인성적 요소를 강조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천사들의 문법 - 르네상스의 천재 피코 델라 미란돌라, 그리고 언어의 숭고한 힘에 대하여
에드워드 윌슨-리 지음, 김수진 옮김 / 까치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천사들의 문법_르네상스의 천재 피코 델라 미란돌라, 그리고 언어의 숭고한 힘에 대하여

(에드워드 윌슨 리, 까치글방, 2026, 초판 1쇄, 336쪽)

 

#천사들의문법 #에드워드_윌슨_리 #까치 #피코 #르네상스 #언어 #숭고함

 

이른 아침,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출근한다. 이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저 내 주위를 감싸는 배경 소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이제는 ‘천사의 언어’로 들린다. 그들의 말을 흉내 내는 것만으로도 내가 상상하는 세계 너머의 공간으로 나를 데려다줄 것만 같다. 약간 과장이 섞인 생각이지만, 르네상스의 천재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삶을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의 생각이 나에게 스며들었다. 물론 나는 그와 같은 천재는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존재들이다.”(290쪽)

 

이 책은 짧지만 눈부신 삶을 살았던 피코의 생애를 훌륭하게 복원하는 역사서이자 이야기다. 저자는 이야기를 풀어내는 능력이 매우 탁월하다. 마치 전래 동화 속 이야기보따리를 든 도깨비 같다. ‘뚝딱’하는 소리에 수백 수천의 이야기가 쏟아져나올 것만 같다. 저자는 로마 대논쟁을 촉발한 피코의 󰡔900 논제󰡕에서 출발해 피코가 피렌체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의 ‘시간’을 이 책의 씨줄로 삼았다. 또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지 피렌체와 베네치아, 프랑스 샤를 9세의 파리를 거쳐 콘스탄티노플과 오스만 제국, 인도와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공간’을 날줄로 엮었다. 저자는 이 씨줄과 날줄을 교차시켜 수많은 이야기를 분수대처럼 뿜어낸다. 한 꼭지, 한 꼭지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 저자가 피코라는 한 사람의 생애를 복원하기 위해 이토록 광대한 이야기를 쓸어담은 까닭은 무엇일까.

 

 

-보편이냐 개인이냐-

#보편 #개인 #지식인 #역사 #복원

 

전작 󰡔물의 시대󰡕(까치, 2024)에서는 16세기 포르투갈의 리스본이 주 무대였다. 당시 리스본에는 대항해 시대로 촉발된 전 세계의 지식이 물(뱃길)을 통해 포르투갈로 흘러들고 있었다. 두 주인공인 ‘다미앙 드 고이스’와 ‘루이스 드 카몽이스’는 그 거대한 흐름을 보며 서로 다른 생각을 품는다. 다미앙은 전 세계 문명의 다양성과 그로부터 발견되는 보편성을, 카몽이스는 배제와 왜곡, 삭제를 통한 편협한 민족주의를 생각해낸다. 저자는 이 모든 역사적 상황과 두 인물의 생애를 다미앙의 불탄 시신과 그의 손에 들려있던 작은 문서 조각으로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복원해 나간다.

 

물의 시대 서평 링크

 

󰡔천사들의 문법󰡕(2026)도 비슷하다. 장소는 이탈리아 로마로, 인물은 피코로 바뀌었을 뿐이다. 15세기 이탈리아는 지중해 무역의 발달로 인해 아랍, 아프리카 문명권으로부터 쏟아져 들어오는 각종 지식의 집합처였다.(포르투갈과 유사하다). 이 과정에서 유럽은 자신들이 잃어버렸던 고대 그리스, 로마 문명의 기록들이 아랍인들에 의해 보존되고 있던 것을 발견한다. 우리의 주인공 피코도 그런 시대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지식인이었다. 그는 이탈리아로 흘러들어오는 수많은 문명을 빠르게 흡수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이 속한 기독교 세계의 재해석을 시도한다. 다양한 문명 간 비교와 대조는 이런 사고실험의 중요한 방법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포르투갈의 다미앙처럼 다양한 문명으로부터 ‘보편성’을 발견해냈다. 그것은 바로 ‘언어의 숭고함’이었다.

 

저자는 이 ‘숭고함’으로부터, 또는 피코의 ‘900 논제’로부터 당시 상황을, 역사를, 피코의 생애를 차근차근 복원한다. 저자는 말 그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자’다. 그는 다양한 사료를 분석하고, 가장 그럴듯한 당대의 모습을 만들어내는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다. 그리고 저자는 피코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분명한 교훈을 전한다. 이것이 그가 그토록 역사를 생생하게 복원해내려 시도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언어의 숭고한 힘-

#숭고함 #말 #언어 #새 #소리 #무아지경 #황홀경

 

주인공 피코는 온갖 고대 문헌을 섭렵하며 다양한 지식을 학습한다. 나는 그의 천재성과 함께 그의 열정이 참 부러웠다. 그는 고대 문헌을 직접 읽기 위해 히브리어, 아랍어, 심지어 사라진 고대의 언어까지 학습하고자 했다. 그리고 직접 고대 문헌을 찾아 파리와 로마와 피렌체, 베네치아를 여행하였다. 그렇게 습득한 지식은 그가 ‘보편적 철학’을 할 수 있게 한 토대가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폐쇄적인 기독교 문화권에서 ‘이단’으로 몰릴 수 있는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신있게 자기 주장을 펼쳤다는 점이다. 그는 어떻게 이토록 목숨을 건 위대한 시도를 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위협 속에서도 멈출 수 없었을까. 나는 그가 열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 매우 궁금했다. 귀족 가문 출신의 지적 유희였을까. 천사와 신의 세계에 닿기 위한 종교적 열망이었을까. 아니면 당대 지식인 사회에서 명망을 얻기 위한 욕구 때문이었을까.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피코는 ‘숭고함’에 주목한다. 고대 그리스 문화에서부터 다양한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말의 힘’이야말로 우리가 신의 세계, 상상 너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매개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 힘은 매우 위험한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다. 소크라테스는 시인이나 연사가 말의 힘으로 상대를 조종할 것을 염려하여 ‘대화’를 강조했다.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해야만 이 위험한 힘을 끊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아리스트텔레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바탕으로 철학을 발달시켰다.

 

‘말의 숭고한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는 플라톤의 추종자들에 의해 히브리, 그리스, 인도 등 세계 곳곳의 문명에서 계속 발견되었다. 심지어 피코의 사후에도 발견은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발견과 함께 이를 위기로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많았다. 교황과 신학자들이 그러했으며, 프랑스 대혁명을 경험한 계몽주의 철학자들이 그러했다. 그들은 ‘말의 숭고한 힘’에 의해 강력하게 조직되는 군중을 두려워했다. 교황은 피코의 저작을 불태웠고, 계몽주의자들은 공동체를 불신하고 철저한 ‘개인’을 창조해냈다. 그것이 서구 문명의 특징으로 자리잡았고, 피코가 주장한 보편적 철학은 사라지는 듯 보였다.

 

“우리가 자장가를 부르면 아이들이 말을 잘 듣게 만들기 위해서 리듬의 마법과 운율의 마술을 이용하는 셈이다.”(280쪽)

 

하지만 저자는 ‘말의 숭고한 힘’이 여전히 민속 문화로 살아남아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 끈질긴 생명력이야말로 우리가 복원해야 할, 앞으로 추구해야 할 전통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말이다. 저자는 말의 힘을 통해 공동체를 조직하는 것이야말로 개인주의가 가져온 폐해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라 말한다.

 

 

-다시 보편과 개인-

#보편 #진리 #개인 #욕망

 

다시 보편으로 돌아와 보자.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보편’을 진리로 여긴다. 더 많은 사람이 받아들일 수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리라. 얼마 전 대통령이 SNS로 이스라엘의 민간인 학살을 비판할 수 있었던 근거도, 클래식(고전)이 오랫동안 사랑을 받는 이유도 바로 이 보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보편’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피코에 버금가는 여성 천재 카산드라 페델레의 편지를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다. 옳은 말로, 매력적인 연설로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리고 그들을 홀려서 자신의 통제 아래에 둘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인간의 자유의지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며, 종교적으로 ‘죄악’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될 수 없게 된다. 마치 히틀러의 제3제국이 독일의 가장 민주적인 공화국 체제에서 국민의 지지를 통해 조직되었던 사실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저자가 마지막에 제기한 ‘초유기체’의 개념은 히틀러의 제3제국을 닮았다. 효율적으로 통합된 하나의 거대한 조직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황홀경을 느낄까, 거부감을 느낄까. 솔직히 저자의 결론을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아직도 내가 개인주의의 늪에 빠져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지나친 개인주의의 폐해를 피코가 찾아낸 ‘말의 숭고한 힘’을 이용해 해결해나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사실 나는 저자의 주장보다, 오늘 읽었던 조지 오웰의 에세이에 나오는 문장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자신이 속한 당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지만, 자기 당을 위해서 글을 쓰는 것만큼은 절대 해서 안 된다. … 하고자 한다면 당의 공식 이데올로기를 철저히 거부하면서도 당에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일련의 사고과정이 자신의 생각을 혹시 이단으로 이끌지 모를까 하는 걱정으로 포기해서도 안 되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비정통적인 사고를 감지하더라도, 개의치 말아야한다.”(“작가와 리바이어던”, 조지 오웰, 19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1929 - 번영과 낙관은 어떻게 파국으로 치달았는가
앤드루 로스 소킨 지음, 조용빈 옮김, 신현호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대되는 작품이다! 자본주의의 ‘번영‘이라는 환상이 어떤 재앙으로 다가올 수 있는지 보여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